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살려 지역경제 살린다고?
전북에도 서호, 거성, 비사벌, 제일, 엘드, 성원 등 쟁쟁한 건설사가 많았다. 성원과 제일, 엘드 등은 쟁쟁한 1군업체였다. 하지만 요즘 주택건설 시장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시들하다. 제일건설이 부활하고 있고, 일부가 소규모 건설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전북 주택건설업계의 어려움은 우미, 중흥 등 외지 업체들이 파죽지세 행보를 계속하는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 만성지구와 효천지구 등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전북혁신도시 아파트 브랜드는 LH, 호반, 우미, 중흥 등이 대부분이다. 전주 만성법조타운의 공동주택지는 중흥에스클래스와 골드클래스가 싹쓸이 했다. LH공사가 최근 진행한 전주 효천지구 공동주택용지 입찰에서 우미건설과 경기도 소재 대방건설이 3개 블록 모두를 낙찰받았다. 우미건설은 25층 규모 60~85㎡형 1147세대가 건설될 6만2529㎡짜리 A1블록을 공급예정가격 715억9571만원(3.3㎡당 377만원대)의 146%인 1045억2974만원(3.3㎡당 551만원대)을 써내 낙찰받았다. 또 1152세대 규모의 A2블록도 공급예정가격 713억1013만원(3.3㎡당 374만원대)의 146%인 1041억1279만원(3.3㎡당 547만원대)에 사업권을 땄다. 대방건설이 낙찰받은 아파트용지도 3.3㎡당 552만원에 달한다. 3.3㎡당 550만원 짜리 공동주택지는 전북지역에서 처음이다. 3.3㎡당 분양가 1000만 원짜리 아파트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전주에 자리 잡은 서부신시가지와 혁신도시, 만성법조타운, 효천지구는 행정과 법조 등 각종 공공기관이 집중된데다 교통도 편리, 주거 입지상 그야말로 노른자위로 평가받는 곳이다. 외지 업체들은 아파트 수요가 몰릴 것으로 판단, 분양가 1000만원을 겨냥한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전북지역 주택건설업체들은 자금난으로 군침만 흘렸을 뿐이다. 새롭게 열리는 아파트 시장 정보 수집과 분석, 그리고 과감한 경영 판단에서 뒤진 결과다. 심각한 것은, 이같은 대형 주택건설 부진이 업계의 경영부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북 경제 전체에 미치는 타격이 이만 저만 아니다. 첫째, 외지업체 득세로 수조원에 달하는 지역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둘째, 지역 건설업체들의 기술력, 경쟁력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셋째, 외지 주택건설업체들이 자사 거래 중소기업에만 하도급하는 관행 때문에 지역 중소업체들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넷째, 최고가 입찰제도 때문에 택지가격에 이어 아파트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일이다. 지역건설업계가 자본력이 앞선 대형건설사에 더욱 밀리게 된 것은 정부가 지난 2006년 ‘30만㎡ 미만의 공동주택지 공급자는 해당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한 택지개발업무처리지침’을 폐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역업체 우선권’에 안주했던 지역 건설사들 중 정신을 차린 쪽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안주는 영혼까지 갉아 먹는다. 게다가 지역 업체들은 아파트 보수공사에서도 수도권에 완전히 밀리고 있다. 얼마전 국토부가 변재일 의원(새정연)에게 제출한 ‘2011~2013년 민간아파트 보수공사 시공실적 현황 ‘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 전문건설업체 중 40%(554개)에 불과한 수도권 소재 업체가 금액 기준 74.4%의 공사를 가져갔다. 많은 공사를 따내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수도권업체들이 부익부를 누리는 구조는 아파트 건설시장과 똑같다. 자본주의 시장은 경쟁 속에서 성장한다. 또 가격 대비 고품질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소비자 입장도 중요하다. 무조건 지역업체를 우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거리가 지나치게 대기업 쪽에 쏠리는 현상, 소비자 피해를 강요하는 최고가 경쟁입찰제도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것들은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