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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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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택 월남전참전용사·수필가

내 나이 채 스무 살도 안 되던 해에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 파병이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을 받고난 후, 부산 항 제 3 부두를 떠날 때는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밝게 될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맘속으로 되 뇌였다. 그리고 남지나해의 검푸른 파도를 타고 장장 5박6일간의 긴 항해를 시작한 끝에 도착한 곳은 월남 땅 퀴논이라는 항구였다.

도착 시간은 그날 오전 10시 30분 정도… 역시 열대의 나라답게 날씨는 무척 뜨거웠다. 월남인의 특이한 삼각형 모자며, 두부장수처럼 어깨에 걸머진 물통 같은 짐들, 아오자이 입은 가냘픈 여인들의 자태…… 이 모든 것이 낯 설은 이국땅이었지만 임무를 마치고 꼭 살아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그 후, 십 육 개월간의 파월 생활 동안 나는 생(生)과 사(死)의 전투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실전을 경험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 한 팬텀 비행기 소리며 콩 볶듯 쏘아 대는 소총소리, 내 키보다 훨씬 큰 정글을 헤매며 숨 가쁜 베트콩과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나는 내 삶을 영위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싸웠다. 살아서 돌아가리라! 살아서 돌아가리라!  하고 이를 악물고 싸웠다.

사정없는 베트콩과의 총격전이 끝난 후, 새벽녘 별빛에 비친 전쟁의 흔적은 비참했다. 부상을 입은 전우는 붉은 피를 흘리며 정글 속에 나뒹굴고 있었고, 여기 저기 적들의 총탄으로 얼룩진 참혹한 광경은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부상을 입은 전우들의 살려달라는 피맺힌 울음소리며 부상당한 전우를 부둥켜안고 헬리콥터만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때, 나는 전우애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참혹한 광경은 나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치열한 싸움터에서 임무를 마치고 내 나라 고국을 향하는 거대한 배에 올랐을 때에는 같이 파병에 임했던 수 많은 전우들 중에는 전사한 자도 있었고 부상을 입은 전우도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간다는 아주 벅찬 희망감에 파랗게 철썩이는 파도의 갑판에 서서 하늘을 향해 내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 검푸른 파도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월남 땅을 뒤로하며 임무를 끝낸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살아나왔음을 파랗게 철석이는 파도는 그렇게도 나를 축복하고 있었다.

월남참전을 그렇게 말리시었던 어머님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위에서 

환한 얼굴로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아들아! 손짓하시는 것 같았다. 

애타게 불렀던 내 조국 대한민국 태극기가 파도위에서 너울거렸다.

파도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디 치거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딪쳐 보아라.

나는 굴하지 않고 굿굿이 살아남았음을 내 조국에 가서 고하리라.

아!

살아서 돌아가는 내 조국이여, 내 조국이여……

파도야 어서 함께 내 조국으로 돌아가자 꾸나. 

/황만택 월남전참전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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