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로는 매년 2월과 3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이다. 법정 회계감사와 정기 법인세 신고가 3월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12월말 법인의 결산을 확정하고 기업의 성적표을 내놓는 시기, 이른바 비지시즌인 것이다. 결산이 확정되면 한 해의 성적표인 기업의 실적이 나오고 이에 따라 세금도 납부하고 주주총회를 통하여 배당금도 결정한다.
이 번 법인세 신고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대부분의 기업들의 실적이 예년에 비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물지만 업황이 좋았던 기업들도 전년도만 못했다. 급성장 추세에 있는 기업의 이익도 정체 내지는 추락했고 장기간 일정한 수준의 이익을 냈던 기업들도 그 추세가 꺽였다. 이제 막 사업 궤도에 올라선 신생 기업들은 여지없이 손실을 보면서 주저앉았다. 현상유지라면 선방한 것이었다. 지방의 열악한 중소기업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대동소이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불행하다”라고 한 말처럼,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진 원인을 분석해 보니 대동소이하게도 인건비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기업의 실적을 나타내는 손익계산서 상의 판매관리비의 내용을 보면 인건비가 전년도 대비 큰 폭으로 뛰었다. 주요 자재매입비, 외주가공비도 큰 폭으로 뛰었는데 이 역시 외주처의 인건비 인상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자재비도 오를 수밖에 없다. 외관상으론 인건비의 인상이 주된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기부진과 업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가 인상되었으니 기업의 실적이 좋을 리 없는 것이다.
최근 3년간 정부는 세수잉여를 냈다. 세수잉여라는 것은 기대한 세수보다 실제 거둔 세금이 많았다는 뜻이다. 작년에는 반도체 호황과 양도소득세 및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으로 25조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였다. 경기가 불황인 상황에서도 정부 곳간만 풍년이었다. 일반적으로 경기불황일 때에는 세수잉여가 없더라도 적자 국채발행 등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친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수잉여마저도 활용하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경기불황에 대처하는 것 같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기 둔화 시 정부 지출을 확대하거나 조세 삭감 등을 통해 경기회복을 추구하는 재정정책이다. 정부 지출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건설 노동자 등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소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고, 감세는 경제주체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켜 소비자들의 지출을 증가시키고 전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규모 감세를 시행했다. 그 당시 미국의 경기상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았음에도 선제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부양을 실시했다. 그 결과 미국의 실업률은 최저 수준이며 전례 없는 기업실적을 달성하였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재정지출을 늘리고 소득에 붙는 직접세를 인하함으로써 가계의 소비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때맞춰 IMF가 3년간의 초과세수를 활용, 확정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전례없이 구체적인 추경규모 숫자까지 제시했다. IMF의 경고처럼 한국경제가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고 KDI가 경기둔화를 넘어서 경기부진으로 진단하는 상황에서 국회는 여전히 선거제도와 인사청문회로 공전만 하고 있다. 경기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확정적 재정정책의 몫은 이미 국회로 넘어간 것 같다. 더 이상의 소모적인 정쟁보다 경제살리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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