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획일화된 전북 정치판
물과 기름같던 김대중과 김종필이 손을 잡은 ‘DJP연합’은 ‘정치는 생물이다’란 말의 결정판이 됐다. 당시 대한민국 정치판은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두 사람, 두 정당이 손잡고 정권 창출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두 손을 굳게 맞잡고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 시대를 열었다.
물론 이에 앞서 적과의 위험한 동침을 한 사람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을 끌어들여 대선 후보를 만든 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물론 김영삼이 집권 후 노태우·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2명을 단죄함으로써 그들의 밀월은 끝났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김영삼이 만든 정당이 지금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민심의 역풍에 시달리던 노태우가 내린 판단은 결코 흐린 게 아니었다. 정치판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적과 동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 정치판이다.
문제는 전북이다. 전북에서 정치는 생물이 아니라 화석이다. 적과의 동침은 없다. 변화하지 않으니 어찌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방한했던 프란치스코교황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장밋빛 미래를 갈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 엄중한 경고였다.
지금 전북은 깨어있는가. 아마 눈만 껌벅거리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만약 깨어 있다면, 지나치게 한 곳만 째려보느라 판단이 흐려진 상태일 것이다. 전북은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연명해 왔는지 모른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말이다.
지난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됨으로써 이제 전북처럼 정치판이 획일화된 곳은 대한민국에 없다.
이제 전북은 충청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난 15대 총선 이후 충청도(충남·충북, 대전)는 당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판이 계속됐다. 민심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않았다. 냉혹하게 심판했다. 정치인들이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15대 때 자민련이 득세했지만, 16대 때 충청도 민심은 자민련과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에 고르게 표를 주었다. 17대 때 노무현 탄핵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싹쓸이 했지만, 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에 몰표를 주었다. 그 와중에서도 통합민주당에 3석, 한나라당에 3석을 나눠주었다.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에 9석, 민주통합당에 9석, 자유선진당에 3석을 주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선전했지만, 충청도 민심은 정치인들에게 한 치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몽둥이 하나만으론 사냥에 성공 못해
전북인들은 충청도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들은 몽둥이 하나로 사냥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든든한 몽둥이 두세 개를 가지고 협공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냥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북이 28년 전에 버린 몽둥이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다.
요즘 예산철을 맞아 송하진 도지사가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향해 지방 예산을 챙기라고 요구했다. 11명의 지역구 국회의원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깎고 있다. 몽둥이 하나로 사냥하는 전북 정치의 한계가 확인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냥은 커녕 자기 살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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