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가치가 큰 사건이나 장소가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웅치전적지와 천반산·죽도도 이에 해당한다.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에 걸쳐 있는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방어하며 조선 곡창을 보전함으로써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진안 천반산·죽도는 조선 중기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해 학문을 닦고 군산훈련을 벌이며 사회변혁을 꾀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현장 모두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한 채 변방의 역사로 방치돼 올바른 역사세우기 면이나 지역 역사자원의 사장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이 근래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두 역사적 현장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완주군은 웅치전적지에 대한 기초사료 집대성과 학술대회 등을 통해 전적지 범위와 실체를 실증적으로 밝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진안군도 전북도와 함께 웅치전적지 발굴조사에 나서 웅치고개 정상에 위치한 성황당 터와 봉수터, 그리고 인근 고분군 등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북도‧완주군‧진안군은 문화재청에 웅치전적지의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했다.
웅치전적지와 다른 성격이지만, 진안 천반산·죽도는 조선 선비 1000명이 화를 입은 기축옥사와 직접 연결된 정여립 대동사상의 본거지로 논의되는 곳이다. 정여립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아 고증에 한계가 있으나 정여립과 관련된 여러 일화 등이 구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여기에 화산 폭발로 형성된 지형과, 동서남북을 감싸 마치 육지 속 섬을 이루면서 지질·지형학적 가치가 높아 3년 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진안군이 이런 역사인문학적 가치와 지형·지질학적 가치를 종합해 국가 명승지 지정을 추진해왔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이 지난주 이 곳을 살펴보고 국가사적지 지정과 명승지 지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웅치전투가 임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감안할 때 국가사적지 지정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천반산·죽도의 명승지 지정은 단순히 경관 문제가 아닌 정여립 사건의 재조명과 재발견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실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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