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국민들이 즐거움 나누는 게 참된 정치의 모습
일반적으로 국가예산은 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로 비교한다. 2015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출비율은 32.38%로, OECD국가 중 뒤에서 세 번째이다. 2016년 같은 지표에서 핀란드, 프랑스 등 상위권 국가의 수치는 60%에 육박한다. OECD국가 간 재정규모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작은 정부인 셈이다.
지난달 29일, 문재인 정부는 2018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큰 정부’로의 출발을 알렸다. 이번 예산안은 429조원 규모로 올해보다 7.1% 늘었다. 일자리예산을 포함한 보건·복지·노동예산에 전년대비 12.9% 증액된 146.2조원이 배분됐고, 교육예산과 국방예산도 각각 11.7%, 6.9% 증가했다. 반면 SOC(사회간접자본)예산은 전년대비 20% 감소했다.
발표 이후 야권은 전체의 34%를 차지하는 복지예산을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2016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OECD국가 중 최하위인 10.4%로, OECD 평균(21.0%)의 절반에 불과하고 1위인 프랑스(31.5%)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복지예산의 확대는 OECD국가 수준을 맞춰가는 과정이며, 오히려 앞으로 더 많은 증액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SOC예산 축소에 대해서도 ‘성장예산 감소’라고 지적하는데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2007년 18.4조원이던 SOC예산은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추진에 따라 2008년 20.5조원, 2009년 25.4조원으로 크게 증가했고 올해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즉 이번 SOC예산의 축소는 4대강 사업 등에 무리하게 투입된 ‘삽질 예산’이 비로소 정상화됐다고 봐야 한다.
예산안을 둘러싼 비판에는 ‘복지예산은 소비예산’이라는 낡은 관점과 ‘기업투자예산은 성장예산’이라는 맹신이 깔려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사회복지를 외면하고 기업의 성장을 추종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시장에 맡겨진 복지는 소외계층을 확대시켰고 다수의 국민이 흘린 땀과 노력은 상위 1%의 곳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피폐해진 가계와 갈 곳 잃은 청년은 낙수효과 운운한 기업주도성장의 허상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번 예산안은 국가 패러다임을 ‘소득주도성장’, 나아가 ‘사람중심사회’로 바꾸는 시작이다. 성장의 동력이자 본질인 사람에게 투자하겠다는 의미이며 굳이 성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이다. 궁극적으로는 1%를 위한 99%의 희생이 용인되었던 시대를 종식하고 99%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오랜 기간 소외됐던 전북의 경우, 새만금에 7000여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며 그동안 전북도민이 가졌던 섭섭함에 대한 정부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2500년 전 맹자는 통치자의 자세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꼽으며, 왕과 백성이 더불어서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정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비록 왕과 백성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맹자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보다 많은 국민이 즐거움을 나누는 사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행복한 일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민하는 권력. 이것이 맹자가 가르치는 현 시대의 ‘여민동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급 외제차 옆으로 폐지를 수북이 실은 수레를 끌고 등 굽은 노인이 지나간다. 육아방송이 대세라지만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누군가의 아빠, 엄마는 꺼질 줄 모르는 불빛 아래 밤이 깊도록 일을 한다. 국민의 세금과 국가의 권력은 마땅히 이들을 향해야 한다. 이제, 더불어 잘 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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