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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라(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아십니까?

박은재 전라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박은재 전라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574돌 한글날을 앞두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듯 우리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새삼 이때쯤에야 곱씹게 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를 말이다. 언제부턴가 말 속에 영어단어 몇 개를 섞어야 자연스러워진다. 우리말로 바꿔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람들도 왕왕 있다. 기업들도 영어로 이름을 짓는 것이 별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몇 해 전 공영방송에서 영어로 지어진 기업들 이름을 나열하며 ‘세종대왕님은 얼마나 속상하실까요?’라고 올린 글에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댓글은 ‘세종대왕님은 K*S를 모르실 텐데요?’였다.

전 세계적으로 언어는 나라의 수를 넘어설 정도로 다양하지만, 고유의 문자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터키어, 심지어 필리핀어까지 약간의 변형과 변칙을 포함해 알파벳을 이용한 문자 생활을 한다.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우리글이 없는 상황을 우리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그런데 요즘 느끼는 한글의 위대한 점은 따로 있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쓸 수 있다는 점이다. 비티에스가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원정 4라운드에서 두 골을 기록했다. 독일 사람들은 사랑한다를 이휘리베디휘라고 한다. 그렇다. 꼭 우리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글로 세상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점은 뜻하지 않게 실질 문맹률을 늘렸다. 최근 기사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정도인데 문장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이 75%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개진, 개소, 견지, 괴리, 금어기, 적기, 상시, 통상현안 등 법률 용어들이나 행정 용어들이 주범으로 지목됐다. 훈민정음에 따르면, ‘우리가 중국 글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고 있으나 이는 중국말을 적는 데 맞는 글자이므로 우리말을 적는 데 맞지 않아 (한자를 배우기 쉽지 않은) 일반 백성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드신’ 세종대왕이 뜻하신 바와 다르게 우리는 여전히 한자를 한글로 표현하는 것으로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질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법제처가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알기 쉬운 법령’사업이다. 전문용어나,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용어 등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고쳐나가는 사업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더 심각한 요인도 있다. 늘어나는 줄임말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글자 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용어들을 줄이는 기사들이 쉽게 보이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소위 ‘힙’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줄임말을 공부해야 아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말과 글자는 소통을 위한 것인데 그 본연의 역할을 거스르는 일들을 우리는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쉬운 말을 쓰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 영어를 섞고, 한자어를 섞고, 줄임말을 섞어 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을 유식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아바라’가 ‘아이스 바닐라 라떼’의 줄임말임을 모른다고 해서 세상에 뒤처진다고 생각해서는 우리의 말과 글이 산으로 갈 지 모른다.

이번 한글날에는 쉬운 우리말로 말하고 쓰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박은재 전북지속가능발전협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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