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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여성·전북

성 평등한 민주주의 위해 누군가의 고통·희생 아닌 공감과 실천 의지가 중요

▲ 노현정 (사)전북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

영화관은 빈자리 없이 꽉 찼다. 박종철의 죽음이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된 뒷자리 여성의 울음소리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낯익은 노래구절이 대학시절의 추억을 소환했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마다 내 자신과 선배들에게 질문했던 답답한 기억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노래 가사처럼 연희의 질문처럼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기나 하는지, 그날이 정말 오는지 하고 말이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이 노래를 잘 알건 알지 못한 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같고도 다른 질문과 대답을 삼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그 시대를 관통했던 이들과 먹고 살기 바빴던 모두에게 국가권력에 의한 안타까운 죽음의 실상과 더디더라도 여럿이 함께 할 때만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의 고비 마다 먼저 나서서 투쟁해 온 여성들을 들러리로 취급하거나 삭제해온 현실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에서 조차 여성의 존재를 지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 박종철의 죽음이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을 때 살 떨리는 남영동 대공 분실 앞 가두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여성들이었고, 교도소에 있던 이부영의 쪽지가 명동성당에 전달되는 데 목숨을 건 여성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화 속 연희는 다른 남자 주인공들처럼 그 당시 여성을 고증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름과 질문을 가진 주도적인 여성으로 극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1987년 6월 서울의 한 복판에서 우리가 사는 이 지역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전북은 10만 여명이 모여 ‘민주헌법쟁취, 독재타도’를 외쳤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참여한 많은 여성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여성들의 모습은 삭제되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대열의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버스 위로 올라가 자신의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 많던 ‘연희들’은 이후 무엇을 하였을까?

 

전주 시내 한 복판 대열에 함께 했던 여성들 중 일부는 12월 16일 대통령 선거를 위해 공동대책위를 꾸리고 공정선거 투쟁과 후보 단일화 운동을 준비하였다.

 

비록 야당분열과 노태우 당선으로 여성유권자 공동대책위 투쟁은 실패했지만 여성들은 거기서 낙담하지 않았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진보적 여성운동의 방향을 갖고 1988년 2월 28일 전북민주여성연합을 창립하여 올해로 30년을 맞이한다.

 

87년 이후 여성운동은 국가와 사회 전반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워왔고 여성차별과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몸부림 쳐왔다.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법·제도가 만들어져 그때 보다는 나아진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 성 평등은 요원하기만 하다. 영화가 보여 주듯 언젠가 그 날이 온다는 건 그냥 그저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 평등한 민주주의를 위해 이젠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아닌 공감과 실천으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는 질문에 끊임없이 희망의 대답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올해 30년, 그 때의 그 여성들의 희생과 용기로 만들어진 여성연합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노현정 실장은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 (사)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을 역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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