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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독립운동 참여했지만⋯가족에 돌아가지 못한 공적

전북서 일제에 맞서싸운 독립운동 유공자 1104명 훈포장
이 중 392명 후손 및 주거지 찾지 못해 훈포장 전달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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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항일운동 훈포장 수여자 미전수 현황

전주 출신 고(故) 권봉화 씨(1895~?)는 1919년 3월 14일 전주에서 진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권 씨는 다수의 군중과 함께 완산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하다 일제경찰(일경)에 붙잡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지난 2019년 국가보훈처로부터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군산시 옥구 출신인 고(故) 고판홍 씨(1895~?)는 나라를 빼앗긴 후 1920년 11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고 상해로 망명을 계획했다. 당시 고 씨는 조기선 등과 함께 임실의 부호 한규석 등에게 군자금을 모집했지만, 일경에게 붙잡혀 6년간 옥살이를 했다. 1995년 이러한 공적이 인정돼 애국장을 받았다.

임실 출신 고(故) 김경삼 씨(미상)는 이석용 의병부대에 참여해 활동하고 1909년 2~3월 임실군 일대에서 부하 6명을 인솔하며 군자금 등을 모집했다. 이를 토대로 같은 해 임실·장수군 일대에서 부하 수백 명을 모아 일제에 맞서 의병운동을 전개했지만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했다. 2011년 이 같은 사실이 인정돼 보훈처는 애국장을 수여 했다.

그러나 권 씨와 고 씨, 김 씨의 훈포장은 그 주인을 찾지 못해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후손을 찾지 못해서다. 

103번째 3·1절이 다가왔지만, 나라를 위해 맞서 싸운 이들의 훈포장이 후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27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도내 훈포장 수여자는 총 1104명이다. 3·1운동, 의병, 학생운동, 국내외 항일운동, 임시정부 참여 등 다양하게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영웅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훈포장 392명에 대해서는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 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후손들이 누구인지, 주거지가 어디인지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다.

전달되지 못한 훈포장 종류별로는 애족장이 142명으로 가장 많았고, 애국장 132명, 대통령 표창 92명, 건국포장 21명, 독립장 5명 순이다. 운동계열별로는 의병운동이 296명, 3·1운동이 53명, 국내항일운동이 32명, 학생운동이 6명, 광복군 참여 1명, 임시정부 참여 1명, 만주 방면 2명, 미주 방면 1명 등이다.

보훈처는 후손을 찾기 위해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협조를 통해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역 추적해오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적부상 본적, 주소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거나 제적부 소실, 해외 활동자 등 사유로 후손이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제적부가 소실되거나 본적·주소 등이 현주소와 다른 경우가 많아 수훈자 후손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독립유공자로서의 예우와 명예, 선양을 위하고 후손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후손 찾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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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국가보훈처 #훈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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