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업 등 모든 조직 원칙이 무너지면 결국 끝…전관예우 악습 철폐해야
원입골수(怨入骨髓)라는 말이 있다. 원한이 뼛속에 사무쳐 있을 정도이니 그 억울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피는 피를 부르고, 사람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하지 않는가.
검찰을 필두로 하는 권력기관 일부 인사들의 범죄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려내도 또 곪으니 부정한 자본가 등과 결탁해 못된 짓을 일삼는 경찰, 검사 등이 드라마 속 단골 메뉴가 됐다. 기소독점주의 체제에서 공소권을 틀어 쥔 검찰 등 갑에 속하는 직업군이 TV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건 아쉽고 씁쓸한 일이다. 물론 거악 척결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검사가 대부분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드라마 속 일탈 검사들의 행태가 현실 사건의 검사 범죄와 왜 그리 똑같은지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형을 선고받은 그랜저 검사, 기소됐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무죄판결 받은 벤츠여검사, 게임업체 넥슨과의 부정한 커넥션 의혹이 불거져 결국 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최유정 전 부장판사 등 잇따르는 비위는 국민을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인기드라마를 보듯 하게 만든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관청피해자모임’이란 카페가 있다. 타이틀 옆 괄호 속에 ‘썩은 판사, 재벌, 장군 색출’이라고 적시한 이 모임은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또 약자와 피해자 편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할 대한민국의 관청 및 관청 출신 권력가들에 의해 짓밟힌, 천고의 한이 될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들에게는 하나같이 원입골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회원들이 지난 4월 전주고법에서 열린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재심 관련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전주를 찾기도 했다. 재심 결정이 내려진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공소시효가 지났다. 결국 이 재심사건의 판결은 진실을 규명, 가짜 3인조 강도의 원입골수를 풀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당시 사건의 부정처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장 등의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하는 의미도 있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홍만표, 최유정 등 거물급이 등장하며 해묵은 ‘전관예우’ 비리가 새롭게 부상했던 지난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관예우 피해 사례 발표와 전문가 좌담회’에 회원들이 나서 사례발표를 한 적이 있다. 정모씨는 동업자와 150억 원대 투자를 하여 50억 원대 이익을 냈지만, 동업자가 이익금을 차지하기 위해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앞세워 장난치는 바람에 오히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10년 넘게 투쟁 중인 그는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법원, 변호사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씨는 특히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는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악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관예우에 대해 ‘현대판 호환이요, 마마’라고 말한다.
11년 전 대한송유관공사에 다니던 딸이 이 회사 인사과장의 차 안에서 무참히 살해된 아픔을 안고 있는 유모씨는 피고인이 전관예우를 기대하고 사건 발생장소가 아닌 원주경찰서에 자수하고, 이어 원주지방법원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 변호사는 거짓 변론으로 일관했다며 전관예우 폐단을 지적했다.
억울한 사연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황모씨는 정보기관 간부 신분으로 이스라엘에서 근무하던 중 2007년 해임됐다. 그가 해임된 사유가 기가막히다. 이스라엘 현지에 부임한 황씨는 공관 전세금과 보수비용 등 2000만 원 정도를 전임자가 횡령한 사실을 파악, 본사에 알렸다. 그러나 본사는 오히려 황씨를 해임했다. 황씨는 법원으로부터 징계 무효 판결을 받아냈는데,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회사는 그를 의원면직 처리했다.
어디 원입골수인 사람들이 이 뿐이겠는가. 국가, 기업 등 모든 조직에서 원칙이 무너지면 결국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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