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용안면 10개 마을 145세대 314명 주민 대피
“모든 것 잠겨,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막막”
폭우에 가축 구조 못 해 울음소리만 울려 퍼지기도
 
   “이 마을에 7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비가 온 적은 없었다니까요. 비가 멈춰도 이미 논이고 밭이고 흙탕물 바다가 돼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17일 오전 10시 50분께 익산시 용안면 창리 일원.
주민 전종우 씨(68)는 폭우에 잠겨 형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자신의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익산 용안 일대는 장마기간 중 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신은, 석동, 부억, 을산 등 10개 마을에서 145세대 314명의 주민이 인근 용안초등학교와 용안중학교 강당으로 대피했다.
전씨는 “그동안 이 동네에 비가 왔어도 이번처럼 많이 내린 적은 칠십 평생 처음이다”며 “수박, 상추, 방울토마토 등을 비닐하우스에서 키웠는데 비에 잠겨 회복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씨가 거주하는 익산 용안면 창리와 구산리 일대는 예년 같으면 벼들이 녹색으로 물들고 수박 등을 출하하기 위해 분주한 시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기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물에 잠겨 흔적도 보이지 않는 논과 밭, 그리고 3분의 2 이상이 잠긴 비닐하우스들뿐이었다.
함께 있던 김형운 씨(64)도 “농산물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닐하우스에 있던 트랙터 등 농작업 시설들이 다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물이 하루빨리 빠져야 땅도 정비하는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며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든 것이 너무 막막하다”고 허탈해 했다.
김씨가 말하는 사이에도 물에 잠겨버린 한 축사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고립된 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축사에서는 소가 생존을 위해 헤엄치는 듯한 물소리와 묶여있는 고삐를 풀기위해 기둥 등을 발길질 하는 철판 소리가 적막한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들은 한 주민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 주민들의 대피 장소인 익산 용안초등학교 어울림 강당. 이곳에 대피해 있는 주민들 역시 폭우에 대한 답답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주민 김모 씨(67·여)는 “지난 15일 오후 10시쯤 갑작스럽게 대피해야 한다는 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와 마을 주민들을 깨워 함께 대피소로 왔다”며 “아직도 당시만 생각하면 놀란 마음에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회상했다.
옆에 있던 김미숙 씨(61·여)도 “익산시에서 대피소를 마련해주고 친절하게 보살펴줘 그나마 낫지만 문제는 마을이 비 바다가 되어버려서 손 쓸 수 없게 돼 막막한 마음뿐이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7일 오후 4시까지 익산 함라에는 511㎜, 익산 여산면에는 456.5㎜, 익산에는 308.8㎜의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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