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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벨보다 워라이가 행복한 사람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모든 사람은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한 삶이란 뭘까. 필자는 자기만족에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주야장천 노는 생활을 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쉼 없이 일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요즘 직장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얘기가 자주 오간다. 국회가 2018년 2월말 통과시킨 ‘근로기준법 개정안’ 때문이다. 법정근로시간을 주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행규정이므로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사업주가 처벌받게 된다는 게 골자다. 고용노동부는 갑작스런 법 개정에 따른 근로현장의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시행시기를 차등 적용하고, 중소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며, ‘유연근로시간제’를 통해 사업장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을 제시했다. 그밖에도 불가피한 재난 및 사고 수습이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의 경우에는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통해 한시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고무적인 수순이다.

공공기관의 범주에 속하는 정부출연연구소에는 18년 7월부터 개정안이 적용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재량근로시간제’를 선호하는데,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재량껏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율을 부여한 듯 보이는 이 근로제 역시 주 52시간 이상의 연구를 허용하지 않아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평소 적당히 쉬면서 일하자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취지에는 적극 동의한다. 필자의 경우 대학원 입학을 기점으로 치면 어언 40여년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교육과 연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중 대학교수로 살던 30년 동안에 시험출제나 감독, 채점 등의 교육노동이 부담스러운 적은 있었으나 연구만큼은 달랐다. 학창시절의 공부처럼 연구를 노동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그저 내 호기심에 대한 도전이었다. 학생이 매주 52시간까지만 공부할 수 있고 그 이상 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이 어불성설일 것처럼 연구도 매한가지다. 필자도 연구가 지지부진하여 몇 달을 허송세월하다가 스트레스성 위궤양이 생겨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 실험이 미친 듯 잘 돼 무박3일 동안 연구에 몰입된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연구자에게 연구는 삶, 그 자체(work-life equal, 워라이)인 것이다.

필자가 소속한 연구소에서 근로제에 대해 수렴한 의견과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근로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연구자에게는 연구성과를 담보로 가칭 ‘자율근무제’를 허용해주는 것이다. 연구는 통상 팀으로 진행되는데, 연구팀은 연구계획서에 공약한 성과를 내면 책임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다. 어차피 연구계획도 과제책임자 주도로 준비했을 것이니, 그의 책임 아래 근무시간을 비롯한 모든 걸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맡기자는 것이다. 다년연구의 경우 단계평가를 두어 헛고생시키지 않고, 연구를 성실히 수행하는 도중에 내용 일부를 수정할 필요가 생겨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심사하여 조정해주면 될 일이다. 연구특성이나 연구자들의 개인별 습성은 본인들이 가장 잘 알 테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수행케 하는 100%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 자유가 더 나은 성과를 끌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연구자도 있을 수 있다. 그 경우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는 일도 그들의 자율에 맡기자. 정부는 연구 실패에 대비하여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주면 좋겠다.

따라쟁이에 그치면 일등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처에 창의적선도자 역할을 한 것처럼 이제 과학기술 R&D 방안에 있어서도 세계에 모범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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