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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① 프롤로그 - 조선왕조 발상지, 왕도 역사 품은 호남 유일의 공간

고조선 정통 이은 마한의 땅…백제 중흥·부흥·재창조 터전 / 역사상 최초 관민협치 실행…대동·변혁의 정신, 지향점 제시 / 철기 생산 진안·장수·남원 일대…한국고대사 문화중심으로 부각

▲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 유적.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2018년은 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이 생긴지 1000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이다. 천년 전인 1018년, 고려 현종은 기존의 전주일대의 ‘강남도’와 나주일대의 ‘해양도’ 지역을 합쳐 전주(全州)와 나주(羅州)를 잇는 길 즉, 도(道)로 연결된 지역을 포괄해 광역 행정구역인 전라도(全羅道)를 설치했다. 이 명칭이 조선으로 계승되고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현존하는 8도 명칭 중 가장 오래된 ‘천년 전라도’가 된 것이다. 전라도 명칭이 생긴 이후 3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경상도(1314년), 충청도(1356년), 강원도(1395년), 평안도(1413년), 경기도(1414년), 황해도(1417년), 함경도(1509년) 등이 생겨나 전라도 명칭이 타 지역에 비해 300~400년이나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전라도 천년’을 맞이하는 2018년, 전라도 정명 천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전라도 가운데 특히, 전라북도 지역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는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 전개과정에서 전라도지역은 크게 조선을 먹여살린 호남평야지역(전주·익산·완주·김제·정읍)과 한중교류와 연안 항로의 거점 서해안권(군산·부안·고창), 그리고 새로운 가야 세력의 거점(남원·진안·장수)과 문화 교차로 역할을 한 지역(무주·임실·순창)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같은 전라도 천년의 역사를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로 개관하여 새로운 천년을 조망하고자 한다.

▲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축하식

△대한국호 발상지 전라북도

대한(大韓)이란 나라이름은 1897년 10월 고종이 기존의 나라이름 조선을 폐기하고 새롭게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선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명칭은 고종이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확립하기 위해 중국과의 예속관계를 단절함과 동시에 나라를 황제국가 체제로 일신하는 국가체제 변화를 모색하며 선택한 명칭이었다. 이때 고조선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독립적인 명칭을 찾은 것이 마한, 진한, 변한을 총괄한 대한(大韓)이란 표현이었다. 그런데 삼한의 출발인 마한이란 명칭은 바로 고조선의 마지막왕 준왕이 전라북도 익산지역에 피난하여 시작된 명칭이었다. 결국 전라북도는 고조선의 정통을 이은 마한의 땅으로 ‘대한(大韓)’ 국호의 발상지로서 우리 역사의 근간 지역임을 보여준다.

 

△백제중흥, 부흥, 부활의 땅 전라북도

 

백제는 동아시아 해양교류를 통해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고 전파한 해양국가였다. 이 같은 백제문화의 거점인 익산지역은 백제 무왕이 수도를 옮겨 백제의 마지막 왕도가 조성된 백제 중흥의 터전이었다. 또한 660년 백제가 붕괴된 직후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부흥군의 핵심 거점인 주류성이 현재 부안 우금산성으로 확인되고 있다. 즉, 부안지역은 백제역사 부흥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900년 후백제가 전주에 도읍하여 결국 백제는 다시 부활하였다. 이같이 전라북도는 백제의 중흥의 터전이자 부흥의 거점이며 결국 백제를 부활시켜 백제를 살려낸 백제 재창조의 땅이었다.

 

△왕도(王都)의 땅 전라북도

 

900년 견훤은 세력을 키웠던 무진주(현재 광주)에서 수도로서 전주를 선택하여 후백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37년이란 기간이었지만 전주는 국가의 수도로서 그에 걸맞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중심지였다.

 

또한, 전주는 전주이씨의 관향(본관도시)으로서 조선왕조의 원형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고려말 우왕때 남원 운봉의 황산(荒山)에서 대승리를 거두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새로운 왕조탄생의 원동력을 갖게 되었던 전북지역은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이 마련되고 조선왕조실록을 모신 사고가 설치되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조선 역사수호의 도시로서 위상을 드높였다. 이같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후백제 왕도,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전라북도는 왕도의 역사를 품은 호남의 유일한 공간이다.

 

△모두가 하나되어 평등한 대동(大同)과 개벽(開闢)의 땅 전라북도

 

전라북도 지역은 모두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 정신이 가장 넓게 유포된 지역이다. 이 같은 특성은 1894년 조선왕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구호아래 동학농민혁명으로 꽃 피워졌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적 통치인 관민협치를 실행한 곳이었다. 또한 외세의 침입에 맞서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난 절의의 땅이었다. 이러한 대동과 변혁의 정신은 종교적으로 계승되어 증산 강일순의 후천개벽과 소태산 박중빈의 정신적 문명개벽으로 발전되어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점을 제시하였다.

▲ 1900년대 초 전주부성 모습. 성벽과 사대문의 모습이 남아있고 제방이 쌓이기 전 전주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전라북도는 앞서 개관한 것처럼 고조선의 준왕이 새로운 나라를 이룩한 곳으로 역사적 위상을 자리하고 있다. 또한 백제의 무왕은 당시 수도였던 사비(지금의 부여)를 떠나 백제를 새롭게 일으켜 세워 새로운 수도를 만든 백제 중흥의 땅이었다. 그리고 660년 백제가 붕괴한 후 663년 백제부흥군이 현재의 부안 우금산성지역인 주류성에서 왜의 지원군과 함께 백제 부흥을 꿈꾸었던 지역이다. 더욱이 668년 고구려가 붕괴한 후에는 고구려 부흥군이 익산지역에 옮겨와 보덕국을 세워 신라와 함께 당과 맞서며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였던 대안과 재창조를 모색한 땅이었다.

 

한편, 통일신라시대 여전히 백제인으로 인식된 승려 진표는 불교의 미래 구세주인 미륵의 이념을 퍼트려 백제유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후백제 견훤은 전주를 중심으로 해양대국 백제의 역사를 새롭게 부활시켰던 곳이다. 또한 고려말 이성계는 새 왕조 창출의 의지를 전주에서 피력해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의 역사성을 극명하게 부여해 주었으며 전봉준을 필두로 한 전북의 사람들은 반역으로 낙인찍혔던 정여립의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대동세계를 이루고자 새 역사를 만들었다.

 

또한 진안·장수 및 남원 일대 지역은 철기의 생산을 통해 고대국가 성장의 동력을 구성한 공간으로 가야의 중심이자 백제중흥의 기축으로 역할해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문화중심으로서 부각된 곳이었다.

 

따라서 전라북도 지역은 고조선이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과제를 극복하고 대안을 찾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현장이었다. 이 같은 전라북도의 역사적 전통과 경험은 결국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지역갈등, 남북 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와 인류 공영을 위한 역사적 혜안의 터전이다. 이러한 전라북도의 역량을 찾아 새로운 미래 천년 역사를 만드는 창조력을 발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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