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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으로 이어가는 일상

행복을 느끼는 원천은 물질보다 공동 행복을 추구해갈 때 이뤄질 것

▲ 김형중 시인·前원광보건대 교수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우리들 인생도 일상들이 쌓여 일생이라는 세월을 엮어간다. 길지 않은 삶에서 ‘시간은 황금이다’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서는 황금일 수도 또는 괴로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분주하게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그리도 바쁜 삶이어야만 했을까? 바쁘게 흘러가는 시계바늘에 휘감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미래를 채색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에게서 개념이 없으면 사고가 있을 수 없고, 유추(類推)가 없으면 개념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삶은 끊임없는 일상의 연속이며, 끊어지지 않고 가로세로 연결된 하나의 점과 선으로 그 맥이 이어져가고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線), 우리들의 삶은 이렇게 미세한 점(點)과 같은 일상(日常)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일생을 만들어간다.

현대인들에게는 정신적인 많은 것들의 아픔 중에서 성장과정의 혼돈으로 현대병이라 할 수 있는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젊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할까? 어떤 것이 더 좋을까? 오늘 점심에는 뭘 먹어야 하나? 수많은 것들 가운데서 선택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행위는 자기에게는 시간의 낭비요,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불명예가 따를 수 있고, 옆 사람에게는 일단 피해가 될 수도 있다.

오랜 친구 사이라도 세 사람이 모이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내 의견이 옳았다 하더라도 상대를 무리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관계정립에서 현명하지 못하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저마다 고유한 희망과 신념의 존재의지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본다.

민족상잔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오던 우리민족은 인내와 근면의 힘으로 반세기만에 세계 어느 나라도 이뤄내지 못한 기적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낸 저변에는 여러 요인들이 기저를 이뤘겠지만 꾸준하게 이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충효의 정신’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기초한 인성(人性)의 선이 작용했으리라 추정한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나는 데 성급했던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인성교육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려,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돈과 명예와 물질의 탐닉에 젖어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로 전락해버렸다. 충효의 정신과 신의와 청렴의 정신이 무너진 결과는 물질의 풍요를 느끼는 사회는 될지언정 인간 고유의 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충효를 거론하면 19세기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 DNA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 증거가 속담 같은 잠언들이 민족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민족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 편안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정립되어가는 현실이다.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의 힘을 아름다운 인성으로 지배하는 덕목을 갖췄을 때 이뤄진다. 행복을 느끼는 원천은 물질보다는 내면에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행복을 추구해갈 때 이루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선들의 연결이 물리적인 것들에 의해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져갈 때 배려의 미덕을 존중하면서 살아왔던 아름다운 민족의 혼이 되살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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