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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이 던진 두 가지 울림

검찰 경찰 국정원 권력 기관 개혁안 공은 국회 넘어와

▲ 김종회 국회의원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서울시청~서울역~남영~용산~노량진으로 이어진다.

 

종로에서 용건을 마치고 지하철 타고 국회로 돌아오는 길에 눈에 들어온 남영역 이정표.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며칠 전 영화 ‘1987’을 관람한 터라 남영역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남영역 부근에는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하고 족치는 악명 높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있었다.

 

‘1987’이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니만큼 묵직한 울림을 던져준다. 치안본부장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고, 경찰의 수장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한수 가르치려 드는 교만한 남자. 명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장본인은 박처원 치안감이다.

 

걸죽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실제 북한 출신이다. 열입곱 나이, 맨손으로 월남한 그가 자원한 곳은 경찰. 눈앞에서 가족을 몰살당한 소년의 증오는 공산당으로, 월남 후엔 빨갱이로 옮겨 붙어 그를 대공수사에 미친 듯 매달리게 한다.

 

1947년 경찰에 투신한 박처원이 막내였을 때 그가 상관으로 모신 인물은 일제시대 때부터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며 승승장구했던 악질 고등계 형사의 대명사 ‘노덕술’. 노덕술은 전지현 주연의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모티브다.

 

박처원은 과거 수백명의 독립투사 입에서 동료의 은신처를 불게하고 결국에는 변절까지 이끌어낸 노덕술의 고문기술을 그대로 흡수해 승승장구한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수제자가 바로 김근태 전 국회의원을 고문한 ‘이근안 전 경감’ 등이다.

 

고문계보는 노덕술에서 박처원, 이근안으로 이어졌다. 현대사의 질곡을 파헤친 영화는 암살, 밀정, 1987로 이어지고 있다. 박종철, 꽃다운 청춘의 비통한 죽음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고문 기술자들의 계보는 더러운 생명줄을 더 이어갔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 즉 권력의 이동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초입부에서는 박종철을 고문 살해한 경찰들이 흔적을 말끔히 없애기 위해 서울지검 공안부장에게 시신 화장 허가를 요청한다. 요청이 아니라 거의 강압이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할 경찰이 검찰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적어도 당시 대공수사분야에서 경찰은 검찰의 통제권 밖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총칼로 집권한 군부독재 정권은 정통성의 부재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1980년대, 저항세력의 수적 규모는 만만치 않았다. 법치만으로 통치할 수 없다 보니 반인륜적 고문과 폭압을 동원했다. 소수의 검찰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 보니 10~15만명에 달하는 경찰에 의존했고, 이마저도 힘에 부치면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다 보니 야만의 시대 최고의 힘은 총칼 가진 군부에 있었다.

 

민주화된 지금, 최고의 힘은 검찰에 있다. 바꿔 말하면 민주화의 최고 수혜자 중의 하나는 검찰이다.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우병우 같은 오만한 검사를 낳았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권력의 입맛에 맞게,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남용했다.

 

달이 차면 기운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약칭 공수처) 설립안을 발표했다. 검찰과 국정원의 힘을 빼겠다는 취지다. 이 안이 현실화되려면 국회에서 형사소송법과 경찰법 등 6개 이상의 법안을 개정해야한다.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그렇지만 국회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은 국민여론이다. 검찰, 국정원, 경찰이라는 3개 권력기관 중 국민들은 어떤 기관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어떤 구체적 방안이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독주를 저지할 것인지, 여론의 힘을 얻기 위해 각 기관이 어떤 공방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종회 의원은 제 20대 국회 예결특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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