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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연말연시 영화계는 단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 ‘인터스텔라’ 등이 이끌었다. 요즘 인기 있었다고 거론되는 영화라면 수백만 관객이 몰리기 마련이니, 시시콜콜하게 이들 영화의 관람객 수를 적시할 필요는 없겠다.

 

이들 작품이 관객의 발길을 잡아 끈 것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고, 영화 속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 부모 세대의 초상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굴곡의 현대사 담은 영화 보며 울컥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95세인 할아버지가 98세에 운명할 때까지 약 3년간 노부부의 생활을 그렸다. 공간적 배경은 어느 산골마을이다. 자식들은 도회지 등에서 살며 명절이나 부모 생일 때나 찾아와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다가 썰물 빠져나간다. 자식들은 노부모 생일에 서로 ‘제대로 못모신다’며 싸운다. 대한민국 상당수 가정의 씁쓸한 풍경이 적나라하다. 노부부는 항상 고운 커플 한복을 입고,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치고,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여생을 즐겁게 살아간다. 어느날 갑자기 98세 할아버지는 89세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한다. 할머니는 예고된 작별 앞에서 목놓아 운다.

 

국제시장은 중공군에 밀려 철수하는 미군 함정에 승선하려고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 인파의 처절한 사투, 가슴 찢어지는 절규부터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파병 등 광복 후 우리 부모 세대들이 겪은 상처를 고스란히 그려냈다.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잃고 소년가장 구실을 톡톡히 해낸 덕수 이야기를 통해 굴곡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펼쳐냈다. 영화 속의 덕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등장하는 조병만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조 할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강계열 할머니댁에 결혼을 약속받고 들어가 머슴처럼 일했다. 건강하고 성실했던 조 할아버지는 강 할머니의 사랑으로 결혼했고, 격동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왔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장년층·노년층에게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고, 젊은층에게는 부모 세대의 유난히 굵은 주름에 얽힌 사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관람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 이유일 것이다.

 

똑같은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이지만, 자라온 환경에 따라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인간적 동정이나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물밀 듯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일제시대와 광복시대, 근대화 시대를 숨가쁘게 살아온 50대 이상 세대에게 현대사는 비극이면서 행복이었다. 일제의 잔혹한 손아귀를 벗어난 기쁨도 잠깐이었다.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지고, 좌우세력이 극한 대치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어른들은 영양실조가 걸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개구리며 쥐까지 잡아 먹였다. 쌀은커녕 보리조차 부족하니 무밥, 시래기밥을 해야 가족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루 한끼를 먹고 물로 배채운 사람도 수두룩했다. 끼니를 고구마나 감자 한두개로 때우는 것도 감지덕지 했다. 남의 집 헛간 같은 곳에 세들어 살면서 두손가락이 갈퀴처럼 되도록 일했다. 서울 가면 잘 살 수 있다며 농촌의 10대들이 도시로 몰려갔지만 착취를 당하거나 인신매매 당하는 이들도 수없이 많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지금 그들 가슴에 처절하게 남아 맴돈다. 눈물이 저절로 난다.

 

국가 발전했지만 장·노년층 씁쓸

 

2015년 1월,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권 반열에 올라 있다. 무역규모가 1조 달러가 넘어섰다. 분명 대한민국은 성장했고, 발전했다. 하지만 많은 장노년층은 씁쓸하다. 그 찢어지는 가난과 고난을 이겨내며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어쩐지 서럽다. 영화 속 노부부처럼 자식과 살지 않는다. 자식들은 눈치꾼이 됐다. 요양병원만 번창한다. 진정 행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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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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