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층 일자리 이어주고 청년층 일자리 열어주는 새로운 노사관계 정착을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피크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 9월15일 이를 ‘노사정 대타협’의 큰 틀 속에 담아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임금피크제가 근래 고령화와 청년실업이 동시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국가적인 추진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임금피크제란 장기근속 근로자의 임금을 조정(삭감)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 또는 연장하는 제도이다. 일찍부터 실업과 고용유지의 문제가 심각했던 유럽에서는 실업자를 줄이고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가 중요한 해법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워크 셰어링의 일종인 임금피크제가 2000년대 초부터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청년실업 해소 보다는 장기근속자의 정년보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다가 법 개정에 따른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장년층과 청년층 세대 간 일자리 경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금피크제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지난 노사정 협의 시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대학 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청년들의 심각한 취업난을 체감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팔 수도 있다”는 취업 준비생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인 듯 임금피크제로 인한 장년층의 희생이 청년층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정부 연구기관들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고 있고 정부도 공기업 임금피크제 실시를 가속화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라는 처방전이 정말 청년 실업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공기관과는 달리 민간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인건비를 청년 고용에 쓰도록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아직은 없다. 또한 노동계도 ‘재벌개혁’을 선행해야한다는 강한 입장이어서 임금피크제를 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세제지원 등 강력한 유인책을 강구할 경우 대기업들의 동참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공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앞당기기 위해 ‘상생고용지원금’을 예산에 반영하면서 공기업 직원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기진작책의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예컨대 이윤 나누기(profit sharing), 유연근로시간제, 정년퇴직후 재고용(senior consultant), 급여 외 인사상 차별 금지 등이 그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사기진작책을 민간기업들에게도 권장하는 한편 ‘상생고용지원금’에 상응하는 세제혜택을 제공하여 임금피크제의 실시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간 불안한 노사관계로 많은 대가를 치렀고 이것이 ‘중진국의 함정’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모처럼 마련된 노사정 합의의 큰 틀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부도 임금피크제 등 합의사항 이행에 있어서 근로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겠지만 노동계도 이제는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을 자제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희생을 안고 도입하기로 한 임금피크제인 만큼 정부와 재계는 “장년층의 일자리는 이어주고 청년층의 일자리는 열어주는” 명분이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한국형 임금피크제’라는 새로운 길이 우리나라 장년과 청년들을 아우르는 옳은 선택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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