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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분열 총선

방송 드라마에서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전후한 이야기는 인기를 모은다. 수백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기도 한 탓이다.흔히 제왕은 하늘이 내려준다고 하니, 그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는 뭇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야당의 한 인사가 국부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군부독재의 중심에 있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도 흥미있는 드라마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대한민국은 조선의 몰락, 식민시대를 거쳐 70년 전 독립한 동아시아 소국이다. 그곳에서는 가난과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다.독재와 도전이 있었고, 기적같은 일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무역규모 1조달러 경제 선진국이 됐다. 일제에 맞서 싸우고, 민주화운동을 하고, 가난과 싸워 세계 10위 경제권에 진입했다. 대한민국이 온갖 고난을 헤치고 거둔 거대한 성공 스토리 속에 있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들을 다룬 드라마는 태조 이성계의 개국을 둘러싼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할 것이다. 분노와 감명이 함께 할 것이다.그들은 어떻게 대통령이 됐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관계 너머에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운발이 있을까. 천운을 타고 났을까. 운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너무 재미없는 고리타분한 구성일까.운칠기삼이란 말이 있다. 세상 일의 성패는 노력이나 실력보다 운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 운칠기삼의 기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태어났을 수 있다. 18년 독재 후 30여년 만에 대통령 딸을 배출한 박정희 가문은 운칠기삼을 너머 운구기일 정도의 천운이 배어 있는 것일까. 아무튼 도전과 성공은 인기 드라마의 단골 손님이다.요즘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OECD회원국이면서 수출입 규모 1조 달러, 세계 경제 랭킹 10위를 오르내리는 대한민국이 어수선하다. 여러 난제들이 겹친 탓이다.가계빚이 1000조원을 넘어섰고 청년 일자리, 은퇴자 일자리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대기업은 돈이 넘치고, 상당수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장사가 안돼 아우성이다. 유가 폭락, 중국발 악재 등이 터지며 세계 증시가 널뛰기장이다. 나홀로 잘난척하며 금리 인상을 선언했던 미국도 엉거주춤이다.대통령은 국회가 노동개혁법을 처리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시위하고, 여당은 제 손으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고치겠다니 여반장도 유분수다. 야권은 피할 수 없는 권력 투쟁에 빠졌다.국내 문제의 많은 것은 코앞에 닥친 총선과 대선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여당은 전열을 정비하느라 시끄럽고, 지지율 떨어진 야당은 혼비백산하더니 갈래 갈래 흩어졌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정치권이 이익 좇아 갈지자 행보다. 전북정치권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 정치가 운칠기삼인가. 사실 야권의 이번 혼란은 문재인 대표 책임이 크다. 문재인 대표는 비주류와 안철수 의원 등의 퇴진 요구를 받아들였어야 한다. 나무에 올려 놓고 흔들어 댄다고 탓만 할 것이 아니었다. 겸손은 사람을 끌어 모으고 더 큰 기회를 만든다.진짜 문제는 분열한 야권의 도덕적 해이다. 지난 수십년간 헤쳐모여를 반복하다보니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정체성도 모호해졌다. 대의를 좇는지, 사익에 급급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야권 이합집산이 결국 총선을 앞두고 정리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만일 그들이 통합하거나 연대를 하면 지지했던 민심은 난감할 것이다.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넘어가면 그만인가. 정치 무관심층 양산 작전인가.야권이 뭉치지 못한 건 작은 권력에 취했기 때문이다. 수권은 커녕 견제도 난망한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야권은 운칠기삼을 믿어야 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운은 준비가 잘 된 자에게만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6.01.27 23:02

결국 뒤집힌 오월동주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 20대 총선을 향한 야권 줄서기가 시작됐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박원순에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에게 양보하며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공동 창당한 정당을 아예 탈당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병호 의원과 호남의 유성엽 황주홍 도당위원장이 1차적으로 동반 탈당할 것이란 예고도 나왔다.사실 안 의원이 최근 3년여 사이 참신한 이미지 때문에 급부상했지만, 안 의원의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또 얼마나 강력한 구심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이런 즈음에 터진 안철수 탈당 정국은 그가 진정한 정치적 재목인지를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안 의원의 탈당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대권을 꿈꾸는 그가 자신의 창업 지분이 확실한 제1야당을 탈당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고, 탈당을 결행하기 전에 고도의 계산을 했을 것이다.안철수 의원은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자신이 결코 나약하지 않고, 항상 밀리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표를 향해 줄기차게 혁신을 주문했지만 문재인 대표는 이미 혁신위를 통해 혁신안을 내놓았고, 실천하면 될 일인데 더 이상 뭘 혁신하라는 것이냐며 외면했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안 의원의 혁신 요구가 딴지 걸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 의원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문재인을 공격하는 정치공세일 뿐이었다. 애초 안 의원의 혁신 요구는 문 대표에게 받아 들여질 가능성이 제로였고, 안 의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탈당 명분을 쌓은 뒤 제 갈 길 가는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안철수 의원의 단기적 목표는 이제 문재인 체제, 노빠 체제의 새정연 체질을 깨고 환골탈태한다는 구당에서 진정한 안철수 신당 창당 쪽으로 정해졌다. 물론 내년 총선에서 제1야당 입지를 굳히고, 2017년 대선에 출마하는 포석이다.위기는 기회를 만든다고 했다. 야권 분열 정국은 안철수는 물론 문재인에게도 기회다. 큰 기회가 어느 쪽으로든 주어질 것이다. 신의 손이 신당 추진세력의 누구에게 갈지, 문재인 대표 머리에 얹어질 것인지는 오리무중이다. 확실한 예측은 거대 여당 새누리당에 맞선다는 고루한 명분이 적어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머리를 쳐들 것이고, 갈기 갈기 찢겨진 이들은 또 다시 뭔가 명분을 만들어 야권 통합이라는 카드를 국민 앞에 내놓고 구걸할 것이란 점이다.최근 야권 분열은 상생 거부에서 비롯됐다. 너 죽고 나 살기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3월 자력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힘이 없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통합해 만들어 졌다. 당시에는 모두가 낯 꽃을 피웠지만 이제 등을 돌렸다. 그 핵심은 국민 이익이 아닌 정파 이익이다. 문재인은 마음을 비울 줄 알아야 했고, 새정연의 노빠 색깔이 결국 독이란 점을 눈치챘어야 했다. 물론 알면서 어찌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에 친박, 비박이 있듯이 새정연에는 친노, 비노, 주류 비주류가 사사건건 대립했다. 야당이 내분에 휩싸여 여당과 청와대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그런 새정연을 국민이 외면하니 서로 네 탓만 외쳤다.야당은 새누리당에게서 배워야 한다. 새누리당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10년간 청와대와 국회 권력을 되찾기 위해 전열을 정비했다. 뭉쳤다. 그렇게 되찾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철옹성을 쌓았다. 10년 전 손학규가 탈당하기도 했지만 전열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3당 합당체지만 큰 흔들림이 없다. 제1야당이 수없이 헤쳐모여를 반복해 온 것과 분명히 다르다. 어쨌든 야권은 지긋지긋한 통합 명분을 준비하면서 또 분열했다. 안철수 의원은 자청해 오른 시험대에서 뭘 생각할까.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12.16 23:02

알맹이 빼먹는 게 취미인가

260억 원과 55억 원. 2010년 기준 LH공사와 국민연금공단이 본사 소재지에 내는 각각의 세금 규모다. 연 200억 원대 이익을 놓고 벌인 전쟁에서 전북은 졌다. 배후에는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권이 있었다. 이후 1년만에 벌어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쟁에서도 전북은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금융도시를 꿈꾸는 전북에 LH 악몽이 덮쳤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북에 흘러드는 꿀 찍어 내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수도권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이전이 시작된 2009년 10월1일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법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출범했다. 당시 주택공사는 경남진주혁신도시, 토지공사는 전북전주혁신도시로 이전토록 돼 있었기 때문에 LH공사가 어디로 가느냐는 최대 쟁점이었다.전북은 2009년 5월 통합공사의 인력과 기능을 2대 8로 조정, CEO가 포함된 본부가 전북에 배치되면 20%를 수용하겠다는 2대 8 배치안을 제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초 통합공사 부사장으로 내정됐던 전북 출신 강팔문 국토부 국장의 부사장 내정이 취소됐다. 이유는 통합공사 본사 배치라는 민감한 사안을 앞두고 특정 지역 출신 부사장 임명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반대파 제거다. 최근 국민연금공단 최광 이사장 사퇴는 그 재판이다.정부는 결국 2011년 6월16일 LH문제를 최종 심의한 지역발전위원회가 경남 진주혁신도시 일괄이전을 결정했다고 밝힌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담화문을 통해 LH공사의 통합취지 및 경영효율성 등을 고려할 때 일괄이전이 바람직하다며 전북에 대한 세수보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인데, 2010년 기준 연간 세수 55억 원에 불과하지만, 당시 400조원을 관리하는 기금운용본부가 딸린 황금같은 기관이다. 이에 260억원짜리 LH를 노획한 새누리당 영남정권은 배 아파 괴로워 했다. 그 결과, 2012년 7월10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 차단에 나섰다.사실 기금운용본부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전북에 주겠다고 약속, 전북혁신도시 이전이 결정된 기관이다. 2012년 제18대 대선이 시작되고, 대선 주자들이 전북을 방문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2012년 10월28일 전북선대위 출범식에서 전북도민의 염원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도 (전북혁신도시에) 함께 이관하겠다고 밝히자 새누리당과 박근혜 선거캠프가 김재원 의원을 통해 기금운용본부의 소재지를 전북으로 명시한 국민연금법 개정법률안을 11월20일 대표 발의했다. 이어 22일에는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김재원 의원, 정운천 전북도당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도민들의 염원인 국민연금기금 운용 주체를 전북으로 유치, 지역의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며 전북 도민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를 유도했다.하지만 12월10일 발표된 박근혜 후보 대선공약에서 기금운용본부 전북이전은 빠졌다. 그럼에도 투표일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박근혜후보 명의로 된 세상을 바꾸는 약속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 선거 현수막을 전북의 거리 거리에 내걸고 박근혜 후보의 약속임을 확인시켰다.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정부여당은 표리부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을 진행시키면서도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장관, 경제부총리는 공사화를 강행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가 전북이전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는데, 이를 새누리당 전북도당인들 믿겠는가. 처음부터 주지 않는 것보다 주었다 빼앗는 것은 더 나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11.04 23:02

헤쳐모여 좋아하다가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8일 창당 60주년 기념식을 갖고 100년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지난 60년간 헤쳐모여를 밥 먹듯 했는데, 100년 정당을 이룰지 의문이거니와, 설령 100주년 기념식을 성사시킨들 그 모습이 성대할지 의문이다. 적어도 최근 새정연 모습으로 봐서 그렇다.새정연 창당 60주년을 놓고 새누리당은 창당 60주년 주장은 야당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새누리당의 지적이 정치공세인 것 만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2003년 노무현 세력이 모여 만든 열린우리당이 새정연의 전신이란 시각인데,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연은 과거 열린우리당 판에 가깝다. 그래서 친노판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비노파가 문재인 대표 체제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것이다.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새정연이 지난 5월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킬 때 김상곤 위원장은 계파를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혁신위가 활동한 지난 4개월동안 친노와 비노가 계속 다퉜다. 지난 16일 새정연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된 뒤에도 파열음이 계속되는 것은 문 대표와 그를 떠받치는 친노세력 체제에 대한 혁신안이 빠진 탓이다.투쟁은 혁신을 낳고, 혁신은 창조적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새정연의 내부 정치권력 투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의와 선당 보다는 개인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이 강해지면서 싸구려 투쟁으로 비춰지는 것은 유감이다.2000년 국민의 정부 시절 DJ 최측근 권력가 권노갑씨가 40대 젊은 국회의원들의 주먹 한 방에 정치 2선으로 물러났다. 천신정이라고 불리는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이 주도하는 정풍운동의 중심 타겟이었다. 당시 DJ의 동교동계 가신 그룹은 DJ를 능가하는 호가호위 권력, 새천년민주당의 미래를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 비난받았고, 차기 정권 창출의 걸림돌로 지목됐던 것이다.천신정 정풍운동 결과 가장 큰 이익을 취한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익만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됐고, 사후에도 친노세력을 통한 존재감이 위협적이다.권노갑을 탄핵하는데 앞장선 정동영 전 의장은 부패 권력에 맞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한 젊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가 됐다. 하지만 2002년 대선 경선에서는 노무현 후보에게 졌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통일부장관을 지내고, 열린우리당 의장을 했지만 친노세력과는 물과 기름이었다. 친노계의 견제에 막혀 운신 폭이 좁아졌고, 결국 고향 순창에서 칩거하는 신세다. 그는 요즘 매운 여뀌를 질근 질근 씹으며(嘗蓼) 미래를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2002년 천신정이 뜯어고친 민주당 판에서 과실을 취한 것은 노무현이었다.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해 자신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끊임없이 흔들어 댔던 민주당 구당파와는 대통령이 된 후 완전히 결별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 친노세력은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 2004년 총선에서 재미를 봤지만 2007년 당을 해산해야 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힘이 조금 세진 자의 만용이었다. 야당 세력이 헤쳐모여 만든 통합민주당은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또 헤쳐모였다. 그런데 불과 1년여만에 또 헤쳐모여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패거리들이 헤쳐모여를 반복한 전통을 또 잇겠다는 것이다.정당이 제대로 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면 조직 안정이 먼저다. 정풍운동한다고, 혁신한다고, 상대방이 싫다고, 정치 상황이 불리하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헤쳐모여 습관을 들이는 것은 책임있는 정당,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권력에 눈이 어두운 소인배들이 어떻게 100년 정당을 만들겠는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9.23 23:02

전주농협 도약의 조건

전주농협은 자산 1조 1000억 원에 달하고, 조합원 수 5800여명, 30여 개의 사업장과 230여 명의 직원을 둔 대형 조합이다. 전주복숭아, 전주배 등 유명 브랜드 농산물은 전국 경쟁력을 갖췄고, 65만 전주시민이 농산물과 금융 소비자로서 떠받치고 있다. 전주농협은 지난해 전년대비 9억 증가한 47억 5400만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고, 5년 연속 농협중앙회 클린뱅크로 선정된 우량 조합이다.하지만 최근 전주농협이 불안하다.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날로 늘어나 농산물 수입물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률 하락세 여파로 금리가 크게 떨어지는 등 주변 영업 환경이 만만찮다. 게다가 전임 박서규 조합장이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고 불과 4개월 만에 낙마했는데, 설상가상 지난달 다시 치른 선거를 통해 취임한 임인규 조합장마저 선거법 위반혐의로 법정에 선다.전주농협은 지난해 47억 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직원 상여금 깎아 순익을 늘렸다는 내부 불만이 나왔고, 원예농협 등 경쟁 조합들의 도전 등을 고려할 때 전주농협이 언제까지 수십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낼 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36만 원씩의 농사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하고, 무려 1000명 넘게 인파가 몰린 취임식에서 이를 확인했다. 경영 환경이 어려운 만큼 농사연금 지급 약속은 경영진을 압박할 것이고, 대대적인 내부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전주농협은 지난 몇 년간 조합장 선거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은 자칫 조직 단합을 해칠 수 있다. 전주농협이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쌓인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소해야 한다.하지만 아쉽게도 우려가 엿보인다.지난 7일 오전 전주 시온성교회 강당에서 열린 임인규 조합장 취임식장에서 원로 소형철 조합장(4선)이 뼈있는 충고를 했다.소 전 조합장은 축사에서 전주농협은 1988년 전국 평가에서 1등을 했다. 이후 10여년 간 수위를 달려온 모범 조합이라며 그런데 웬걸 조합장 선거를 하면서 이쪽 저쪽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조합원들이 그 모든 것을, 서로 간에 조정해 가면서 조합발전을 뒷받침해 달라고 했다. 전주농협의 선거 폐해를 질타한 것이다.그러나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소 전 조합장의 소망도 위기다.임 조합장이 취임사에서 이제 선거는 끝났고,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하나이고, 뭉쳐야 산다. 선거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시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감싸 달라.고 호소하자 현장에 있던 한 참석자가 고소하고 절대 교도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하며 실소한 것. 실제 임 조합장이 지난 선거 과정에서 상대 진영 누군가를 직접 고소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참석자의 실소 섞인 말은 전주농협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임 조합장이 취임사에서 화합을 말했다. 자신의 허물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 했다. 하지만 본인이 먼저 상대에게 다가가 이해를 구하고 또 뭔가 조합 발전 차원의 치유에 솔선하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이 때문에 임 조합장이 7월 23일 출근부터 임직원 줄 세우기에 들어갔다는 둥, 오는 20일 예정된 조합총회에서 선출할 이사 4명, 감사 1명도 친정 체제용으로 구축할 것 아니냐는 둥, 농사연금 지급에 문제가 크다는 등 비판이 흘러나오는 것이다.임인규 조합장은 35년을 조합과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그가 성공한 조합장이 되려면 우선 선거법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화합의 리더십을 보이고, 깨끗한 처신으로 경영에 매진해야 한다. 봉급을 깎을 필요도 없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면 된다. 그동안 조합장 선거와 대의원, 이사, 감사 선거 때 나타난 허물들을 걷어내고, 화합하고 뭉치는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8.12 23:02

대기업 살려 지역경제 살린다고?

전북에도 서호, 거성, 비사벌, 제일, 엘드, 성원 등 쟁쟁한 건설사가 많았다. 성원과 제일, 엘드 등은 쟁쟁한 1군업체였다. 하지만 요즘 주택건설 시장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시들하다. 제일건설이 부활하고 있고, 일부가 소규모 건설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전북 주택건설업계의 어려움은 우미, 중흥 등 외지 업체들이 파죽지세 행보를 계속하는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 만성지구와 효천지구 등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전북혁신도시 아파트 브랜드는 LH, 호반, 우미, 중흥 등이 대부분이다. 전주 만성법조타운의 공동주택지는 중흥에스클래스와 골드클래스가 싹쓸이 했다. LH공사가 최근 진행한 전주 효천지구 공동주택용지 입찰에서 우미건설과 경기도 소재 대방건설이 3개 블록 모두를 낙찰받았다. 우미건설은 25층 규모 60~85㎡형 1147세대가 건설될 6만2529㎡짜리 A1블록을 공급예정가격 715억9571만원(3.3㎡당 377만원대)의 146%인 1045억2974만원(3.3㎡당 551만원대)을 써내 낙찰받았다. 또 1152세대 규모의 A2블록도 공급예정가격 713억1013만원(3.3㎡당 374만원대)의 146%인 1041억1279만원(3.3㎡당 547만원대)에 사업권을 땄다. 대방건설이 낙찰받은 아파트용지도 3.3㎡당 552만원에 달한다. 3.3㎡당 550만원 짜리 공동주택지는 전북지역에서 처음이다. 3.3㎡당 분양가 1000만 원짜리 아파트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전주에 자리 잡은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 만성법조타운, 효천지구는 행정과 법조 등 각종 공공기관이 집중된데다 교통도 편리, 주거 입지상 그야말로 노른자위로 평가받는 곳이다. 외지 업체들은 아파트 수요가 몰릴 것으로 판단, 분양가 1000만원을 겨냥한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전북지역 주택건설업체들은 자금난으로 군침만 흘렸을 뿐이다. 새롭게 열리는 아파트 시장 정보 수집과 분석, 그리고 과감한 경영 판단에서 뒤진 결과다. 심각한 것은, 이같은 대형 주택건설 부진이 업계의 경영부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북 경제 전체에 미치는 타격이 이만 저만 아니다. 첫째, 외지업체 득세로 수조원에 달하는 지역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둘째, 지역 건설업체들의 기술력, 경쟁력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셋째, 외지 주택건설업체들이 자사 거래 중소기업에만 하도급하는 관행 때문에 지역 중소업체들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넷째, 최고가 입찰제도 때문에 택지가격에 이어 아파트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일이다. 지역건설업계가 자본력이 앞선 대형건설사에 더욱 밀리게 된 것은 정부가 지난 2006년 ‘30만㎡ 미만의 공동주택지 공급자는 해당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한 택지개발업무처리지침’을 폐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역업체 우선권’에 안주했던 지역 건설사들 중 정신을 차린 쪽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안주는 영혼까지 갉아 먹는다. 게다가 지역 업체들은 아파트 보수공사에서도 수도권에 완전히 밀리고 있다. 얼마전 국토부가 변재일 의원(새정연)에게 제출한 ‘2011~2013년 민간아파트 보수공사 시공실적 현황 ‘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 전문건설업체 중 40%(554개)에 불과한 수도권 소재 업체가 금액 기준 74.4%의 공사를 가져갔다. 많은 공사를 따내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수도권업체들이 부익부를 누리는 구조는 아파트 건설시장과 똑같다. 자본주의 시장은 경쟁 속에서 성장한다. 또 가격 대비 고품질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소비자 입장도 중요하다. 무조건 지역업체를 우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거리가 지나치게 대기업 쪽에 쏠리는 현상, 소비자 피해를 강요하는 최고가 경쟁입찰제도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것들은 개선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7.01 23:02

박근혜 정부와 일본

일본의 우경화가 매우 심각하다. 군국주의 침략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패전 후 만든 평화헌법을 고쳐 군사력 확장을 꾀하겠다고 한다. 독일이 틈만 나면 나찌의 학살전쟁을 사과하는 반면 일본은 과거 역사 반성에 인색하다.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주변국의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곁만 고집한다.매우 심각한 아베의 우경화우리는 그런 일본을 보며 항상 쓸개를 곱씹고 살아야 한다. 자국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는 일본을 처절하게 배우고, 방패는 자칫하면 뚫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도 그렇다. 일본의 엔저 공세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전북 기업들의 일본 수출이 전년대비 20% 감소했다며 아우성 아닌가. 이순신 장군이 23번의 해전에서 23번 모두 승전하며 일본군을 몰살시켰지만, 일단 방패가 뚫린 조선은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다. 총성만 없을 뿐 경제는 전쟁이다.과거 조선은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의 10만 양병 경고를 외면했다. 당시 북방에서는 여진족 등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노부나가 천하를 이어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또 문호를 개방, 선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결과 조총부대를 보유했다.그러나 명나라를 대국으로 떠받들며 눈치나 살피던 조선은 제 앞가림은 뒷전인 채 오로지 명나라 우산 아래 안주했다. 일본을 얕보고 당파싸움만 일삼다가 결국 1592년 조총을 앞세운 일본의 침략에 대나무 쪼개지듯 무너졌고, 금수강산은 유린당했다. 물론 명나라 우산 덕을 조금 보았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명에 의존한 조선은 얼마 후 임금이 누루하치에게 무릎 꿇고 절하며 항복해야 했다.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확히 300년 후인 1894년 전북 고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전쟁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강토에 끌어들인 조선은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방으로 주권까지 빼앗겼다. 손자병법에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하지만 결정적 실수가 반복되면 패망한다. 일제 36년은 두고두고 씹어야 할 와신상담이다. 당시 일본이 못된 것을 빨리 배워 악랄하게 써 먹었지만, 국제정세를 정확히 간파하고 신속하게 대처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 2450톤급 군함 4척을 앞세운 미국 페리제독의 시위에 화들짝 놀라 1854년 2월 미일화친조약을 맺으며 대문을 활짝 열어 제낀 일본은 연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고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켰다. 일본이 미국에게 배워 조선을 위협할 당시 조선은 대문 걸어 잠그고 정쟁만 일삼았다. 변화를 외면하다.최근의 일본 태도는 단호하다. 아베는 얼음장처럼 냉정하다. 미일이 손잡고, 중러가 손잡는 상황에서 일본은 손해볼 것이 없다. 중러가 손잡은 것을 빌미로 일본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이 있든 없든 우경화 속도를 높일 호재일 뿐이다. 아베가 건재하는 한 일본이 우경화를 멈출 이유가 현재로선 없다.가만히 바라만 보는 한국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를 탓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일본은 과거 숱하게 한반도를 침략한 역사를 갖고 있고,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위안부 만행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헌법 9조를 바꿔 언제든 외국에 군대를 진격시킬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일본이 최근 태평양 전쟁 때 자살특공대 기지와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부대가 소재했던 아마미유쿠 지역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징후로 보인다. 잔혹한 침략 기지를 세계자연유산으로 포장한들 그 허물이 가려질리 만무하지만, 그걸 추구하는 것이 아베의 일본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무얼 하는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5.18 23:02

덕 좀 쌓았소?

전북일보사 2층에 둥지를 틀고 있는 공자아카데미 화하관으로 이어진 계단 벽에 사자성어가 쓰인 족자 3개가 걸렸다. 정치, 모든 사람들 소망 이뤄주는 장치첫 번째 족자는 견현사제(見賢思齊)다. 공자 말씀을 담은 논어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의 한 대목이다. ‘어진 사람을 대하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옮길 수 있다. 계단을 몇 개 더 올라가면 두 번째 족자가 눈에 들어온다. 영정치원(寧靜致遠)이다. 역시 군자의 행동, 몸가짐을 지적한 공자 말씀이다.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靜以修身 儉以養德)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고,(非淡白无以明志)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뜻을 멀리 펼칠 수 없다(非寧靜无以致遠)고 풀이된다.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가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공자 말씀이다. 하나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새겨 두어야 할 명구들이다. 새 봄을 맞아 화하관측이 방문자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했다. 새해, 새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삶이 조금 더 내실해지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해야겠다, 내 적성에 맞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목표한 진로를 향해 올해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등의 다짐을 했을 것이다. 직장인들은 동료들과의 관계, 승진 문제, 은퇴문제 등을 고민했을 수 있고, 사업가들은 매출 증대를 위해 다지고 개척해야 할 고객들과의 관계,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 등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은퇴자와 노인들은 건강과 자식들의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부를 갖고 뛴다. 좋은 일자리, 괜찮은 소득, 해외 여행도 가끔하고 골프를 즐기는 멋진 삶을 이루고자 한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나와 이웃의 행복을 기원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삶은 영글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다중이 모여사는 조직화된 인간사회에서 정치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고루 이뤄줄 수 있는 장치다. 부모들이 3∼5세 자녀들을 마음놓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터에 나가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부정부패 공무원·정치인·기업인 없애는 것도 정치의 몫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미달자는 아예 내보내지 않는 것도 정치가 할 일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을 연출하면서도 위풍당당하게 고개 뻣뻣한 적반하장 꼴불견들을 우리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도 정치 몫이다. 경제 사회 전반 뿐 아니라 지역을 제대로 챙기는 것도 정치 몫이다. 하지만 이렇듯 한도 끝도 없는 정치가 해야 할 수많은 것들은 결국 정치인 개인에게서 비롯된다. 내년 선거 입지자들, 바른 몸가짐부터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정치인, 공무원 등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개인들이 제 몸가짐 하나 제대로 가다듬지 못했다면, 제 아무리 능력을 갖췄던 들 국민이 무슨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공자 말씀에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사람들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며 공복을 자처한 정치인들은 덕을 쌓은 후 국민에게 표를 구해야 한다. 요즘같은 고학력 시대에 능력, 실력이야 오십보백보다. 내년 4월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벌써 많은 입지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정치인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표 구하기 전에 덕 쌓기를 권한다. 그래야 세상이 견현사제하며 존경하고, 스스럼없이 일을 맡길 것 아닌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06 23:02

색즉시공(色卽是空)

청양의 해 2015년 설 연휴가 끝났다. 사업장에 따라, 또 직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1주일에 가까운 긴 연휴를 보냈다.긴 연휴인지라, 일찌감치 고향 다녀간 뒤 외국 여행을 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고향집을 찾아 어른들 뵙고 성묘도 하며 복된 새해를 염원하는 자리를 가졌을 것이다.위로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고향집에서 부모형제, 친척, 친구들을 만나 왁자지껄 소회를 나누다보면 세상살이 힘든 것도 잠시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된다. 처가도 다녀가야 명절이 끝이니 바빴을 것이다. 주름살 아래 서운함을 애써 묻은 채 오직 자식 사랑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늙은 어른들의 배웅이 가슴에 걸려도, 현실 일자리로 돌아가야 다음 행복도 예약할 수 있다.요양병원을 다녀온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노부모가 거동을 잘 못해 낯선 요양병원에서 설 명절을 보내는 가족의 아픔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은 하얗게 샌 봉분 앞에서 그리운 부모 얼굴만 그리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세상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톱니바퀴처럼 착착 돌아가지만, 언제나 수월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잘 돌아가다가도 몇 번 쯤은 뻑뻑 소리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멈춰버리기도 한다. 아침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한평생 살고 싶지만, 어느 순간엔 저녁 무렵 소쩍새처럼 피울음 울기도 한다.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다. 항상 좋은 시절도, 항상 고된 시절도 없다. 새옹지마다. 극히 일부 비극적 인생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어려움은 언제까지 지속되지만 않는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인생은 그저 남가일몽일 뿐이다. 욕심부리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설 명절 일주일 전인 지난 12일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는 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적용한 항공기항로변경죄, 폭행죄, 강요죄, 업무방해죄 등 대부분 혐의 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이날 재판부의 판단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두고 두고 곱씹으면서 살아가야 할 명언으로 가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이 반성문 7편을 재판부에 제출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극구 변명한 피고인이 쓴 반성문에 진실이 결여됐다고 본 것이다.조현아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큰딸이다. 한진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닦은 터전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아버지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조현아는 물론 그 집안과 한진그룹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세상 웃음거리가 됐다. 그들의 인간문화가 의심됐다. 재판부가 징역 1년형을 선고하는 순간 조 전 부사장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 순간에 조차 그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1심 판결 전에 2억원을 공탁했다는 조현아측은 이유를 알까.마음 비우고 지혜 얻으면 행복땅콩회항 사건은 재벌의 기업 사유화가 부른 비극이다. 그들의 일부 그릇된 행복관념이 빚은 자업자득이다. 재계에 불었던 인문학 경영 열풍은 한갖 쇼였는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사건이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교도소로 향한 조현아는 아이들과 명절을 쇠지 못했다. 그 가족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리겠는가. 그가 교도소에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얻으면 한없이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 또한 인생의 머나먼 여정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2.23 23:02

행복하십니까

연말연시 영화계는 단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 ‘인터스텔라’ 등이 이끌었다. 요즘 인기 있었다고 거론되는 영화라면 수백만 관객이 몰리기 마련이니, 시시콜콜하게 이들 영화의 관람객 수를 적시할 필요는 없겠다.이들 작품이 관객의 발길을 잡아 끈 것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고, 영화 속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 부모 세대의 초상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굴곡의 현대사 담은 영화 보며 울컥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95세인 할아버지가 98세에 운명할 때까지 약 3년간 노부부의 생활을 그렸다. 공간적 배경은 어느 산골마을이다. 자식들은 도회지 등에서 살며 명절이나 부모 생일 때나 찾아와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다가 썰물 빠져나간다. 자식들은 노부모 생일에 서로 ‘제대로 못모신다’며 싸운다. 대한민국 상당수 가정의 씁쓸한 풍경이 적나라하다. 노부부는 항상 고운 커플 한복을 입고,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치고,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여생을 즐겁게 살아간다. 어느날 갑자기 98세 할아버지는 89세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한다. 할머니는 예고된 작별 앞에서 목놓아 운다. 국제시장은 중공군에 밀려 철수하는 미군 함정에 승선하려고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 인파의 처절한 사투, 가슴 찢어지는 절규부터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파병 등 광복 후 우리 부모 세대들이 겪은 상처를 고스란히 그려냈다.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잃고 소년가장 구실을 톡톡히 해낸 덕수 이야기를 통해 굴곡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펼쳐냈다. 영화 속의 덕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등장하는 조병만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조 할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강계열 할머니댁에 결혼을 약속받고 들어가 머슴처럼 일했다. 건강하고 성실했던 조 할아버지는 강 할머니의 사랑으로 결혼했고, 격동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왔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장년층·노년층에게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고, 젊은층에게는 부모 세대의 유난히 굵은 주름에 얽힌 사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관람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 이유일 것이다. 똑같은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이지만, 자라온 환경에 따라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인간적 동정이나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물밀 듯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일제시대와 광복시대, 근대화 시대를 숨가쁘게 살아온 50대 이상 세대에게 현대사는 비극이면서 행복이었다. 일제의 잔혹한 손아귀를 벗어난 기쁨도 잠깐이었다.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지고, 좌우세력이 극한 대치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어른들은 영양실조가 걸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개구리며 쥐까지 잡아 먹였다. 쌀은커녕 보리조차 부족하니 무밥, 시래기밥을 해야 가족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루 한끼를 먹고 물로 배채운 사람도 수두룩했다. 끼니를 고구마나 감자 한두개로 때우는 것도 감지덕지 했다. 남의 집 헛간 같은 곳에 세들어 살면서 두손가락이 갈퀴처럼 되도록 일했다. 서울 가면 잘 살 수 있다며 농촌의 10대들이 도시로 몰려갔지만 착취를 당하거나 인신매매 당하는 이들도 수없이 많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지금 그들 가슴에 처절하게 남아 맴돈다. 눈물이 저절로 난다. 국가 발전했지만 장·노년층 씁쓸2015년 1월,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권 반열에 올라 있다. 무역규모가 1조 달러가 넘어섰다. 분명 대한민국은 성장했고, 발전했다. 하지만 많은 장노년층은 씁쓸하다. 그 찢어지는 가난과 고난을 이겨내며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어쩐지 서럽다. 영화 속 노부부처럼 자식과 살지 않는다. 자식들은 눈치꾼이 됐다. 요양병원만 번창한다. 진정 행복은 무엇인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1.12 23:02

임실, 굿판을 벌여?

임실이 바람 잘 날 없는 고장이 됐다. 임실군수가 법정을 안방 드나들 듯 하고 있으니, 굿판이라도 한바탕 푸지게 벌여야 할 모양이다. 도대체 주민들 힘으로 임실을 휩싸고 있는 이 망할 놈의 한을 풀어낼 도리가 없다는 말인가. 지난달 27일 검찰이 심민 임실군수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민선 6기동안 임실군청을 접수한 수장들이 모두 기소되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재확인된 순간이기도 하다. 민선 임실군수들 모두 기소돼심군수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은 누군가의 고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11월 이형로 군수가 옷을 벗은 이후 계속되는 임실군수 낙마 사태를 살펴보면 경쟁자들의 끊임없는 감시, 발목잡기가 치열하다. 상대 후보 사무실 맞은 편에 사무실을 확보한 뒤 24시간 감시한 사실이 과거 임실군수 재판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살기등등한 임실 선거판에서는 당사자들이 더욱 원칙을 지키고, 뼈를 깎는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가장 법을 잘 지키고, 도덕적이고, 청렴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목에 비수를 겨눈 상대 패거리들이 난립하는 것을 무시했다. 시시각각 감시와 고발에 온갖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는 하이에나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했다. 답답하다보니,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굿판 벌이는 것이 부끄럽다면 풍수지리가의 분석도 제기된다. 임실이 고향인 풍수지리가 최낙기 교수는 “수백년 이상 된 고을의 지형을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선조들의 지혜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임실의 심장부인 임실읍은 선조들이 지혜를 발휘해 만든 조화가 깨져 있다”고 지적한다. 삶의 터전이든, 묏자리든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풍수지리 과학에 의하면 ‘위치’가 중요하다. 바람길을 막고 햇볕을 잘 받으며 눈·비가 와도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곳이 명당이다. 그래서 산과 하천이 중요했다.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곳이 최상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풍수지리는 보완 조치를 취했다. 이른바 비보풍수(裨補風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할 때 사회적 파장이 인 지역에 대한 풍수지리적 분석은 무시하기 힘들어 보인다. 최교수에 의하면 단체장들이 구설수에 오른 지역은 관청이 엉뚱하게도 산 뒤편에 위치해 있거나, 맥이 끊겼거나, 수구(水口)가 열린 형국이 대부분이다. 임실읍의 경우 수구가 열리고, 맥이 끊긴 경우에 해당한다. 지형상 임실읍내를 관통하는 하천 물은 북쪽으로 흐른다. 이 때문에 바람이 북쪽에서 읍내로 분다. 바람은 지나치면 일상생활에 해롭다. 선조들은 이를 경계하여 읍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 그러니까 임실고 부근에 숲정이를 조성해 바람을 차단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숲정이가 없다. 주민들이 수구를 연 것이다. 최교수는 “수구가 열려 북방이 허해졌다. 이 때문에 수장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민 단결·화합의 단초 마련돼야또 임실읍 맥이 잘렸다고 지적한다. 임실군은 1990년대 중반 무렵에 임실우회도로를 냈다. 전주-남원간 도로에서 청웅·강진·순창 방면으로 연결되는 읍 외곽도로다. 최 교수는 이 도로를 내면서 고을의 맥이 끊어졌다고 분석했다. 임실군청이 몇 년 전 신청사로 이전했지만 수구에서 너무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논바닥 한 가운데에 지어진 신청사에 대한 비보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임실읍내 일대는 35사단 이전과 일진제강 입주 등 영향으로 부동산가격이 최대 10배 뛰고, 지역경기가 근래 최고다. 하지만 수뇌부가 안정되지 못하면서 지역 이미지가 추락했고, 발전 기반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형국이다. 예를 들어 옛 숲정이를 복원, 지역의 명소로 만드는 일은 단순히 풍수적 비보 차원을 넘어 주민 단결과 화합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고을 입구에 숲을 조성한 선조지혜를 옛 것이라고 그저 흘릴 일이 아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12.01 23:02

파종 앞둔 우리밀 단상

봄과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우리는 보릿고개라고 부른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쌀 뒤주의 밑바닥이 보일락 말락 할 즈음, 보리 수확의 간절함을 보릿고개라고 표현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동시 작가 박화목이 1970년대에 작사한 가요 ‘보리밭’은 우리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한다. 정부가 외면한 밀농사, 농부들이 살려보리를 소재로 한 노래만 있는 게 아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아궁이에 불 지피고 물이 끓는 사이에 만든 밀가루 반죽을 날렵하게 떼어내 차려준 수제비, 칼국수를 아련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는 밀도 있다. ‘밀밭길 울타리 사이로 조그만 오솔길 있네…’ 1980년 나온 가수 허인순의 노래 ‘밀밭길 추억’도 아련한 가슴 속 가장 자리에 묻혀 있던 옛 추억을 스멀스멀 피어나게 만든다. 보리밭과 밀밭.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면서 배고팠던 시절의 아픔도 자아내게 하는 마음 속 공간이다. 하지만 2014년 현재, 보리와 밀은 그 처지가 크게 다르다. 2014년 보리 생산량은 13만 712톤이다. 정부 수매가 폐지된 후에도 농협과 가공식품 업체 쪽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예전에 비해 훨씬 귀하신 몸이 됐다. 하지만 우리밀 생산량은 2만 4000톤 정도에 그쳤다. 20년 전 거의 전무하던 것에 비해 엄청난 약진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는 1984년 밀 수매를 폐지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우리밀을 버리지 않았고,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우리밀 재배를 시작했다. 전북 김제, 부안 일대가 그 중심에 속한다. 결국 정부는 2008년 ‘제2의 녹색혁명’ 정책을 발표하면서 밀 육성책을 내놓았다. 2015년까지 밀 자급률 10%가 목표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식용 밀 소비량이 220만 톤 가량인 점을 고려할 때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2014년 밀 생산량 2만4000톤은 전체의 1%에 불과하다. 2011년 4만3000톤까지 생산됐으니, 최근의 밀 생산량은 전체 소비량의 1-2% 수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이는 정부가 로컬푸드의 장점을 버리고 철저히 수입밀 정책을 고수한 탓이 크다. 민간이 밀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지난 20여년간 겨우 2만 톤 생산을 달성했을 뿐이다. 제조업 수출 위주의 정부 정책이 먹거리 기반을 위협하고,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입밀은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70㎏까지 떨어질 때 밀은 35㎏까지 올라갔다. 밀은 대한민국 제2주식이다. 하지만 수입 농산물은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소량의 친환경 농산물을 비행기로 운송하는 방식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화물선 편으로 장기간 운송되는 밀가루, 옥수수가루 등 곡물은 해충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로컬푸드 우리밀은 그야말로 텃논에서 나오는 동네 식재료다. 싱싱하고, 위해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크게 줄어든 식재료다. 그동안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로컬푸드 밀가루 가격이 비싸 접근이 쉽지 않았다. 우리밀 가격이 과거 수입밀 대비 3배에 달했다. 하지만 요즘은 1.5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밀 생산농가가 늘어나면서 점차 가격 경쟁력도 갖춰가고 있다. 우리밀 살리기, 정부도 지원책 강구를전북지역에서는 김제와 부안 등에서 우리밀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제시우리밀영농조합법인 이재병 대표, 전남 구례 우리밀영농조합법인 밀벗의 최성호 대표 등이 우리밀 살리기에 노력해 온 결과다. 정부가 수십년간 외면했던 밀 농사가 농부들의 손길로 살아났다. 정부도 밀산업 육성에 고민하는 모양이지만, 현장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어렵게 살린 우리밀이 대기업 잔치가 될 수 있다는 낌새 때문이다. 10월 중순으로 넘어가면서 농부들은 바쁘다. 벼 수확한 뒤에는 밀과 보리를 이어짓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밀에 헌신한 농부들의 땀이 헛되지 않도록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10.20 23:02

전북, 충청도를 벤치마킹하라

‘정치는 생물이다’는 말이 있다. 급박하게 펼쳐지는 정치적 상황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화무쌍해서 승리도 난관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항상 치열하게 전개되는 정치적 상황은 언제 어떤 돌발 변수로 인해 전혀 예상 밖 방향으로 틀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원 불변은 없고, 진퇴양난 고착상황일 때는 한 발 물러서 협상할 줄 아는 것도 지혜라는 뜻도 보인다. 30년 가까이 획일화된 전북 정치판물과 기름같던 김대중과 김종필이 손을 잡은 ‘DJP연합’은 ‘정치는 생물이다’란 말의 결정판이 됐다. 당시 대한민국 정치판은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두 사람, 두 정당이 손잡고 정권 창출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두 손을 굳게 맞잡고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 시대를 열었다. 물론 이에 앞서 적과의 위험한 동침을 한 사람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을 끌어들여 대선 후보를 만든 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물론 김영삼이 집권 후 노태우·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 2명을 단죄함으로써 그들의 밀월은 끝났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김영삼이 만든 정당이 지금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민심의 역풍에 시달리던 노태우가 내린 판단은 결코 흐린 게 아니었다. 정치판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적과 동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 정치판이다. 문제는 전북이다. 전북에서 정치는 생물이 아니라 화석이다. 적과의 동침은 없다. 변화하지 않으니 어찌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방한했던 프란치스코교황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장밋빛 미래를 갈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 엄중한 경고였다.지금 전북은 깨어있는가. 아마 눈만 껌벅거리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만약 깨어 있다면, 지나치게 한 곳만 째려보느라 판단이 흐려진 상태일 것이다. 전북은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연명해 왔는지 모른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말이다. 지난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됨으로써 이제 전북처럼 정치판이 획일화된 곳은 대한민국에 없다. 이제 전북은 충청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난 15대 총선 이후 충청도(충남·충북, 대전)는 당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판이 계속됐다. 민심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않았다. 냉혹하게 심판했다. 정치인들이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15대 때 자민련이 득세했지만, 16대 때 충청도 민심은 자민련과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에 고르게 표를 주었다. 17대 때 노무현 탄핵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싹쓸이 했지만, 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에 몰표를 주었다. 그 와중에서도 통합민주당에 3석, 한나라당에 3석을 나눠주었다.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에 9석, 민주통합당에 9석, 자유선진당에 3석을 주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선전했지만, 충청도 민심은 정치인들에게 한 치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몽둥이 하나만으론 사냥에 성공 못해전북인들은 충청도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들은 몽둥이 하나로 사냥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든든한 몽둥이 두세 개를 가지고 협공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냥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북이 28년 전에 버린 몽둥이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다. 요즘 예산철을 맞아 송하진 도지사가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향해 지방 예산을 챙기라고 요구했다. 11명의 지역구 국회의원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깎고 있다. 몽둥이 하나로 사냥하는 전북 정치의 한계가 확인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냥은 커녕 자기 살길도 없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9.01 23:02

판소리 인간문화재 안숙선

판소리 고장 남원이 고향인 명창 안숙선씨(64)는 당대 가장 빛나는 판소리 스타다. 6세부터 극단생활을 하며 재능을 키워온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후 주연 소리꾼으로 국악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용인대 국악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로 후학들에게 국악을 전수하고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고향의 소리문화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세월호 아픔에 휩싸인 안산에서 ‘치유와 희망의 음악회, 당신을 위한 노래’ 합동 음악회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과 함께 열었다. 안 명창은 이날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 한양으로 떠난 이도령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대목을 노래하며 유족 등의 아픔을 다독였다. 그는 기쁨과 슬픔이 혼재하는 이 시대 모두의 소리꾼으로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가야금산조·병창 예능보유자 지정1986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안 명창은 제2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3), 옥관문화훈장(1999), 서울시문화상(1999) 등 굵직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국악인이다. 안 명창은 언제나 판소리를 하고,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안 명창은 몇 년 전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공연에서 무대를 꽉 채운 100여명의 가야금 병창단 중심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켜며 노래했다. 그는 판소리 뿐만 아니라 가야금병창도 매우 잘하는 것이다. 그는 판소리가 아닌‘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이다. 안 명창의 행적을 보면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짙게 드러난다. 아마 그가 판소리가 아닌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가 된 데는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안숙선 명창의 스승은 만정 김소희 선생이다. 고창 흥덕이 고향인 김소희 선생은 ‘국창’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창’으로 불릴 만큼 근현대 판소리계를 휩쓴 여류 명창이다. 만정 선생은 부부 국악인이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이 고향인 남편 박석기는 거문고 산조의 명인으로 알려진다. 일제시대 고향인 창평에서 서편제 명창 박동실을 후원했다. 당시 박동실에게서 판소리를 배운 제자들이 김소희 선생을 비롯해 장월중선, 한애순, 한승호, 김동준, 박귀희 등으로 알려진다. 박석기는 19세기 말 거문고 산조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지는 백낙준에게서 거문고 산조를 배웠고, 한갑득에게 전수했다. 한갑득은 1938년 서울에 올라가 거문고 연주가로 명성을 쌓았다.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남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판소리를 익힌 김소희는 일취월장, ‘국창’으로 추앙될 만큼 판소리계의 거목이 됐다. 청출어람격으로 그의 제자 안숙선, 신영희, 박윤초 등은 현대 판소리계를 주름잡고 있다. 쟁쟁한 소리꾼들이다. 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돼야그러나 만정의 소리를 공식적(?)으로 물려받은 제자는 딱 한사람이었다. 많은 제자들의 소리가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지만,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지정은 1명 뿐이었다. 그 제자가 박윤초 명창이었다. 박윤초 명창은 김소희 선생의 딸이다. 부모의 예술적 기질을 모두 타고난 듯 박 명창은 판소리, 가야금병창, 전통춤 등 많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가 되는데 모자람이 없는 국악 예술인이다. 어쨌든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가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아닌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현대 소리판에서 최고봉으로 맹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최고의 판소리 명창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안 명창에 대한 판소리 인간문화재 지정은 당연하다. 판소리 본고장 전북이 챙길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7.21 23:02

독배를 든 사람들

민선 1·2기 전북도지사를 지낸 유종근 전 지사는 정읍이 고향이고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51세이던 1995년 도지사 후보로 나섰을 때 지역에서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가 미국 뉴욕주립대학원을 졸업했고, 뉴저지주립럿커스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는 점, 김대중 총재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 경제 전문가라는 점 등이 도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김대중 측근이라는 것 외에 그의 도덕성과 능력이 검증된 바 없었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유종근은 경제전문가, 김대중의 두터운 신임 등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첫 도전에서 총 653,295(67.20%)표를 얻어 당선했다. 1998년 민선 2기 선거에 단독 출마한 그는 경력란에 ‘대통령 경제고문’을 추가했고, 총 758,141(100%)표를 획득해 재선에 성공했다. 19년간 자치단체장 16명 중도하차그가 도지사에 당선됐을 당시 전북은 1980년대 중반부터 분 황색바람이 거셌다. 막대기를 꽂아도 노란색과 기호2번이면 당선되던 시절이다. 그에게 김대중과 노란색, 기호 2번이 없었다면 도지사에 도전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호사다마인가. 유 전 지사는 파죽지세의 여파를 몰아 2002년 초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해 5월 군산 F1그랑프리 대회 유치 업체인 세풍측으로부터 3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5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괜히 잊혀진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기호 2번 공천권을 따내고 치열한 선거전을 치러 당선의 영광을 안은 단체장들이 지위를 활용해 독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 도내에서 당선된 도지사와 시장군수는 모두 47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것은 아니다. 전체의 34%인 16명이 힘겹게 오른 고지에서 떨어졌다. 민선 1∼5기 동안 비리와 선거법 위반, 의회 업무 방해 등 혐의로 교도소에 가거나 중도 하차한 단체장은 유종근을 비롯해 이창승(전주), 김길준 강근호(군산), 국승록(정읍), 윤승호(남원), 김상두 최용득(장수, 최용득의 경우 배우자 선거법 위반으로 자진 사퇴), 이형로 이철규 김진억 강완묵(임실, 이형로의 경우 최종 무죄 판결), 강수원 이병학 김호수(부안) 강인형(순창) 등이다. 교육계에서는 염규윤 씨가 교육감 선거에서 백지수표 뇌물을 교육위원들에게 돌렸다가 낭패를 당했고, 최규호 씨는 뇌물을 받은 혐의가 퇴임 후 들통나자 도주, 잠적했다. 도지사와 시장·군수, 교육감은 전북을 이끌어가는 최일선의 지도자들이다. 지도자가 정신 못차리고 썩으면 지역사회는 낙후되고 위축된다.쥐 잡는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부패한 지도자는 쥐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하면서 본인은 물론 초가삼간마저 태우는 공공의 적일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몇몇 후보는 본인과 측근 관리를 못해 결국 3선 고지를 넘지 못했다. 몇몇은 재판을 남겨두고 있다. 당선인들 수많은 유혹 이겨내야6·4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모든 당선자들은 축하받을 자격이 있다.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들이 출사표에서 밝혔듯 이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일만 남았다. 자신이 내건 공약을 재점검하고, 상대가 내건 공약도 지역 발전에 필요한 좋은 정책이라면 취하는 넓은 자세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당선자들은 모두 당선 순간 독배를 손에 들었다. 그가 마시지 않는 한 독배는 그를 지켜주는 수호신 구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마시는 순간,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사람들이 그 증거다. 제발 한 눈 팔지 말기를 바란다. 주민에 봉사하겠다고 그 자리에 섰지 않은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6.09 23:02

안전불감증에 침몰한 나라

잊을 만 하면 터지는 대형참사가 지긋지긋하다. 심각한 것은 대형 참사 터진 후 반성문만 쓰고 예방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전 불감증과 위기관리능력 부재가 지적되고, 대책 약속이 나오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놀부가 흥부한테 받은 화초장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개울을 건너다 화초장 이름을 깜빡 잊어버리듯 하는 고질병이 여전하다. 대형참사 원인, 안전의식 부족 많아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그동안 발생한 몇몇 대형 참사들을 되새김질 해 볼 필요가 있다.국내 최대 해난 참사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발생한 남영호 침몰사고다. 당시 남영호는 제주도 서귀포항을 출항, 부산항으로 가던 중이었다. 14일 오후 5시 승객 338명과 화물 209톤을 싣고 출항한 남영호는 15일 새벽 2시5분쯤 전남 여수 소리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남영호에 타고 있던 323명이 사망했다. 전형적인 인재였다. 남영호는 여객정원 302명보다 36명을 더 태웠고, 화물은 정량인 150톤보다 2∼3배 더 실었다. 항해 도중 화물이 무너지면서 균형을 잃은 배가 완전히 뒤집혔다. 남영호 참사 23년 후인 1993년 10월 10일 부안군 위도면 파장금항 앞바다에서 침몰한 서해훼리호 참사에서도 무려 292명이 희생됐다. 당시 기상은 악조건이었다. 초당 10∼14m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고, 파도 높이도 2∼3m로 높았다. 하지만 서해훼리호는 정원 221명을 훨씬 초과한 362명을 태운 채 출항했다가 삼각파도를 맞고 무기력하게 침몰했다. 안전불감증이 빚은 대참사였다.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사고는 1995년 6월29일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다. 원인은 부실 시공이었다. 하지만 사후 부실 관리 및 대응이 더 큰 문제였다. 백화점측은 1만 3,732㎡이던 매장을 3만 978㎡로 증설했고, 옥상에 냉각탑을 설치하면서 바닥판의 구조적 손실을 초래했다. 사고 당일 오전 8시5분쯤 5층 식당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대참사가 예고됐다. 백화점측은 이 사실을 알고도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했다. 결국 이날 오후 5시 55분쯤 백화점이 완전 붕괴되면서 502명이 사망했다.이밖에 1997년 8월6일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가 태평양 괌에서 추락해 228명이 사망했고, 2003년 2월18일 대구에서는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빚어졌다. 1994년 10월 21일 발생한 서울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32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고, 불과 2개월 전인 2월17일에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숨졌다. 대형참사들의 공통 원인은 우리 사회에 퀘퀘먹은 안전불감증이다. 남영호는 정량을 훨씬 초과한 화물을 실었고, 서해훼리호는 정원을 크게 초과했다. 이번 세월호 전복사고도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였다. 안개가 심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항했고, 물살이 거센 사고지점을 통과할 때 경력 1년된 3등 항해사가 키를 잡았지만 옆에 선장은 없었다. 컨테이너 화물은 일반 밧줄로 고정했을 뿐이었다. 당국의 권고 항로도 벗어나 있었다. 사고 후 대처도 문제였다. 선장은 승객들을 버려둔 채 좌초된 배를 맨 먼저 탈출했다. 아이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있으라고 한 뒤 정작 선장 등 선원들은 도망쳤다. 선내 방송을 믿었던 순진한 학생만 죽음으로 내몰렸다. 명백한 살인죄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시쳇말이 현실이 됐다. 이제 아이들이 어른들 말을 믿겠는가.불가항력적 사고도 막는 시스템을사고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다. 해방 후 20년 주기로 터지는 대형 해난사고를 두고, 성난 바다의 저주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설사 불가항력적일 수 있는 사고도 막을 수 있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 고인들은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애도의 눈물 바람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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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4.04.21 23:02

위기의 전북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고배를 마신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실성한 듯 기회 있을 때마다 외쳐대던 말이다. 그들은 절치부심 끝에 2007년 대선에서 마침내 정권을 창출했다. 이어진 18대 대선에서도 승리,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완전히 회복했다. 국회의석도 과반 이상을 확보, 옛 영광을 고스란히 되찾았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전북과거 영남 세력은 한반도를 상당 기간 지배했다. 힘이 모자라자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한반도 권력을 장악했다. 고구려와 백제 세력이 힘겨웠던 신라는 중국 당나라와 연합,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것이 통일신라다. 하지만 통일신라는 불과 200여년 만에 후삼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자초했고, 결국 고려 왕건에 의해 멸망했다. 한반도에서 영남 세력이 다시 등장한 것은 신라 멸망 1000년 후다. 1961년 다카기 마사오란 이름으로 일본군 장교를 지낸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영남 정권은 군사독재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다. 1993년 대선에서 김영삼 문민정부가 탄생, 이 나라 권력상층에 군사독재정권 관련자들이 사라졌지만 영남정권은 계속됐다. 박정희 이후 비영남권 대통령은 김대중 단 1명 뿐이었으니, 영남 세력은 통일신라가 멸망한 1000년 후 한반도 권력을 다시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영남 세력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 두 번 패배했을 뿐인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이성을 잃는 행태를 보이니, 그들의 승자독식 권력욕은 하늘을 찌른다.1300년 전,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점령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신라의 경우 옛 문화 유적이 경주를 중심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충청도와 전라도에 걸쳐 있었던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 유적은 고분 몇기에 남아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이 진정한 한반도의 맹주였다면 타민족도 아닌 백제 고구려 문화를 초토화할 이유가 없었을 터인데, 아쉬운 일이다. 1300년 후, 지금 전북에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까지 전북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전북의 현실에 비춰볼 때 영남 세력이 말한 ‘잃어버린 10년’은 지나친 엄살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용한 전북 출신 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유임된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이 전부다. 청와대 비서진에는 전무하고, 공기업 사장에 배치된 인물은 조석 한수원 사장 1명 뿐이다. 검찰과 법원에서도 전북 출신 인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퇴임 대법관 후임으로 방극성 광주고법원장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간이 천리였다. 전북 출신 검사장급 검사는 김희관, 송찬엽, 오광수, 김영준 등 4명에 불과하다. 경찰 인사에서 전북 푸대접도 매우 심각하다. 연초 경무관급 승진 인사에서 전북출신은 단 1명도 승진하지 못했다. 영남출신이 8명으로 가장 많았고, 호남 출신으로 5명이 승진했지만 모두 전남 출신들이었다. 이렇다보니 전북경찰청장과 차장 등 경무관 이상 세 자리가 모두 전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현재 전북출신 경무관급 이상 경찰간부는 홍익태·장전배 치안감, 김학역·강인철 경무관 등 4명이지만 이들도 2∼3년 후를 기약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인사탕평을 말했지만, 현재로선 탕평은 커녕 승자독식 굳히기 상황이다. 미래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전북 국회의원들은 알고 있는가. 영호남 화합이라며, 경북 국회의원과 전남 국회의원이 박정희·김대중 생가를 교차 방문해 홍매화와 이팝나무를 심어주고 박수치는 현실을 도민들은 알고 있는가. 권력에 소외된 전북 살림살이는 엉망이다. 2014년들어 전북도의 재정자립도는 17.6%로 전국 꼴찌 수준이다. 당장 파산지경인 시·군이 수두룩하다. 전북의 미래가 오리무중이다. 전북,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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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4.03.10 23:02

위기의 정치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완벽하게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과거 흑사병이 유럽을 초토화하는 등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해도 인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인류 문명이 초고속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기술적 혁신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이후 250년 동안 창조적 혁신을 거듭하며 물질과 정신 모든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민주주의 정치 제자리 걸음 여전인류가 지구를 완벽하게 장악한 증거는 인구에서 찾을 수 있다. 약 1만 년 전 530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인구는 서기 1세기 무렵 약 3억 명으로 늘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1750여 년 동안 5억 명이 더 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발달된 의약 의료기술은 인간 수명을 늘렸다. 세계인구는 20세기 중반에 60억 명을 돌파했고, 지금은 75억 명에 달하고 있다. 불과 200년 사이에 지구상 인구가 60억 명 이상 늘었다. 폭발적이다. 인간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큰 뇌와 직립, 그리고 손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두 팔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끊임없는 호기심과 상상력, 연구 본능을 갖췄다. 원시인들은 깨진 돌을 주워 그대로 사용하다가 연마해서 다양한 생활도구와 사냥도구를 만들었다. 말 발굽이 빨리 닳아 장거리 정복전쟁을 치르지 못했지만, 인간은 편자를 발명해 멀리 있는 국가까지 정복하고, 장거리 교역도 했다. 기계문명으로 세상은 더 넓어졌다. 엔진을 발명해 자동차와 선박, 비행기, 우주선을 만들었다. 이제 인류의 세상은 우주로 향하고 있다. 엄청난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인류 문명은 반도체의 발전 속도로 비유할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에 ‘황의 법칙’이 있다. 얼마 전 kt CEO로 간 황창규 사장이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으로 일하던 2002년에 주장한 것으로,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02년(2Gb)부터 2008년(128Gb)까지 매년 두 배씩 메모리 용량을 늘렸다. 세상은 그야말로 요지경이 됐다. 책과 신문을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음악과 영화 등도 스마트폰에 디지털 파일로 내려 받아 무한정 저장해 볼 수 있다. 자동차는 전자제어장치가 가득 찬 컴퓨터가 되고 있다. 인류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상상하기 힘든 문명을 현실화하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유난히 느린 것이 있다. 바로 인간들이 하는 정치다. 달나라에 집짓고 살 만큼 현대 문명이 발달했지만, 민주주의 정치는 제자리 걸음이다. 이집트와 남수단, 시리아, 북한 등 수많은 나라에서 정치적 갈등과 핍박,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일본의 아베집단은 전범을 추모하며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같다.시선을 나라 안으로 옮겨보자. 남과 북의 대결구도, 호남과 영남의 대결구도, 진보와 보수의 대립,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양보없는 독선, 탕평없는 국민화합 등 패거리 정치가 국민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정치는 나눔·화합·생명에 중심둬야대한민국에 독재가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가들은 여전히 패거리를 이뤄 이전투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자연계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찬성과 반대에 묶여 제대로 나아가지 조차 못하고 있다. 생존 본능의 이익만 좇을 뿐 이해와 화합은 뒷전에 두기 일쑤다. 인간이 물질 문명의 하수인이 된다면 종말이 있을 뿐이다. 황의 법칙이 계속되고, 인간이 엄청난 풍요를 누리며 그 수를 늘리고, 나아가 우주의 지배자가 된들 무슨 소용인가. 대결과 승자독식의 정치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할 뿐이다. 정치가 이익보다 나눔을, 배타보다 화합에 힘쓰고, 인간과 생명을 중심에 두어야 인간이 살고 지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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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4.01.27 23:02

소병진 소목장의 전주장

전북은행이 얼마 전 ‘전라북도 전통공예 채록 시리즈- 전주장(全州欌’)을 펴냈다. 합죽선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김한 은행장은 발간사를 통해 “전라북도민의 도민의 혼을 담아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공예를 후대에 전하고, 전라북도 문화산업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전라북도 전통공예품 제작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고 밝혔다. 지역 기업이 ‘전북 도민의 혼’이 담긴 전통공예품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관련 연구조사를 진행한 후 채록 시리즈를 발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한 은행장은 2010년 은행장 부임 후 지역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전북지역의 전통문화산업의 현황과 발전방안’에 대해 (사)한국복식과학재단에 의뢰, 연구조사를 시행했다. 전북은행의 메세나 실천이다. 전북 전통공예가구 자부심 '전주장'‘전북 전통공예 채록 시리즈’ 에 실린 ‘전주장’의 주인공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병진 소목장이다. 소목장(小木匠)은 장롱 등 생활가구를 만드는 장인이다. 50 평생 전통목가구 외길 인생인 그는 1992년 대한민국 가구제작 명장 1호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2004년 제29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전주 버선장’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수상한 전통가구 명장이다. 이후 2012년 4월 전북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으로 지정됐다. 소병진 명장의 간판 작품이 된 전주 전통가구 ‘전주장’은 100년 전 전주지역에서만 생산됐던 것으로, 소 명장이 발굴·복원해 낸 것이기에 특히 의미가 깊다. 완주군 용진면 녹동마을이 고향인 소병진은 집안 살림이 어렵게 돼 중학교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전주 중앙가구 소목반에 입사했다. 그의 나이 열다섯 살이었다. 완주 용진에서 20리길을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 공방에서 숙식하며 기술을 연마했다. 1971년 전주에서 열린 기능올림픽 가구부문에 출전, 은메달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대회에서 우수한 실력을 발휘했고, 2004년 전통공예종사자들의 꿈인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약40년 만에 소목장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는 단순히 전통가구를 잘 만드는 장인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창안하는 창의적 장인이다.서울 동일가구에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인사동에 갔다가 한 골동품 가게에서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장’을 만났다. 느티나무로 만든 작고 예쁜 장. 표지판에 ‘전주장’이라고 씌어 있는 이 장은 18세기부터 전주지방에서 쓰던 안방의 예술품이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소 명장은 인사동 골동품가게는 물론 박물관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전주장을 찾아 다녔고, 조선시대 후기 우리 전통가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장’ 복원에 성공했다. 전주장은 그가 산통을 견디며 탄생시킨 명품이 되었고, 전북 전통공예가구의 자존심이 되었다. 그는 이런 과정 속에서 부재와 부재 사이에 한지를 붙여 나무의 변형을 완벽하게 막는 방법을 고안, ‘목가구용 적층부재’란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소 명장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되길지난 11월23일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 위치한 소병진 명장의 공방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았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후보에 오른 소 명장에 대한 심사를 위한 방문이었다. 이들은 소 명장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공방의 전통 수공구와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소명장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대패과 톱, 끌을 이용한 전통방식 그대로 ‘숨은 장부맞춤’을 해보이고, 결과물을 제출했다.그가 이번 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전북의 큰 경사다. 이리농악, 이리향제줄풍류, 임실필봉농악, 위도띠뱃놀이, 백동연죽장, 윤도장 등에 이어 소목장 부문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를 보유하게 된다. 완주군 구이면 천철석 소목장 등 40년 이상 전통 가구예술의 외길을 걷고 있는 장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 것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묵묵히 지키는 명인들이 있기에 이 땅에 민족 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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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3.12.16 23:02

국정감사 단상

19대 국회 두 번째 국정감사가 지난 2일 끝났다. 지난해보다 73개가 늘어난 630개 기관에 대한 감사가 진행된 지난 20일 동안 국민의 눈은 국감장으로 쏠렸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국정감사는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활동이다. 의원들은 기관과 공무원들이 법 테두리 내에서 얼마나 생산적인 공무 수행을 했는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저해하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등 공무 전반에 대해 꼼꼼히 점검하고 지적한다. 잘 한 일은 칭찬 장려하고, 잘 못한 일은 질타하고 개선을 촉구한다. 전북 '2% 경제' 딱지 올해도 재확인국정감사에서는 지역 문제들이 많이 다뤄지고, 이 때문에 지역의 위치도 드러난다. 전북의 경우 올해도 '2% 경제' 딱지가 재확인됐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광주 광산을)이 내놓은 '호남권 경제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단체별 법인의 2012년도 신고소득을 따져보았더니 전북이 꼴찌였다. 흑자기업과 적자기업을 합한 도내 1만4976개 법인의 2012년 소득이 1조78억원으로 법인당 신고소득이 6700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 전체 법인의 평균 소득액 3억8600만원의 17.4%에 불과한 것이다. 또 1위 울산의 평균소득 8억6400만원과는 비교하기조차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세표준 2억원을 초과하는 법인수도 매우 적었다. 우리나라 전체 법인 48만2574개 중 과세표준 2억원 초과 법인수는 전체의 12.5%인 6만84개였다. 그러나 전북과 전남, 광주의 과세표준 2억 원 초과 법인수는 4146개(6.90%)에 불과했다. 이 중 전북 법인은 과연 몇 개일까.자금사정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이상직의원(전주완산을)에 따르면 중소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4개 기관의 중소기업대출과 보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은행의 호남권 대출은 전체의 4.45%, 보증기관들의 호남권 보증잔액은 8.3%에 불과했다. 민주당 유성엽 의원(정읍)이 공개한 '2012년 지역별 국가연구개발사업비'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지원된 사업비가 전체의 42.5%였지만, 전북엔 2% 정도가 돌아갔다. 지역에 자금이 돌지 않고, 연구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이 지역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도내에는 11명의 국회의원과 15명의 자치단체장이 있다. 솔직히 능력이 의심되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도 더러 있다. 전북이 2% 경제로 대변되는 낙후 현실을 벗지 못하는 것이 전적으로 현직 국회의원과 단체장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큰 틀에서 볼 때 전북의 낙후는 그동안 자리와 권력을 대물림하듯 하며 누려왔던 지역 인사들, 지역의 정치권력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대로 전북 투자를 외면해 온 중앙의 '정부·여당'이라는 대단히 큰 권력이 그 중심에 있음은 물론이다. 전략적 사고·냉정한 선택 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이 번쩍이는 배지를 가슴에 달고 폼생폼사하는 만큼 열정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훨씬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전북은 엄청난 몰표를 주었지만, 그들의 시대에 큰 권력을 누렸던 국회의원과 단체장, 지방의원들이 전북의 발전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본인들이야 눈썹 날릴 정도로 뛰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10년의 중앙 권력을 누리고 난 뒤 전북에 남은 것은 2% 경제 딱지가 여전하다는 사실 뿐이다. 돌이켜보면 도민들, 특히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반성해야 한다. 낙후전북을 말하며 정치인을 겨냥하지만, 꼭 정치인들 탓만 할 일이 아니다. 특정 주식에 '다걸기'한 투자자는 망하게 돼 있다. 선거 때 특정 주식에 다걸기 하는 행태가 문제는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전북에는 지금 전략적 사고와 냉정한 선택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04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