2억 대여금청구 채권·채무자 역할 동시에 / 전주지검, 절도·사기미수 혐의 30대 구속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1인 2역’을 하며 전자소송을 진행한 30대 남성이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전자소송’은 대한민국 법원이 운영하는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해 소를 제기하고 소송절차를 진행하는 재판방식으로, 전자 문서에 의한 사건처리와 온라인 송달로 인해 신속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전주지방검찰청은 17일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의 공인인증서와 인감증명서를 빼내 2억원의 전자소송을 진행한 정모씨(39)를 절도 및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12년 10월 친분이 있던 A씨의 사무실에서 인감증명서 1매 등을 훔치고, ‘A씨가 자신에게 2억원을 빌렸다’는 내용의 차용증서를 위조한 뒤 몰래 복사한 A씨의 공인인증서로 전자소송시스템의 회원으로 가입, 2억원의 대여금청구 전자소송을 진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정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전자소송을 진행하면서 2개의 이메일을 통해 원고(채권자)와 피고(채무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A씨 명의로 만든 아이디 등으로 전자소송시스템에 접속해 사전포괄동의 신청을 하고, 소장송달까지 받았으며, A씨는 소송이 진행되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포괄동의’는 1년 이내의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그 기간 안에 민사소송 등의 당사자가 될 것을 예정하고,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한 진행에 사전 일괄 동의하는 것으로,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로 동의신청이 가능하다.
정씨의 사기행각은 전자소송이 일반소송(종이소송)으로 전환되면서 막을 내렸다.
담당판사가 청구액이 2억원에 달하는 데 반해 이례적으로 사전포괄동의의 효력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이 소송을 일반소송으로 전환, 변론기일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씨의 사기행각이 들통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정씨는 공인인증서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전자소송을 통해 타인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악용했다.
이처럼 법원의 전자소송이 범죄에 악용돼 운영상 문제와 제도개선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전자소송의 본인절차 확인 강화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전자소송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와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가입 및 소송 진행이 가능하며, 이 사건 역시 피고가 이 점을 악용했다”면서 “전자소송에서 회원가입 시 입력한 휴대전화 번호로 인증번호를 발송하고, 입력한 이메일 주소로 일정 정보를 보내 회원가입 화면에 입력하도록 하는 방식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전포괄동의를 신청할 경우에도 당사자가 법원에 직접 방문하도록 해 본인임을 확인하는 엄격한 절차를 마련하거나 개인 회원가입자의 경우 법인 당사자와 변호사 등 대리인으로의 자격이 있는 자와 달리 사전포괄동의를 허용하지 않도록 법령 개정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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