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이 노동자들 소유일 때 국가의 인사·운영 개입 차단 / 여론공유·권력감시 역할 수행
처음 들었다. 노영방송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 출처는 얼마 전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정기국회를 보이콧했던 자유한국당이다. 기사에 의하면 자유한국당이 정기국회를 보이콧한 이유는 정부가 공영방송을 노영방송으로 만들어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를 지켜보다가는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노영방송은 노영(勞營), 그러니까 노동자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방송국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리 곱씹어 봐도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이 무지한 논리체계에 웃음이 나왔다. 평소 자유한국당이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는데 유능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이렇게 웃음을 주는데도 유능할지는 몰랐다.
보통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들은 노동자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으로 불린다. 표현을 통일해서 노동자소유기업이라고 하자. 이런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대략 1830년대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노동자소유기업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들로 꼽힌다.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은 성공적인 운영 사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지이다.
노동자소유기업들이 참여하는 CICOPA(Con-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Cooperatives de Production et Artisanales)라는 국제조직도 있는데, 여기에는 2015년 현재 세계 38개국에서 43개의 회원 조직이 가입되어 있으며, 각 회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는 조직은 6만5000여개에 이른다. 이 CICOPA는 한국의 농협이나 수협, 신협 등 우리에게 친숙한 조직들이 가입한 국제협동조합연맹의 부문 조직이다.
크게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노동자소유기업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단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해서 직원협동조합이라는 명칭으로 제도화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종업원지주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 1968년이다. 심지어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노동자소유기업인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던 박계동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소유기업은 이미 존재하는 실체이자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한 형태이다. 노동자소유기업이 이렇게 세계 곳곳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소유기업이 지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해외의 연구들은 노동자소유기업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일반 기업보다 더 나은 수준의 노동 환경과 더 지속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도 노동자소유기업의 강점으로 꼽힌다. 기업의 대표를 선출하는 권한이 노동자들에게 있으며,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기업이니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책임감도 더 크다.
자, 이제 방송국이 노동자소유기업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니 국가가 인사에 개입할 통로가 차단된다. 또한 소유주로서 노동자들이 경영을 통제하니 방송국의 운영에 대해 정권의 입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경영이 투명하게 이뤄지니 부정과 부패의 가능성도 희박하다. 무엇보다 정권의 눈치를 볼 여지가 없으니 여론의 공유자이자 권력의 감시자라는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방송국이 되는 것이다.
어떤가? 방송국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지 않게 하려면 노영방송이 답이 아닌가? 자유한국당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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