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두 번쯤은 가슴이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대상을 쉽게 찾지 못해 씁쓸한 경험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런저런 사연들을 세월에 실어 보내면서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게 우리들 인생이리라. 자신이 삶의 무대 위에 올라설 때, 어느 길을 선택해서 어떤 길로 어떻게 가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항로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마다와의 관계정립은 어쩌면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필연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에 꼭 기억을 해야 하는 것들은 중요할 때 생각이 막혀 왜 이러지 하고 답답해 하지만 때로는 그 망각이 우리들 인생을 정감 있고 부드럽게 해준다.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모두 저장해서 기억한다면 우리들의 뇌는 늙기도 전에 파괴(?)될 것이다.
동물들은 눈동자의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물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두운 사실을 통해서 밝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정한 친구라도 절대적 좋은 감정을 평생토록 지속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좋은 친구나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은 감정의 교류가 뜨겁게 소통되어 쌓여왔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낭만의 환상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다. 개인이나 집단끼리의 원활한 소통은 서로가 신뢰를 쌓아가면서 친구가 되거나 가까운 지인이 되는 단계의 첫걸음이다.
현대인들은 어쩌면 방향감각이 둔해져버린 장애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운전자들은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개발 이후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거의 신경을 할애하지 않는다. 삶에 쫒기다보니 복잡한 것들을 피해가면서 안일만을 추구하는 생활이 습관화되어 감각기관의 쾌락만을 좇아 풍요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첨단기술의 발전은 시나브로 감정이 메말라가는 인간성의 결핍과 기억력 퇴보를 불러오면서 삶을 뒤돌아보는 사색의 시간마저 앗아가고 있다. 그 결과는 극심한 이기주의를 만연시키고 있다.
생각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인들은 인간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과학과 물질의 풍요를 동반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하였으며, 동양인들은 ‘나’라는 존재를 소통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더불어 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질과 양’이 사람들의 무게를 가늠하지만 그 무게를 측정하는 기준 또한 각자에 따라 다르다. 생각을 깊게 사람은 상황을 확실하게 판단하여 가장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비판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과는 왜 부드러운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서로 다르거나, 생각하는 방향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와 소통을 잘하는 기본방향은 정감 있는 대화로 아집을 버리고,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자세가 곧 소통으로 가는 길이다. 즉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순발력과 눈높이를 맞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인성을 지녀야 한다. 더불어 상대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자세(경청득심-敬聽得心)가 곧 소통의 첫 관문이다.
세상은 너와 내가 어우러져 살아야하기에 인간이라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소통’ 그것은 서로를 위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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