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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촌스럽다’

농촌진흥청 대변인 성제훈

농촌진흥청 대변인 성제훈
농촌진흥청 대변인 성제훈

필자는 지난 2014년 농촌진흥청이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할 때 가족과 함께 이사해서 지금껏 혁신도시에 살고 있다. 이사 온 뒤로 무려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상생’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쓰는 낱말의 기본이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상생’을 찾아보면, ‘음양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와, 수(水)는 목(木)과, 목(木)은 화(火)와, 토(土)는 금(金)과 조화를 이룸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었다. 혁신도시로 이사 온 사람들과 기존에 전주에 살던 사람들이 서로 맞춰 잘 살아가자는 뜻으로 알고 ‘상생’이라는 낱말을 썼지만, 사전 풀이에는 그런 뜻이 전혀 없었다. 사전이 실생활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사전의 뜻풀이가 잘못됐다는 필자의 볼멘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는지 국립국어원에서는 1년이 지난 2015년에 상생의 뜻풀이를 추가했다. 기존에 있던 ‘음양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와...’를 그대로 두고, 그 밑에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라는 풀이를 넣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는 전주 출신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문장을 보기로 들었다.

맞다, 잘한 일이다. 언어는 살아 있기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낱말의 뜻풀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뜻이 더해지거나 빠질 수도 있다. 그때그때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그렇게 뜻풀이를 바꾸는 게 맞다.

47만 7122명.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지난해 촌으로 옮긴 귀촌 인구수다. 전년보다 7.4%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매년 40만 명 이상이 귀촌하는데, 이렇게 귀촌한 이 사람들은 촌에서 ‘촌스럽게’ 살 것이다.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촌스럽다’를 찾아보면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고 나온다. 작년에 촌으로 옮긴 47만 7122명은 스스로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하고자 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거나 창업하고자, 또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여유를 찾고자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촌스럽다의 풀이가 하나뿐이라면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느는 것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언어 사용 현실을 반영하여 사전에 올리는 낱말을 추가하고, 뜻풀이를 수시로 바꿔야 하듯이, ‘촌스럽다’는 낱말의 뜻풀이도 여러 가지 뜻을 더 넣어야 한다. ‘자연과 함께하고자 농촌으로 가려는 생각’이나, ‘촌을 사랑하여 자연과 함께 삶을 가꾸려는 마음가짐’과 같은 풀이를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드는 국립국어원에서는 촌스럽다는 풀이가 일반화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사전 뜻풀이에 넣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수동적이다. 시쳇말로 적극 행정에 어긋난다. 개방·소통·협업을 통해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는 행정을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원활한 소통과 국민들의 조화로운 국어생활을 위해서 현실을 반영해 앞장서서 사전 풀이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행정이 바로 적극 행정이다.

‘상생’의 뜻풀이를 추가했듯이, ‘촌스럽다’는 낱말의 뜻풀이도 추가해야한다. 그래야 그런 사전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국어생활이 가능해지고, 그런 사전이야말로 온 국민의 말글살이 기본이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필자가 전주로 이전한 지 1년 만에 ‘상생’이 제 뜻을 찾았다. 전주로 이전한 지 10년이 넘기 전에 ‘촌스럽다’는 낱말의 뜻풀이가 추가되기를 기대한다. /농촌진흥청 대변인 성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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