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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기 태권도의 날 단상

1991년부터 전북의 핵심 키워드는 서해안에 있는 새만금이다. 새만금이 정부 외면으로 되네, 안되네 했어도 방조제가 준공됐고, 고군산군도 선유도와 장자도까지 연결하는 관광도로가 개설됐다. 요즘 새만금에 가보면 내측 호수를 가로지르는 하얀 선을 볼 수 있다. 내부개발의 기초가 되는 방수제 공사가 눈에 띌 정도로 진척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새만금국제공항 예산을 뺐지만 전체 새만금 예산은 지난해보다 2000억 원이 늘어난 9125억 원을 반영했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속도를 낼 수 있을만큼의 예산 2535억 원이 배정됐고, 새만금 신항(350억)과 동서축남북축 도로 건설사업비(1772억)도 반영됐다. 전북의 국가예산 6조 5000억 원 중 새만금지역 단일 예산만 1조원이 배정된 셈이니, 전북에는 새만금만 있는 것 아니냐는 해묵은 지적이 또 나온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무주반딧불축제가 지난 1일부터 열리고 있다. 9일까지 계속되는 이 축제는 벌써 22세 청년이 됐다. 개막식에서 무주군과 자매결연 관계인 중국 등봉시 소림무술단과 의왕시 태권도시범단 공연이 펼쳐졌고, 무주실버태권도시범단도 공연했다. 때마침 지난 4일은 태권도의 날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대한민국태권도협회국기원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진흥재단이 공동 주관해 기념행사를 치르는데, 올해 슬로건은 2018,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의 새로운 도약이었다. 국회가 지난 3월30일 대한민국의 국기(國技)는 태권도로 한다는 내용이 담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태권도법) 일부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을 기념하는 슬로건이었다. 199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태권도연맹(WT)이 2006년 제정한 것이 태권도의 날이다. 이제 태권도가 법률이 정하는 대한민국 국기로 공인됐으니, 세계인의 태권도 위상이 그만큼 더 커져 보인다. 태권도 종주국의 중심에 전북 무주가 있으니, 전북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2년 진안군 백운면에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이 들어서면 전북의 동쪽도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가보자. 2004년 12월이다. 무주군은 치열한 경쟁자 경주와 춘천을 물리치고 태권도공원 유치에 성공했다. 2009년 9월 4일 기공, 2013년 8월 준공된 태권도원은 2014년 4월에 공식 개관, 세계 183개 국 8000만 태권도인의 무대로 자리잡았다. 무주가 세계 태권도의 성지가 된 것이다. 지난해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는 183개국 1800여 명의 선수단이 출전했고, 오랜만에 방한한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남북태권도시범 공연에 참여,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드, 핵 등으로 경색되어 있던 당시 한반도 문제가 무주 태권도 대회를 계기로 슬슬 풀려나갔다. 무주 태권도원과 관련, 아직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많다. 국기원은 물론 관련 산업도 유치해야 한다. 오리무중이다보니 급기야 전주시의회가 무주로 가지 않으려면 전주로 오라고 추태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주군이 태권도원을 유치한지 어언 14년이 됐다. 태권도원이 가동에 들어간지도 4년째다. 시나브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지만, 태권도 성지를 유치한 전북도와 무주가 그동안 얼마나 태권도 관련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홍보와 사업, 관련 기관 유치 등 가야할 길이 멀다. 4일 태권도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 성지다운 무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9.04 19:32

전북 몫 제대로 찾고 있는가

▲ 수석 논설위원 송하진 도지사가 민선 6기와 7기를 꿰뚫어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전북 몫을 제대로 확보해 대도약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송지사의 자신감은 1년 전 촛불혁명 성공에 따른 문재인정부의 탄생이 버팀목이라 해도 좋겠다. 진부한 노릇이지만, 전북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에 대해 몰표로 지원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으로 기울기도 했지만 촛불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쪽으로 급격히 선회했고, 덕분에 전북의 민주당은 지난선거에서 15개 단체장 중 12개를 석권했다. 최근 마무리된 도시군의회 원구성에서 민주당은 무소속 김왕중 의원이 부의장을 맡은 임실군의회를 제외한 모든 의회에서 의장단을 독식했다. 상임위원장도 82%를 차지했다. 특정당의 독식은 독재를 부를 수 있다.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심된다. 끼리 끼리 밀어주기 한 판 벌인들, 외부에서 알기 힘들 것이다. 전북 정당 지지도 12%를 넘긴 정의당, 국회의원 5명을 둔 민주평화당과 2명을 둔 바른정당 등 야당은 제목소리 내기 힘들 상황이다. 이는 일부 야당이 민심을 잃어 자초한 일이지만, 민심은 민주당이 이처럼 무소불위 전횡을 부릴지 몰랐을까. 좌우지간, 전북의 몰표는 문재인정권과 전북 정치인들에게 달콤한 과실을 안겨 주었다. 그 반대급부를 챙겨내겠다는 것이 송 지사의 전북 대도약의 시대를 열겠다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전북은 정권으로부터 뭐 하나 실속있게 지원받은 게 없다. 이명박 정권은 LH공사 본사를 경남으로 몰아줬고, 박근혜 정권은 울며 겨자먹는 심사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를 던져줬다. 노무현 정권은 광주전남을 밀어주면서도 전북이 손을 내밀면 시큰둥했다. 김대중 때도 그랬다. 혹시나는 원망스럽게도 역시나 였다. 그런 기미가 이번에도 비친다. 정부가 지역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선정한 국제적 지역관광 거점에서 전북만 빼버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전북도가 항의, 전주시를 관광전략거점도시 조성 테마의 역사문화도시로 포함시켰다고 한다. 정부는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어처구니없다. 어찌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 내에 전북이란 존재 가치가 얼마나 땅바닥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정부의 전북도 패스 사건은 전북대도약의 시대 돛을 올린지 불과 열흘만에 벌어진 일이다. 613지선 후 전북 지자체가, 정치권이 이해타산에 함몰 돼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정부에서 전북 몫은 철저히 외면됐다. 그런데 전북도의 자기반성은 애매하다. 정권이나 정부가 앞서 챙겨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지금 정부는 전북도 숙원사업인 새만금공항 건설에 시종 미온적이다. 지난 연말에 사전 예비타당성조사 예산은 소액이어서 배정했지만, 기본계획 예산 25억 원을 배정해 달라는 전북도 요청을 거절했다. 전북이 2023년 개최가 확정된 세계잼버리대회 개최 전에 국제공항을 완공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이대고 있지만, 기재부는 법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북도는 예타가 이중규제이니 예타없이 공항건설 사업을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돈줄을 틀어쥔 기획재정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전북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북이 정신 못차리고, 정권이 계속 외면하면 전북 몫, 전북 대도약의 시대는 문재인정부에서도 역시나가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7.17 20:29

평양에서 임실 필봉굿을 칠 날

▲ 수석논설위원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북 비핵화에 일괄을 강조하던 트럼프에게서 단계적 뉘앙스가 비치고, 12일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기정 사실화 됐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어 간다는 사실이다. 남북과 북미협상에 이은 북남미 종전선언까지 예상되는 지금의 상황은 1953년 7월27일 휴전 이후 처음이다. 남북간 총부리를 치울 다시없는 기회다. 427판문점 선언에는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대목이 있다. 향후 북미가 협상에 성공하고, 남북미가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남과 북의 교류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북연구원이 최근 잇따라 개최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 릴레이 세미나는 큰 의미가 있다. 남북의 문제는 분명 정치적이고, 중앙정부대 중앙정부의 의지와 입김이 결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전북은 2007년부터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현재 1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북연구원에서 열린 소프트파워를 통해 평화의 시대로 주제의 릴레이 세미나에서 전북연구원 미래전략연구부 김동영 연구위원은 전북은 북한의 황해도와 소중한 연결고리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고려의 중심 개성과 후백제의 중심 전주, 전북의 좌우도농악과 황해도 장연지방의 두레농악도 연결고리가 있다. 이 같은 역사문화적 연결고리를 전북이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라북도는 백제와 후백제, 조선 왕조의 뿌리가 깃든 역사 문화의 고장이다. 비록 중앙정부의 산업화 정책에서 소외돼 산업발전은 낙후됐지만 전북에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0건,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88건이 있다. 자랑스런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이런 훌륭한 기반이 있었기에 국립무형유산원이 전주 서학동에 자리잡았고, 전주한옥마을이 1000만 관광객 시대를 열었고, 문화특별시 지정도 추진하게 됐다. 전북은 대북 교류에서 전북이 보유한 다양한 무형문화자산을 한껏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무형문화재들의 공연과 작품 전시, 기능 보유자들의 기능 교류 등이 가능할 것이다. 무형문화 자산에는 겨레의 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남과 북의 장인들이 그 소중한 겨레의 혼을 불러내 통일 마중굿을 쳐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 무주 국립태권도원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 등 최근의 남북 화해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남북 태권도는 조만간 국내외 순회 시범공연에 나선다. 세계태권도연맹 김일출 제1사무차장은 남쪽 태권도 성지인 무주태권도원과 북쪽 태권도 성지인 평양 성지관이 태권도교류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것도 좋겠다며 남북교류는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기보다는 공통분모를 찾아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고 말했다. 태권도 등 스포츠 자원은 물론 후백제와 조선 왕조의 도시에 걸맞는 98개의 무형문화재 등 역사문화유산은 훌륭한 공통분모에 속한다고 본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6.05 20:47

대마불사 신화를 바라는가

▲ 수석논설위원 20년 전에 터진 IMF 구제금융 사태는, 어쨌든,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정치경제사회 등 각계 각층에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멀쩡해 보였던 기업까지 줄줄이 도산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고, 살인적 고금리에 그야말로 고혈을 짜내야 하는 서민들도 많았다. 그런 큰 고통이 따랐지만 결국 극복해 냈다. 땅이 비온 뒤에 더 단단해지듯 한국사회의 토대도 한층 견고해졌다. 이 때 국민들이 확인한 대표적인 것이 대마불사 신화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으로 잘 나가던 기아와 대우가 망했다. 그 때까지 잘 나갔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결국 한국에서 재기하지 못했다. 당시의 국가대표급 거대 은행이었던 주택, 한일, 상업, 외환 등이 줄줄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급부상하던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이 국내 금융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대마불사 기업들이 모래성처럼 쓰러진 것은 정경유착 관행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행은 권력의 전화 한 통에 눌려 부실기업에 거액을 대출하는 등 불투명한 경영행태가 횡행했다. IMF 사태가 없었다면 그들만의 밀어주기 관행이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물론 IMF충격으로 일소된 것은 아니어서 최근까지 우리 사회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박근혜 측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재판 받고 있다. 그런 부적절한 돈을 건넨 사실이 인정된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달 법정구속됐다. 누가 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라며 결백을 주장, 대통령에 당선돼 권력을 누렸지만 이명박은 결국 대중이 던진 돌에 맞아 철창에 갇혔다. 핵심 인사들은 그의 허물을 알았거나, 눈치챘거나, 큰 의심을 품었을 것이지만 정의를 걷어차고 권력이란 독배를 선택했다. IMF 이후 20년 만에 제 아무리 대마라도 정도를 벗어나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박근혜와 이명박 두 사람이 몸을 던져 증명해 주었다. 그들은 똑똑해 보였고, 그래서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지만 권력 욕망에 그들의 눈은 멀었고,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국민에게 쫓겨난 대통령, 부하에게 살해된 대통령, 구속된 대통령, 자신은 구속되지 않았지만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 때문에 비참한 삶에 처했던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아무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낚싯밥을 물어대는 붕어와 다를 게 없는 행동이었다. 정치인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청렴이 생명이다. 청렴함을 잃으면 부패한 것이니, 이미 생명을 잃은 것이다. 최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정치자금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 셀프 기부 했다는 등 부적절한 사실이 드러나 취임 14일만에 낙마했다. 청와대는 피감기관 예산 등으로 해외출장 다녀오는 일은 김기식 국회의원만 한 일이 아니라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해 오던 관행이었다며 맞섰지만, 선관위가 대체적으로 위법 판단하자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청와대는 선관위에 묻지 말고 스스로 판단했어야 했다. 다른 국회의원들도 했으니 허물이 아니라는 식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의 공격에 자기 합리화만 할 때가 아니다. 시민단체가 피감기관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고, 청와대 청원도 봇물이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에 다녀온 일들을 낱낱이 밝혀보라. 상대에게 엄격하면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게 진짜 권력이고, 적폐를 확실히 청산할 수 있는 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 시절을 되돌아 보며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제식구 감싸기는 대마불사 신전에 향 피우는 구시대적 작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4.24 19:25

이산 저산 꽃이 피니

▲ 수석논설위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 그리고 경칩도 갔다. 한낮 기온이 10℃ 대를 유지하고, 지난 봄비처럼, 촉촉히 내리는 비는 삼라만상을 깨웠다. 성급한 농부들은 하지에 캐 먹을 감자를 벌써 심었다. 지난 겨울 파종된 고추씨는 하우스 속에서 어렵게 싹을 틔우더니, 감질나게 크고 있다. 이제 10㎝ 안팎이지만, 잠깐이면 본밭으로 옮겨갈 것이다. 아직 바람은 쌀쌀하고, 꽃샘추위가 남아 있지만, 이곳 저곳에서 냉이 캐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봄 꽃이 한바탕 요란을 떨 것이다. 소리꾼들은 판소리 본대목을 부르기 전에 목청을 다듬기 위해 단가를 하나 쯤 부른다. 단가 중에 사철가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무쌍함을 인생살이에 빗대 담은 소리에 흠뻑 빠져든 청중들이 저도 모르게 얼쑤 추임새를 넣는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데가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 되고 보면은 월백설백 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얼었던 산야가 스르르 풀리면서 앞다퉈 꽃이 피니 분명 봄이지만, 봄은 따뜻하지만도 않은 계절이다. 만만찮다. 밤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꽃샘추위가 몇차례 기승 부린다. 경칩 때 나온 개구리가 얼어죽는다. 환절기 감기, 꽃가루 알레르기, 춘곤증 등이 성가시게 한다. 요즘엔 철새가 남기는 AI도 골칫덩이다. 그런 것 모두 견뎌내야 5월 넘어 여름으로 건너 간다. 지난 5~6일 대통령 특사가 북한을 다녀온 후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이 성사, 한반도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일단 북한의 비핵화 난제를 풀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졌다는 점에서 모두가 우려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반색이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길이 자갈밭이 될지, 아스팔트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결과는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5월 이후에 녹음방초 승화시가 펼쳐질 수 있도록 지금의 훈김을 잘 유지시켜야 한다. 4월 꽃샘추위야, 물렀거라. 인면수심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미투운동이 가열되고 있다.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고, 3월 들어 개학한 캠퍼스도 온통 미투 열풍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민병두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서 정치권도 발칵 뒤집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이 된 613 지방선거가 100일 가량 남은 상황인지라 여야 모두 뒤숭숭한 모습이다. 미투운동은 전북에도 큰 충격이다. 한국 문단의 원로 시인 고은이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 속 괴물로 폭로됐다. 군산시는 고은 관련 사업을 모두 중단하고 나섰다. 연극계 리더라던 대학교수는 미투로 가면이 벗겨지자 자살소동까지 벌였다. 유명세가 고은에 필적하는 50대 시인은 심야고속버스 안에서 잠든 여고생을 성추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는 옆자리 여고생을 깨우려고 허벅지를 한차례 찔러 주의를 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사한 경찰은 기소의견을 냈다. 요즘 군산은 조선소에 이어 한국지엠군산공장 폐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 지엠의 경영실패가 낳은 비극이지만, 전조증상을 알고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당국 책임도 크다. 매번 뒷북만 치는 지역 리더들, 선거철이 왔어도 뒷북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리더들, 그 속에서 지역민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사철가는 계속 이어진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세월 어쩔거나/ 늘어진 계수나무 끄트머리다가 대랑 메달아 놓고/ 국고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어/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허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3.13 20:46

언론이 바로서야 한다

허물이 쌓여 굳어지면 관행이란 미명하에 합법이 될 수 있다. 누군가 태클을 걸지 않으면 말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이 쌈짓돈처럼 썼다가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도 결국 다스와 국정원 돈 등 허물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도 역대 정권들이 했던 대로 국정원 돈을 쌈짓돈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관행처럼. 그렇지만 문 정부는 그 관행이란 미명하에 저질러진 부패덩어리 아킬레스건에 정확한 태클을 걸었다.최근 적폐청산은 이익을 전제로 뭉친 패거리들이 돈과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나라를 뒤흔들어 온 관행들에 대한 철퇴 작업이다. 적폐 장막이 한꺼풀씩 젖혀질 때마다 국민은 깜짝 깜짝 놀란다.배우 이병헌과 백윤식 등이 연기한 영화 내부자들을 본 한 대학생이 논설주간이 뭐예요? 그렇게 힘이 세요?하고 물었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청년의 눈에 비친 신문사 논설주간은 힘센 부패 권력자였다. 나를 바라보는 대학생의 눈에 선생님도 그런 힘이 있어요?하는 물음이 언뜻 스쳤다.놀랍게도, 그 후 실제로 내부자들과 흡사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 청년 보기가 더욱 민망스러웠다.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신문사 전 주필의 배임수재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4년과 추징금 1억648만원을 구형했다. 그에게 금품을 건넨 홍보대행사의 전 대표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전 주필은 홍보대행사의 영업을 돕고 기사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수표와 현금, 골프접대 등을 받았고, 대우조선해양에 우호적인 칼럼과 사설을 써 주고, 인사 로비를 해주는 명목 등으로도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검찰은 개인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언론인의 책무를 저버림으로써 업무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현저히 손상했다고 지적했다. 또 기자사회의 구악인 금품수수 등 폐단을 여전히 반복했고, 언론인의 자존감과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 단죄가 필요하다고 했다.사실 국민들은 정치인-기업인-검사 또는 경찰이 한 패를 이뤄 불법을 저질렀다가 결국 처벌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접한다. 반면에 부패 언론인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드물기에 그 청년 눈에 비친 영화 속 논설주간 이강희의 악랄한 범죄 행각은 상대적으로 낯설고, 충격이었던 모양이다.지난해 국민의 촛불 승리 결정타는 한겨례신문과 JTBC가 날렸다. 반면 일부 언론사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인터뷰 등 취재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 이강희같은 인물이 적지 않은 탓이다. 기자가 기레기로 내몰리는 현실에 놓였다. KBS 구성원들이 최근 고대영 사장을 물리치는 큰 일을 해냈다. 참 언론을 구현하고 싶다는 KBS 구성원들의 열망에 이사회와 대통령이 호응한 것이다. KBS가 빠른 시일 내에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얼마 전 검찰이 한 일간지 대표를 김영란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기관 등에서 받은 돈이 투명해게 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무렵 도의원과 업자 사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며 수천만 원을 챙겼다가 집행유예형을 받은 언론인도 있었다. 어디 이런 유형 뿐이겠는가. 지금은 선거철이다. 선거 보도는 불편부당해야 하지만,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교묘하게 편파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슬아슬한 서커스다.어줍잖은 완장 차고 행세하는 방각하는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 언론이 국민 신뢰를 잃으면 언론 뿐만 아니라 국민 행복과 국가 장래가 위협받는다.대개 부패자들은 적반하장 잘하고, 제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한다. 강자에게 쉽게 무릎 꿇고, 약자에게는 큰소리다. 오로지 젯밥에 눈독 들이고, 출세지향적이다.정의로운 촛불 세상으로 가는 여정에서 언론은 매우 중요하다. 이강희 같은 고름덩이를 도려내야 이 땅에 언론이 바로 서고, 국민이 행복해진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1.31 23:02

웃으면 복이와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뒤돌아 보게 된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겠지만, 언짢았던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 뇌가 상처는 잘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찡그린 채 연말연시를 보낼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에 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라, 배려하라는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다.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려면 웃으라고 한다. 소위 행복하면 웃는 일이 잦겠지만, 살다가 언짢은 일이 있더라도 한바탕 웃으면 기분 전환이 되고, 나도 모르게 평상심을 회복하게 된다고 한다. 웃음 전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고 억지 웃음을 해보라고 권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막 일어나 거울 앞에 섰는데 무슨 웃음이 나오겠는가. 그렇지만 거울을 보고 미친 척 웃다보면, 나도 모르게 진짜 웃는다. 마음이 홀가분해 지고, 기분전환이 된다. 억지 웃음이지만 긴장된 마음과 신체를 스르르 풀어준다. 증오와 실망과 좌절을 순간이나마 녹여 준다.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웃음이 실종된 곳이 많다. 적어도 우리 사회 구성원 30% 가량만 웃고 있는 것 같다. 불평등, 불균형 등 이익에서 소외된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불평등, 편향 등 치우침에서 온다.일주일 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74세 성인 2000명을 상대로 은퇴와 노후생활 준비 등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노후에 필요한 최소생활비를 갖췄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27%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노후 최소생활비가 월평균 177만원, 적정생활비가 월평균 251만원은 필요하다고 대답했는데, 월 177만원 수입이 어렵다는 사람이 수두룩 했다. 그래서 응답자 50.5%는 75세 이상까지 돈을 벌겠다고 했다. 건강을 위한 노동, 취미생활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지난 17일 통계청이 내놓은 한국의 사회동향 2017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생활비를 직접 벌어 해결하는 노인이 2008년 46.6%에서 2016년 52.6%로 10년만에 8%p 증가한 것이다. 노인의 괜찮은 일자리는 어떤가. 막상 법이 정한 60세 정년을 하면 갈 곳 잃은 나그네 신세 되기 십상이다. 청년층만 취업난인 세상이 아니다.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 노인 일자리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2000년 339만5000명(7.2%)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는데, 지난 8월 현재 725만7288명(14.02%)이다. 내년에 고령사회 인구가 되는 738만1000명(14.3%)을 돌파할 전망이니, 자연히 경비나 청소직 등 일자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건강도 큰 장애물이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들은 평균 82.4세까지 살 수 있다는 통계청 예측이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 성찬은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당장 병원에 가보자. 노인 환자가 가득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80대 노인이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몸이 아픈 채 살아가는 유병기간이 17.4년이다. 유병기간은 2012년 15.1년이었다. 전체 의료비 중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 비중이 39%를 넘어섰고, 노인 요양병원은 2016년 3136개, 병상수 25만5021개에 달한다.요양병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 사회에는 거부감이 컸다. 자식들이 병든 부모님 수발을 직접 하지 않고 요양병원에 방치하는 불효 분위기가 강했다.하지만 요양병원 수가 약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고, 병상수가 5년 만에 두 배 가량 증가한 것이 증명하듯, 우리 사회는 요양병원 전성시대가 됐다. 늙은 부모는 힘이 없어 말이 없고, 나도 늙어 요양병원 가겠다는 자식들이 많다.어쨌든 막판까지 웃으며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가난보다도 건강이 더욱 치명적이다. 건강 잃으면 돈도, 명예도 부질없다. 나의 은퇴 후 수입은 177만 원이 될까. 75세까지 일해야 할까. 힘들다고? 그래도 한바탕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2.20 23:02

전북의 씁쓸한 현실

구석기시대의 유물 유적이 자주 발굴되는 전북은 마한과 백제, 후백제 세력의 중심권이었다. 최근 장수 등 동부권에서는 군산대 곽장근 교수팀에 의해 가야시대 제철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후백제의 수도, 조선왕조의 본관향 등 전통역사문화의 고장 전북이 가야 제철문화의 중심지였음이 본격 밝혀지고 있다.안타까움이 있다. 단기고사를 쓴 것으로 알려진, 발해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유감을 표했듯이,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후 그 찬란한 문명은 물론 문화까지 철저히 파괴, 전북지역에 남은 조선 이전의 흔적이 참으로 미미하다. 안타까움은 고려로 이어졌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궁예의 부하였다. 궁예는 900년 전주성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과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덕이 부족했다. 왕건은 자신을 키워준 태봉의 궁예를 쫓아내고 918년 고려를 세웠다.하지만 후백제 견훤왕에게는 항상 밀렸다.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지방의 호족세력들을 어르고 협박하며 후백제를 압박했고, 때마침 노쇠한 견훤왕의 못난 아들들 덕분에 어부지리, 후백제를 멸할 수 있었다.후백제와의 잦은 패전에 몹시 부끄럽고 화가 났던 왕건은 치사하게도 차령 이남을 극도로 차별했다. 전북 익산 낭산지역에 2개의 부곡을 운영하는 등 전라도와 충청도의 망국 후백제인들을 천하게 부렸다. 그렇고 보면 신라나 고려나 그 수준이 도토리 키재기였다.물론 글로벌 역사에서도 흔했던 일이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전쟁에서 승리, 1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로마제국이 적국 카르타고를 철저히 때려부숴버린 일이다.오늘날 파괴자 신라의 유물 유적을 두고 찬란한 문화유산 하며 수선떨지만 1400년 전 백제 문화는 훨씬 앞서 있었다.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아래 미륵사 서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리장엄구 등 유물은 7세기 무렵 백제의 금속공예, 미술양식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그대로 증명해 주었다. 그게 백제문화였다.내년 2018년이 전라도 정년 1000년이라고 시끌벅적하지만, 지금 백제 땅 전라도는 싸늘하다. 너른 들과 산, 바다가 있어 풍요로운 고장이지만, 근대 들어 낙후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진 영남정권이 영남지역 발전을 획기적으로 일궜지만, 호남은 시늉만 했다. 광주전남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빛 좀 봤지만 전북은 여전히 그늘 속에 있었고, 재차 정권을 잡은 영남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혈안이었다.그런 결과다. 마치 민주주의의 끝판처럼 말해지던 지방분권을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개헌을 통해 하겠다고 말했지만 가난한 전북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을 것 같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세금을 내 줄 만한 괜찮은 기업은 물론 정부 등의 공공기관마저 크게 부족한 전북은 중앙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더욱 가난해질 뿐이다. 인도의 네루는 경제적 자유도 결국 가난한 자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전북으로선 뭇사람들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추앙하는 지방분권이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세상은 결국 부를 더 많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물론 저마다 가치관의 문제일 뿐이기도 해서 부자라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덜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돈인 것이 현실이다.문재인정부가 처음 편성한 내년도 예산은 전년대비 7.1%가 오른 426조원 규모다. 돈이 있어야 대한민국이 발전해 갈 수 있다는 논리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예산을 늘렸다. 이 중 복지예산이 전체의 30% 수준인 146조 원에 달한다. 이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돌리는 세상이지만, 전북은 돈이 없어 지방분권도 걱정이라고 아우성이다. 새 정부의 새만금속도전도 방지턱에 막혀 있다. 전북을 겹겹이 둘러싼 묵은 때는 여전히 그대로인 셈이다. 어쨌든, 최근 시작된 예산국회 정국에서 전북의 선전을 바란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08 23:02

묵은 체증 쑥 내려가게 하려면

영화배우 문성근씨와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최근 잇따라 검찰에 출석하면서 이명박 적폐청산 윤곽이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운영됐다고 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가 18일 대표적 피해자인 문 씨 소환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것이다.문씨가 검찰에 출석한 것은 서울중앙지검 윤재중 검사가 음란물제조유포에 대해 피해자 진술을 해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문제의 음란물사건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문성근과 김여진을 좌파연예인으로 낙인찍어 두 사람의 나체 합성사진을 배포했다는 사건이다.문씨는 취재진에게 이명박 정권은 일베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고를 했다는 게 확인됐다.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면서 동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직접 소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일 검찰에 출석한 김미화씨는 2009년 KBS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큰 불이익을 당했다. 그는 백주대낮 활보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이 양파 껍질이 어디까지일까.MB 적폐는 전북에도 찝찝하게 남아 있다. 김완주 전 지사가 청와대에 보낸 감사 편지, LH공사 전북 유치 무산, 그에 따른 민심 달래기용으로 발표된 삼성의 20조원 새만금투자 등의 이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다.김완주의 감사 편지란 2009년 7월29일 김완주 당시 도지사가 작성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제목의 편지다. 내용은 정부가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을 발표한 데 대한 고마움 표시다. 그런데 그 표현이 너무 낯뜨겁다. 1인 독재 천하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올리는 글 빰친다. 뭔가 비위를 저질러 선처를 바라는 사람이 애걸복걸 심정으로 쓴 글로 보인다.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은 우리 전북도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는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다 정부의 발표로 도민들의 묵은 체증이 일시에 쑥 내려간 듯 하며 기쁘고 눈물이 난다 등 아부성, 찬양으로 일관하는 편지글은 도민을 부끄럽게 했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당시 청와대가 편지를 공개, 항복문서화한 사실이다.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요절복통할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편지가 나온 배경을 추측했다. 김 전 도지사는 이명박 대선후보가 2007년 새만금을 방문했을 때 이번에 새만금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전북도민의 거대한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 후보를 몰아붙였다. 당시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밀어주기 위한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요, 도와 예를 넘어선 언행이었다. 이 후보는 치솟는 화를 누른 채 당 소속이 어떻든 정치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화를 감추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던지라, 김완주의 감사 편지는 대선전에서 승리, 권력의 칼을 거머쥔 MB의 성난 칼끝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라는 해석이 비등했다. 어쩌면 요구에 응한 것일지도 모를 터다. 민주당 내에서는 적장에게 항복 문서를 바친 것이냐 등 격한 비난과 출당 요구가 쏟아졌다.이명박 정부와 전북도, 삼성 3자간에 이뤄진 삼성 새만금 20조원 투자 사기 의혹은 더욱 심각하다. LH 유치무산으로 이반된 전북 민심을 현혹하기 위해 3자가 짜고 사기극을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전북도민이 언제까지 가슴에 묻고 살게 할 수 없다.MB적폐청산 대상에 김완주의 감사편지, LH공사 유치 무산, 삼성투자 사기 의혹 등 그동안 유아무야 됐던 사건들을 포함시켜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래야 도민들의 묵은 체증이 일시에 쑥 내려간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9.20 23:02

작은 서점에 대하여

지난 달 대만의 유명 서점인 청핀(誠品)서점 창업자인 우칭요우(吳淸友)회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대만인들 사이에 우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그가 서점을 인문학 공간으로 조성했고, 이에 대중들이 서점을 편안하게 찾았다. 사람들이 서점 주변에 모이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고, 지역에 활기가 돌았다. 서점을 대중 속에 우뚝 세운 우회장의 인문학 경영을 주목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청핀서점을 아시아 최고의 서점으로 선정한 것만 봐도 우회장의 서점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우회장은 생전에 돈이 없으면 청핀서점이 살아갈 수 없지만, 문화가 없다면 나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란 말을 했는데, 그의 인문학 사랑이 엿보인다.책과 신문의 위기는 세계적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매년 진행되는 책 페스티벌인 북쿠오카도 작은서점, 책 문화에 대한 위기 의식에서 출발했다. 도서유통 시스템의 붕괴, 작은 동네 서점이 대형서점에 밀리고, 대형서점은 인터넷 서점에 밀리는 현실을 극복해 보겠다는 움직임이다. 올해 북쿠오카 행사에서 주목한 것은 작은 서점이었다. 지역의 작은 서점들이 활성화 돼야 책이 제대로 주목받고, 진짜 베스트셀러가 나온다. 책문화의 실핏줄이 바로 동네 서점이라고 본 것이다. 우칭요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출판사가 작은 동네책방에 소량의 책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기대한다. 미국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판촉비용의 대부분을 시장점유율 8%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서점들에 할당하는 식 말이다. 출판업계와 지역사회의 관심,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동네 서점의 위기는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심해졌다. 지난 20년 사이에 동네서점은 거의 사라졌다. 학교 정문 앞 상가에서 서점은 거의 사라졌을 정도다. 서점이 있다고 해도 참고서와 문구류가 대부분이니, 서점이라고 할 수도 없다.대형서점도 마찬가지다. 전주 홍지서림과 민중서관, 호남문고, 문화서적, 그리고 군산 한길문고 등 몇몇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전주 중심가인 경원동 관통로사거리에 위치했던 민중서관이 문을 닫은 2011년만 해도 128곳에 달했던 전주지역 서점은 현재 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전북 전체 서점수는 121곳으로 2005년에 185곳에 비해 무려 34.6%나 감소했다. 디지털 문화, 온라인서점 등 영향으로 지역서점 운영이 타격을 받았고, 도서정가제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분위기 등 복합적 요인이 지역 서점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난 6월 전북도의회가 전북도 지역서점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서점이 단지 도서 유통 공간에 그치지 않고 지역문화의 시발점이자 중심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디지털 문화가 확산하면서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지역서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전북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는 도지사가 독서문화 진흥을 통한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적극 발굴해 추진하고, 도서관 등이 책을 구매할 때 지역서점에서 우선적으로 구매토록 했다. 도지사가 인문학 강좌, 작가와의 만남 등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지역서점과 협력하도록 했다.전주시 등 일부가 공공도서관 도서 구입 때 입찰참가자격을 지역서점으로 제한, 지역서점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 도의회 조례제정으로 지자체들의 실질적 관심과 노력이 한층 중요해졌다.책과 신문은 종이에 활자와 그림, 사진 등을 인쇄한 상품이다. 뭇 상품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분명 보통 물건은 아니다. 사람이 역사시대 이전부터 살아오면서 축적해 온 지식과 지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제아무리 멋진 기획과 빼어난 디자인, 기술로 출판했다고 해도 책 유통의 실핏줄인 서점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면, 서점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람 냄새, 그 문화 자산이 위협받는다. 타임이 청핀서점을 주목한 이유, 대만 사람들이 우칭요우 회장을 추모하는 이유 아닐까.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8.09 23:02

기록은 힘이다

신문사에 근무하다보면 지인들로부터, 혹은 독자들로부터 익숙한 문의 전화를 받고는 한다. 책을 쓰려다보니 필요해서 그런데 1960년쯤에 전주에서 활동했던 홍길동씨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있겠냐는 등의 식이다. 그래서 신문사에 오시면 열람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 저 쪽에서 또 묻는 사람이 있다. 컴퓨터에서 검색할 수 있나요? 그러면 대답해 준다. 옛날 신문기사가 모두 디지털 자료화 되지 않은 상태여서 1980년대 초반까지만 컴퓨터 검색으로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 신문은 계속해서 디지털화 하고 있습니다.1950년 10월15일 창간, 올해로 67주년이 된 전북일보는 적어도 지난 67년간의 역사자료 상당 부분이 살아 있는 보고다. 전라북도에서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친 크고 작은 숱한 기록물이 기사와 사진으로 전북일보에 남아 있다.몇 년 전 일이다. 전주 35사단이 임실 이전을 앞두고 사단의 역사 자료를 정리, 홍보 영상물 제작에 나섰다. 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부실, 제작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전북일보에 협조를 요청했다. 전북일보가 보유하고 있는 소중한 기사와 사진 자료가 35사단 역사를 꿰어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전북일보는 최근 본사 3층에 전북일보 역사박물관 기록의 힘을 열었다. 전북일보 창간호를 비롯, 지난 67년간의 월별 신문을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신문철이 연도별, 월별로 보관돼 있다. 맑은 전주천의 빨래터, 그곳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 빨래 삶아주는 곳, 정읍을 방문한 박정희, 전북일보 다가동 사옥, 전북은행 사옥 등 소중한 기록들이 살아 숨쉬는 장소다. 전북일보가 2012년 말에 펴낸 사진집 전북일보에 비친 현대사 60년,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역사박물관은 도민들에게 소중한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전주시도 최근 소중한 기록물을 발굴, 전주 정신의 숲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 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벌여 최근 꽃심상(대상)에 최봉섭씨, 대동상(최우수상)에 범선배씨를 선정한 것이다. 제2회째인 올해 공모전에는 모두 49명의 시민이 500여 점의 소장 기록자료를 접수했다고 한다.꽃심상을 받은 최봉섭씨가 제출한 자료는 1928년의 전주향교포상, 1920년대의 전주최씨 족보, 전주사범학교 졸업앨범 등 초중고 통신표, 상장류, 1930~1960년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43점의 사진 등이다. 풍류상을 수상한 이명구 씨가 제출한 자료 신약전서는 1911년에 발행된 것으로 우리의 옛 서체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 전주시장을 지낸 이주상씨가 백범 김구선생과 북한에 다녀와 경교장에서 찍은 기념사진이 제출됐고, 해방 이후 최초 국어교과서(조선어학회 발행), 한벽당 쪽 터널로 증기를 내뿜으며 진입하는 증기기관차 등 사진이 제출됐다. 하나같이 소중한 전주지역의 기록물들이다.지난해 첫 기록물 공모전에서는 이용엽씨가 응모한 이씨의 선친 이상래(1896~1979년)씨 일기가 대상을 수상했다. 한 개인의 일기일 뿐이었지만, 그의 일기는 100년 전 전주의 생활상을 전하는 소중한 기록 유산으로서 큰 관심을 끌었다. 우리는 그의 일기를 통해 덕진 운동장이 1915년에 조성됐고, 덕진연못 주변에 3만 평의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14년 11월 개통된 전북철도주식회사의 경편철도가 전주 시내 중심을 지나 군산을 오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전주시는 이렇게 수집하는 민간기록물들을 보관 전시할 수 있는 장소, 온습도를 유지해 기록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시설, 디지털화 작업, 사실확인 및 스토리화 작업 등을 점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6월7일 전주기록물 기증의 날을 개최했고, 인후동 보훈회관 2층에 100여 평의 임시 수장고도 마련했다.이런 작업들이 진행되면서 전주문화특별시의 열매도 맺고 또 무르익어 갈 것이다.기록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물로 남지 않는다. 기록을 통해 과거를 알고, 현재를 단단히 하고, 미래를 열어 갈 수 있기에 기록은 거대한 힘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6.28 23:02

설마가 사람 잡을까

제19대 대선에서 당선한 문재인 대통령은 전북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전북에서의 득표율이 64.8%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았다. 문 대통령이 고배를 든 제18대 때 득표율이 86.2%였지만,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던 것과 비교할 때 큰 반전이다.하여간 지난해 제20대 총선 때 국민의당으로 갔던 민심이 되돌려진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민주당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선거는 계속 이어지는데 국민의당 등 경쟁자들이 만만찮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민주당 깃발 매단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 되는 전북이 아니다.더불어민주당은 1987년 창당된 평민당이 전신이다. 평민당은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이 3위에 그치는 참패를 했지만, 이듬해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전북과 광주전남에서 거의 독식하며 원내 70석을 확보,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전북은 민주당 텃밭이었다. 강현욱씨가 신한국당 후보로 군산에서 출마해 당선했지만 결국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꿨을 만큼 전북 민심은 오로지 민주당이었다.민주당은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을 잇따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며 득의양양했다. 그러나 전북에 돌아 온 것은 역차별 뿐이었다. 예를 들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민원을 핑계삼아 사업을 중단하는 등 외면했던 새만금사업은 이명박정권 이후 훨씬 나아졌다.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전북표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들이 전북을 냉대해도 전북이 할 말은 많지 않다. 되돌아보면 지역균형발전은 허울좋은 말이다. 권력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둘러대며 애간장을 태운들 표를 주지 않아 인맥조차 제대로 없는 전북이 어찌 하겠는가. 이명박정권이 LH공사를 진주혁신도시에 밀어준 것은 표를 먹고 사는 정치판의 생리상 예상된 귀결이었다. 박근혜정권의 하수인들이 공사화를 추진하며 온갖 훼방을 놓았던 기금운용본부 전북혁신도시 이전은 울며 겨자 먹기였다. 이런 것들은 표가 거래되는 정치판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표를 주지 않는 전북 앞에 단감은커녕 떫은감 하나도 호강이고, 생색이었다.어쨌든 민주당 권력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도 전북을 외면하고 차별했다. 새누리당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했는데, 전북은 어느 정권에서나 세월을 잃어버렸고, 낙후 꼬리표는 더 초라해졌다. 민주당은 전북을 이용만 했다. 일부 지역 정치인들을 출세시키고선 끝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광주와 전남을 철저하게 챙겼다. 새만금을 지원해달라는 전북을 외면하고 김대중정권은 새만금사업을 중단시켰고, 노무현정권은 새만금과 똑같은 컨셉인 J프로젝트를 전남에 주었다. 광주와 전남에 공항이 3개씩이나 되지만, 전북의 공항건설 요구는 퇴짜 놓았다. 상당히 많은 주요 현안이 그런 식이었다. 민주당이 30년 가까이 일편단심으로 밀어준 전북에 준 대가는 뼈 아픈 것이었다.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전북 민심을 냉정하게 분석, 대응해야 한다. 민주당은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전북의 서러움과 분노는 새누리당발이 아닌 민주당발 홀대와 역차별에서 더 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민주당의 역차별로 전북이 낙담할 때 화려한 권력과 부, 명예를 누린 것은 민주당의 간판을 걸고 당선한 두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들이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전북 민심이 왜 예전같지 않은지, 왜 정운천 국회의원이 만들어졌는지, 왜 국민의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는지 제대로 알기 바란다.문재인 정권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초미 관심인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에 전남 출신이 포진됐다. 광주전남에 대한 강한 의지 표현이다. 전북은 숨죽인 채 설마 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5.17 23:02

선거의 계절에

매니 파퀴아오는 필리핀의 복싱 영웅이다. 미국 복서 메이웨더와 가진 세기의 대결에서 아깝게 판정패 했지만 파퀴아오는 여전히 필리핀 국민들의 영웅이요, 자존심이다.2015년 5월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대결 당시 파퀴아오는 1995년 18세 때 복싱을 시작한 이래 통산 57승(38KO승) 2무 5패의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었다. 그는 플라이급에서 웰터급까지 무려 8체급을 석권한 세계 최초의 챔피언이었다. 상대 메이웨더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프로에 데뷔, 5체급을 석권하며 47승(26KO)을 거두고 있었다.이 세기의 대결은 대전료가 2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메이웨더가 60%인 1억 5000만 달러, 파퀴아오가 40%인 1억 달러를 받았다.뜬금없이 복싱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요즘 홈페이지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퀴아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관위가 웬 복서 이야기인가.선관위가 권투선수 파퀴아오를 주목한 것은 그가 복서로서, 정치인으로서 성공이라는 외면과 함께 내면에 깃든 인간성이다. 파퀴아오는 빈곤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비뚤어지지 않았고, 복서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다. 체격이 작아 플라이급으로 시작했지만 1998년 챔피언이 된 후 계속 체급을 올려 도전했다. 2001년 슈퍼밴텀급, 2008년 슈퍼페더급과 라이트급, 2009년 웰터급 등 모두 8체급 챔피언에 오르는 전무후무의 성공을 거뒀다. 체격적 단점은 기술을 연마해 극복했다. 그에게 치열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는 사각의 링만 주시하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에 나눔과 사랑을 주었다. 2013년 태풍 피해로 주민들이 상심했을 때 그는 수백억 원의 대전료를 전액 기부했다. 메이웨더와 대결해 받은 대전료로 필리핀 빈곤층을 위한 1,000채의 집을 지어 기부했다. 그의 선행이 이 뿐일까 싶다.파퀴아오는 2010년 선거에서 하원의원이 됐고, 지금은 상원의원이다. 그가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복싱 스타로서의 인기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챔피언 자리를 지키면서 오만하게 구는 등 상식 이하의 언행을 했다면 가능했겠는가. 그가 사랑으로 주민을 대하지 않았다면 국회의원 배지는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그는 정치에 대해 복싱은 상대와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정치는 부정부패와 싸운다고 말한다.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필리핀 국민들이 주목하고 표를 던졌다. 국민과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푸는 정치를 실천하는 파퀴아오 같은 정치인 어디 없나 싶다.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정많은 행동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선관위가 홈페이지에 파퀴아오 이야기를 띄운 것은 그가 보여둔 행동이 뭇 정치인들의 귀감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본 것 같다.정치인은 결국, 표를 먹고 산다. 제 아무리 정의롭고, 자비로운 행동을 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정치인이라도 주민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 결정적 한계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꼭 주민 표를 많이 얻어 가슴에 뭔가 배지를 붙여야만 정치적 포부를 달성하는 것도 아니다. 배지는 그저 조금 도움이 될 뿐인 수단이다.최근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정치권이 대선전에 돌입했다. 저마다 대권주자라며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수준 미달이면서 혼란을 틈타 국민 비웃음을 아랑곳 하지 않는 인사들도 더러 있다. 시국이 엄중하다.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감정을 내세워 국민을 호도하는 건 곤란하다. 정치인이라면 생각에 재갈을 물릴 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3.22 23:02

마인드 컨트롤

강녕하면 80이라는 말이 무색한 시절이다. 강녕하면 100세 넘게 살 수 있다는 오만이 있다. 그런 마당에서 50대에 불과한 대학동창이 지난해 불현듯이 떠났다. 너무 갑작스러워 미국에 있는 가족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 요절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지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숙연하고, 아쉬울 뿐이다. 다시 한 번이 없는 단 한 번 뿐인 삶, 언제 생이별을 고할지 모르는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그 친구가 사망하기 몇 개월 전, 고향을 찾은 그를 잠깐 만났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와 대화하면서 그가 독실함을 넘어 지독한 크리스찬이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천국을 꿈꾸고 있었다. 정작 자신도 생활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이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고단한 삶이 그를 단명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를 일이다.친구는 떠나면서 작은 일력을 건넸다. 믿든 믿지 않든 좋은 말씀이니까 읽어봐라. 그리고 총총히 가버렸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정유년 1월이 다 지나가는 엊그제, 책상 한 켠에 놓여 있던 성경 일력을 펴보았다. 1월1일 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6)구약성서 예레미아 편에 나오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에 무슨 말이 있었는가를 알아야 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 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그 여호와의 말씀이 일력에 소개된 렘18:6이었다. 그 아래에는 크리스찬이 아닌 필자같은 사람들을 위한 도움 글이 붙어 있었다. 요약하면, 남미에서 활동한 엘리엇이란 선교사가 인디언 등을 선교하기 위해 선교회관을 짓던 중 큰 홍수가 나서 모든 시설물을 잃고 말았다. 그 후 엘리엇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날 아침 나의 모든 수고와 땀과 기도가 들어 있는 선교회관을 휩쓸어가는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너의 하나님이다. 지금도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 이제 나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실 것입니다굴곡많은 삶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구약성서 예레미아 18장6절은 기독교인 여부를 떠나 동서고금을 통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릇 세상일이란 것이 확실한 신념과 긍정적 태도를 가질 때 좋은 결과물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2017년 정유년은 나라 안팎으로 우울하다. 1월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이익 우선주의 앞에서 한미FTA 재협상도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졌다. 250억 달러를 넘나드는 우리 이익이 축소될 수 있다. 사드 때문에 중국과 불편해진 상황에서 트럼프의 강공이 이어지는 건 설상가상이다. 북한의 핵개발, ICBM은 상시 위협이다. 제반 주변 환경은 악화일로인데 탄핵 정국과 대권 경쟁으로 어수선하다. 전북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완전폐쇄 충격을 기다리고 있다.개인도 마찬가지다. 일자리와 임금이 줄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로맨스는 사라졌다. 팍팍함과 건조함, 이기심, 출세탐욕이 지배한다. 뻣뻣함만 드세고, 나긋나긋함이 사라졌다. 백세시대라는 상업적, 정치적 수사는 사치다. 을과 병에겐 그저 씁쓸하고, 시니컬할 뿐이다. 그럴수록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준비하고, 수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들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2.01 23:02

즉각 하야하라

지난 3일 새벽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확정된 내년도 국가예산은 전년대비 3.7%(14조1000억원) 늘어난 400조 5000억 원 규모다. 국가예산이 4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100조 원을 넘어섰고, 노무현 정부 때 200조 원, 이명박 정부 때 300조 원을 돌파했다. 새 정권 때마다 100조 씩 늘어난 셈이다. 김영삼 정부 때 OECD에 가입, 자칭 선진국 샴페인을 터뜨린 대한민국은 그 위상에 걸맞는 예산 신기록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사상 초유의 400조 원대 슈퍼 예산에 걸맞게 나라가 진 빚도 2017년도엔 682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국가채무가 40%를 넘어서는 건 심히 경계할 일이다.가계빚도 천정부지다. 작년 3월께 1130조 원 규모에서 움직였던 가계부채잔액이 1년 전 1200조 원을 넘었고, 불과 1년 만에 1300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국가예산이 400조 원을 넘었지만 속은 곪아 있고, 부채 폭탄을 안고 있는 정부는 폭발을 피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게다가 수출로 성장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호를 둘러싼 글로벌 분위기가 녹록치 않다. 11월 말 현재 수출입 규모가 8185억 달러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역 1조달러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하게 언급하고 있고 이에 금리 상승 우려가 일면서 세계 경제가 출렁거리고 있다. 관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 보호무역주의가 이웃 국가들로 확산될 경우엔 우리 경제가 더욱 비틀거릴 것이다. 가계빚 1300조 원을 짊어진 대한민국 국민들의 어깨엔 무게를 알 수 없는 짐이 얼마나 더 얹혀질지 모를 일이다.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이미 국민 탄핵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오만방자하게도 그 직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국가 이익을 좀먹는 이적행위다. 국내외 급변하는 상황에서 벌써 두 달 째 국무회의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대통령이 무슨 대통령이란 말인가.선비는 오로지 신의(信義)가 있어야 한다.일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라 4년 가까이 국정을 수행했다면 국민적 믿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그 믿음을 잃었다. 국민의 표를 얻어 그 직을 얻은 자라면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의 책임자일 뿐, 주인이 아니다. 일꾼이 주인을 기망하고 사익을 취하고자 했다면, 그래서 국민 신뢰를 잃었다면, 그 행위가 비록 미수에 그쳤다고 해도 허물이고, 그것도 큰 허물이어서 그 직을 내놓아야 한다.선비는 의로워야 한다. 옳은 일이라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임실 오수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의견은 주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 목숨을 버렸다. 짐승인 개도 제 주인의 목숨 살리는 것을 의롭게 알고 몸을 던졌는데 일국의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이 국가 안위를 외면한 채 사사로이 대통령직에 연연하는가. 국민을 위한 의를 지키지 않은 선비는 선비 자격이 없다.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을 옹립,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며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일궈온 자들이 대부분 책임을 회피하거나 똑같이 뻔뻔 모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범 의식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지난 여섯 번의 촛불집회에서 확인됐듯이 대한민국은 대단히 성숙한 민주사회다. 허물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돌 던질 국민은 없다. 늦지 않았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박 대통령을 향해 하야를 요구하기 바란다. 그게 그동안 호가호위한 자들이 할 최소한의 도리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12.07 23:02

전북대병원 성숙한가

전북대병원은 전북 최대 종합병원으로 전북인의 건강을 책임진 주요 의료시설이다. 또 전북 유일의 권역 응급의료센터다. 전북대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지금까지 교통사고 등으로 찾은 중증 응급환자 3만4000여 명을 치료했을만큼 그 위상이 크고 중하다.그런데 요즘 전북대병원이 이상하다. 급기야 내일 열리는 중앙응급의료위원회에서 권역 응급의료센터 지정이 취소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지난 9월 30일 교통사고를 당해 긴급 수술을 받아야 했던 두 살배기 남자아이에 대한 병원측 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번 사건을 두차례 조사한 뒤 전북대병원의 비상진료체계, 환자 다른병원 이송 및 진료과정의 적정성 등에서 병원측의 과실을 문제삼은 것이다.아기는 헬기 이송 전 전북대병원에 5시간 가량 머물렀다. 그러나 병원에 가면, 국가 지정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가면 아기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보호자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아기는 병원에 5시간 가량 머물렀지만 전북대병원과 타지역 병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놓쳤고, 사고발생 7시간이 지난 뒤에야 200㎞ 이상 떨어진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돼 수술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전북대병원의 응급환자 부실 대응은 이번 뿐 만이 아니다.지난 7월2일 새벽 전북대병원에 실려간 10세 여아를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헬기를 기다리던 중 병원측이 준비한 산소통의 산소가 떨어졌고, 설상가상 헬기에 설치된 산소공급장치마저 작동이 안돼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소방응급헬기의 산소공급장치 불능도 문제였지만, 응급환자의 목숨이 달린 산소통을 허술하게 관리한, 권역 응급의료센터 병원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물론 병원측이 중증 응급환자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겠지만, 지역 간판 종합병원에서 큰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극히 위험한 것이다. 병원의 이미지 타격과 손실은 자업자득이겠지만, 생명을 앗길 수 있다는 도민들의 불안감은 어쩌나. 이런 식이라면 또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이 때문에 20일 예정된 중앙응급의료위원회가 전북대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 지정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그런데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전북지역 유일의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취소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한다. 이번 사고에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꼭 전북대병원만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고, 이번 기회에 국가 응급의료시스템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도 한다.아마, 오는 2018년 개원 예정인 원광대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가 현재 가동 중이라면 이런 얘기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어린이, 청소년이 병을 얻으면 꿈을 잃을 수 있고, 성인이 일을 하지 못하면 가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질병을 고치지 못하면 장애를 얻어 고생하거나 결국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의료진이, 병원이 환자들에게 새 삶을 불어넣고, 가정에 행복을 꽃피워 준다.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하지만 건강지킴이, 생명지킴이가 실수를 잇따라 저지른다면 사람들은 불안하다. 언젠가는 내 이웃이, 내 가족이, 내 자신이 그 실수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병원에 신뢰감이 떨어지면, 불안의 장막이 드리워지면 결국 상호피해만 있을 뿐이다.약20년 전 일이다. 셋째 아이 출산을 눈앞에 두고 분만실에서 대기 중이던 산모가 의료진 잘못으로 양수가 터졌다. 산모는 졸지에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 직후 세상 빛을 본 아이가 한동안 울지 않아 뇌손상 장애까지 걱정해야 했고, 몸에 매우 크고 흉측한 수술흉터를 가져야 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20년이 지났다. 의료진이 많이 바뀌고, 수천억원대 시설과 장비를 갖췄다. 그렇다고 사고 발생이 없는 것은 아니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우리가 없으면 너희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10.19 23:02

관청 피해자 모임의 원입골수

원입골수(怨入骨髓)라는 말이 있다. 원한이 뼛속에 사무쳐 있을 정도이니 그 억울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피는 피를 부르고, 사람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하지 않는가.검찰을 필두로 하는 권력기관 일부 인사들의 범죄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려내도 또 곪으니 부정한 자본가 등과 결탁해 못된 짓을 일삼는 경찰, 검사 등이 드라마 속 단골 메뉴가 됐다. 기소독점주의 체제에서 공소권을 틀어 쥔 검찰 등 갑에 속하는 직업군이 TV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건 아쉽고 씁쓸한 일이다. 물론 거악 척결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검사가 대부분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드라마 속 일탈 검사들의 행태가 현실 사건의 검사 범죄와 왜 그리 똑같은지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실형을 선고받은 그랜저 검사, 기소됐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무죄판결 받은 벤츠여검사, 게임업체 넥슨과의 부정한 커넥션 의혹이 불거져 결국 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최유정 전 부장판사 등 잇따르는 비위는 국민을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인기드라마를 보듯 하게 만든다.인터넷 포털 다음에 관청피해자모임이란 카페가 있다. 타이틀 옆 괄호 속에 썩은 판사, 재벌, 장군 색출이라고 적시한 이 모임은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또 약자와 피해자 편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할 대한민국의 관청 및 관청 출신 권력가들에 의해 짓밟힌, 천고의 한이 될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들에게는 하나같이 원입골수가 있다는 것이다.그 회원들이 지난 4월 전주고법에서 열린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재심 관련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전주를 찾기도 했다. 재심 결정이 내려진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공소시효가 지났다. 결국 이 재심사건의 판결은 진실을 규명, 가짜 3인조 강도의 원입골수를 풀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당시 사건의 부정처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장 등의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하는 의미도 있다.정운호 게이트에서 홍만표, 최유정 등 거물급이 등장하며 해묵은 전관예우 비리가 새롭게 부상했던 지난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관예우 피해 사례 발표와 전문가 좌담회에 회원들이 나서 사례발표를 한 적이 있다. 정모씨는 동업자와 150억 원대 투자를 하여 50억 원대 이익을 냈지만, 동업자가 이익금을 차지하기 위해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앞세워 장난치는 바람에 오히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10년 넘게 투쟁 중인 그는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법원, 변호사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씨는 특히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는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악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관예우에 대해 현대판 호환이요, 마마라고 말한다.11년 전 대한송유관공사에 다니던 딸이 이 회사 인사과장의 차 안에서 무참히 살해된 아픔을 안고 있는 유모씨는 피고인이 전관예우를 기대하고 사건 발생장소가 아닌 원주경찰서에 자수하고, 이어 원주지방법원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 변호사는 거짓 변론으로 일관했다며 전관예우 폐단을 지적했다.억울한 사연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황모씨는 정보기관 간부 신분으로 이스라엘에서 근무하던 중 2007년 해임됐다. 그가 해임된 사유가 기가막히다. 이스라엘 현지에 부임한 황씨는 공관 전세금과 보수비용 등 2000만 원 정도를 전임자가 횡령한 사실을 파악, 본사에 알렸다. 그러나 본사는 오히려 황씨를 해임했다. 황씨는 법원으로부터 징계 무효 판결을 받아냈는데,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회사는 그를 의원면직 처리했다.어디 원입골수인 사람들이 이 뿐이겠는가. 국가, 기업 등 모든 조직에서 원칙이 무너지면 결국 끝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08.24 23:02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믿어도 되나

자충수는 찝찝하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발이 된 모양새인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가 그렇다.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서 의원은 딸을 인턴으로 채용했고, 딸은 이를 로스쿨 서류 경력으로 활용했다. 오빠를 회계책임자로, 또 동생을 비서관으로 채용해 월급을 지급했으며, 보좌관이 법정 한도금액인 500만 원을 후원하도록 했다.이에 주변의 비난이 쏟아졌다. 서 의원은 결국 지난달 30일 더민주당 당무감사원으로부터 중징계 결정을 받았다. 최종 징계 수위는 당의 법원 격인 윤리심판원이 조만간 결정하게 된다.서영교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려깊지 못한 행동을 사과하고 반성했다. 당이 탈당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도 했다.사실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이 전혀 새로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은 여야 정치권이 익히 아는 사실이다.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유독 서영교 가족채용을 일제히 맹비난 하는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도 하다.우리나라에는 국회의원들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라, 마라 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서의원처럼 가족이나 친인척을 채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친인척 채용이 허물은 되겠지만 범법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인척 채용은 부적절하다는 공감대만 막연하게 존재할 뿐 국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과거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나 정동영조배숙 의원 등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썼지만 문제삼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엊그제 정동영 의원이 적어도 내 경우는 문제될 것 없다고 밝혔다. 친인척 중에는 그야말로 정치적 동지로 발전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서영교 사건이 터졌을 때 특권남용 챔피언이라고 맹비난했던 새누리당이 박인숙 의원 등 제식구들의 허물 앞에서 곧바로 꼬리를 내린 코미디도 그래서 나왔다. 결국 1일 현재 여야 친인척 보좌진(인턴 포함) 44명이 면직됐다. 전북에서는 초선인 안호영 의원의 6촌 동생이 비서관에서 물러났다.의원 보좌진 친인척 채용과 관련하여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은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이번 사태에 머쓱해진 정치권이 8촌 이내 친인척 채용 금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내기로 했지만, 결국 국회가 부적절한 친인척 채용을 묵인해 왔음을 자인한 꼴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특권, 세비 등 이익과 관련된 문제점을 알면서도 평소 어영부영하다가 터진 일 아닌가. 특권남용 챔피언 자리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손발 놓고 있었던 정치권이 호들갑을 떨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국회의원들이 가족이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것은 몇가지 매력 때문이다. 서 의원 딸이 보좌진 경력을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에 활용했듯이, 또 최경환 의원 매제가 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상임감사로 임명됐듯이 보좌진 자리는 당사자 인생의 큰 디딤돌이 된다. 정부 부처를 직접 상대하며 입법과 예산, 정책 등을 두루 다루는 보좌관들은 시야가 넓어지고 다방면으로 능력이 출중해진다. 연봉도 좋다. 게다가 가족이나 친인척은 국회의원이 정치자금, 회계 등 민감한 업무를 처리할 때 믿고 쓸 수 있다. 서 의원은 오빠를 회계 책임자로 썼다. 이런 이점 때문에 가족이나 친인척 채용 심리가 강할 수 있다.서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들이 정치권이 파 놓은 일상의 함정에 걸려 허우적 거리고 있을 뿐, 결국은 국회 자신의 허물이다. 정치권은 서영교 의원만 마녀사냥 하듯 몰아세우기에 앞서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 특권 전반에 대한 정비를 제대로 하라.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세금으로 해외를 다녀오기 일쑤지만, 일반국민은 자비로 외국 여행을 하며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 얼마 전 북유럽을 다녀왔다는 인사가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사례가 많은데 한국은 대형승용차를 고집한다. 겉멋 부리고 으스대라는 금배지가 아닌데마침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속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자문기구를 만들어 불체포면책 특권 등을 손질하겠다고 하니, 하여간 기대해 본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07.06 23:02

에브리바디스 파인

Everybody s Fine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다들 잘 지냅니다라고 할까. 엊그제 어버이날에 본 영화 제목인데, 15년 전인 2009년 세상에 나온 외화다. 커크 존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영화의 주연은 홀아버지 프랭크 굿 역의 로버트 드 니로 등 다수의 배우가 맡아 훈훈한 가족애를 보여 주었다. 곧 내 이야기, 내 가족 이야기일 것도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영화 속 아버지 프랭크는 평생 전선공장을 다니다 퇴직한, 그야말로 평범한 아버지다. 슬하에 2남2녀 4남매를 두었고, 항상 엄격한 전통적 가장의 표상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나름의 꿈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후 가정과 직장에만 충실했다.그림을 곧잘 그리는 큰아들 데이비드가 평범한 화가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프랭크는 정색을 하며 개가 오줌을 누는, 그저 그렇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진짜 예술가가 되라고 엄하게 훈육한다. 프랭크의 자식을 대하는 훈육방식은 데이비드 뿐 아니라 4남매 모두에게 일관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정직과 최고를 요구하는 아버지가 부담스러웠고, 스트레스였다. 아버지와는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지 못했다.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애썼다. 둘째아들 로버트가 음악을 곧잘 하는 것을 놓고 프랭크가 큰 기대를 할 때였다. 타악기 연주를 하는 로버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로버트가 지휘자로 성장했다고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아들을 이해하려고 애쓴 엄마였다.프랭크는 4남매가 잘나가는 화가, 연주자, 무용가,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어느 날 41년을 함께 한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홀아비가 돼 적적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프랭크는 예정됐던 연휴 가족 모임에 4남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오지 않자 근심에 휩싸인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프랭크는 뉴욕, 덴버, 라스베가스 등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을 찾아 떠나고, 큰 아들 데이비드를 제외한 아이들을 모두 만난다. 로버트가 악단 지휘자가 아니라 타악기 연주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등 자녀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이해하려 애썼다. 현실이고, 내 자식이니까. 그러면 데이비드는 어떻게 지내는가. 불행하게도, 데이비드가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 아파 하는 프랭크. 하지만 데이비드는 개가 오줌을 누는 그림을 그리는 평범한 화가가 아니라 진정 예술을 추구한 예술가였다는 화랑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데이비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영화는 자녀를 양육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역할, 그리고 가정 교육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전선공장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원했다. 자녀들의 재능을 알아내고 그 분야 최고 실력가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아버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최고선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의 요구 수준이 자신들의 역량에 비해 과도하다는 사실을 알고 방황한다. 그렇게 스트레스에 빠진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자녀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다. 남편에게는 선의의 거짓말도 하면서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아버지의 정공법 사랑을 완충하는 어머니의 사랑법 덕분에 4남매는 탈선하지 않고 곧게 성장했다. 비록 큰아들이 요절했지만, 미술 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을 곧잘 찾으니, 아버지는 예술가로 살다 간 아들이 자랑스럽다.우리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어떠한가. 과거의 프랭크처럼 자녀를 사유물처럼 짓누르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가 가는 길을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인생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 부모는 영화 속 어머니처럼 자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해해 주는 지원군일 뿐 아닌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05.11 23:02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세상에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반듯하고 아침이슬 같은 정치인과 사리사욕에 빠진 생쥐 같은 정치인이다.많은 정치인은 표와 정치권력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필요하면 영혼이라도 팔아버리는 정치인을 수없이 보았다. 단체장이 되고, 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그 주변에서 한자리 얻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이 많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재물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꾼과 다를 것 없다.어엿한 선량, 올곧은 선비, 영감으로 존경받는 존재에게 무슨 실언이냐고 책망할 수도 있겠다. 세상살이 뭐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도 하겠다.안철수 의원이 탈당, 딴 살림을 챙기자 당명을 바꾸는 등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2개월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김종인을 영입하는 깜짝쇼를 했다. 김종인은 추락 위기에 처했던 더민주당을 회생시키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누구인가. 경제전문가인 그는 노태우 정부에서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2012년 새누리당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지냈다. 이 때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박근혜 후보 당선을 도왔지만 선거가 끝난 후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자기 뜻과 다른 방향이라는 이유로 새누리당과 결별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때 국보위에서 일한 그는 이후 11대, 12대(민정당) 14대(민자당), 17대(새천년민주당) 등 4선 국회의원을 했다. 그가 이번에 비례대표 2번을 받았으니, 지난 35년간 4개 정당에서 비례대표 5선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됐다.새누리당도 준비했던 깜짝쇼를 내놓았다. 엊그제 강봉균 전 의원을 413총선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경제전문가인 강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지냈다. 야당 당적으로 군산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다. 강 전 의원은 비례대표에 관심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4년 전까지 야당 편에 섰던 그의 변신은 깜짝 놀랄 일이다.이런 깜짝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이 경제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본다. 새누리당-더민주당-국민의당 승부 못지 않게 이들의 대결도 관심거리다.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경제전문가 영입은 좋은 포석이다. 힘든 경제, 청년실업 등 난제가 많은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경제 아닌가.게다가 이들은 호남과 연고가 있다. 호남지역 민심을 우호적으로 돌릴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새누리당의 강봉균 영입이 확정된 21일 전주을의 정운천 후보가 환영한다고 밝힌 것도 그런 기대일게다.그렇더라도, 과거 대척점에 있었던 인물, 정체성이 크게 달랐던 인물을 영입하는 정당들의 행동은 당연한가. 그에 응한 주연 스타들은.정치인들은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의정부 갑선거구에서 기사회생한 문희상 의원은 선거판은 전쟁판이라면서 전쟁에서는 어떠한 원칙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기기 위한 게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국회의원, 정치인이라면 시대의 양심이고 대쪽같은 선비정신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정체성이 시류에 쉬이 흔들리거나 눈 앞의 이익을 생각 없이 좇아가는 부류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책사는 머릿속에 든 지식 몇 푼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양지만 좇는 해바라기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보필한 재상 이사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원칙을 깨고 실익을 좇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노회하고 명석했던 그에게 브레이크가 없었기 때문이다.세상에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고결하고 존경받을 일이 너무 많다. 정치적 성공만이 인생의 성공은 아니다. 국민을 눈높이에 두고 흔들림 없이 가는 사람이 아름답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03.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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