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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잡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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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우석대학교 교수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사십여 일째,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휴대폰에서 뉴스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된 현실을 반영한 시사용어다. “잡혔어?” 졸린 눈을 뜨자마자 절로 터져나오는 이 말에는 제발, 오늘은⋯ 이 불면의 밤들이 종결되었으면 하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정의가 지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고, 간밤 ‘그 자’의 안부를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12월 3일, 지옥문 앞까지 갔으나 천행으로 악귀들이 몰려 나오는 문을 틀어막은 내란의 밤 이후 우리는 대한민국을 주도한다는 권세가들의 민낯을 라이브로 목도하고 있다. 장성들, 경찰 수뇌부, 총리 장관 등의 최상위 관료, 집권당 국회의원들까지 한통속으로 가담한 친위쿠데타가 만일 성공했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권력의 이면, 추악한 결탁의 속살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전사, 정보사, 방첩사, 수방사 등 정예 무력과 정보기구의 지휘권을 틀어쥔 이들은 모두 윤석열의 패거리로 놀았다. 특정 연줄로 얽혀 화려한 정치군부시대의 재림을 꿈꾸었을 이들의 시나리오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전라도 말로 ‘오살 것’들이 판을 치는 잔혹한 국가 폭력의 피바다가 펼쳐졌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살이 떨린다. 

군부정권의 기억으로부터 40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군사반란을 실시간 중계로 목격하면서도 많은 국민들은 이것이 현실임을 차마 믿기 어려웠다. 공화국의 기초가 이렇게 허약하다는 것을 맨눈으로 확인한 것이야말로 내란 사태가 남길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명백하고 온 국민이 증인인데도 대한민국은 아직 <내란 진행중>이다. 악은 창을 깨고 난입했는데, 정의와 선을 회복하는 일은 절차를 따져가며 지난한 경로를 따라 간다. 수괴는 경호처를 사병으로 동원하고 용산궁에서 장기농성을 하며 법과 제도를 비웃는다. 수괴는 말할 것도 없고, 내란주범의 정치적 경호부대로 전락한 국힘당 의원들의 변설을 들으면 후안무치, 적반하장 같은 말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와중에 요설을 펼치며 이상한 양비론으로 저들에게 분칠을 해주는 자도 여럿 있다.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들이 늘어놓는 문장이나 노래, 설교 따위를 나는 결코 믿지 않는다. 이런 때에 저절로 드러난 본색들을 사람들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필귀정, 발본색원이 지금의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정의가 오래 구현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 말에 기대 마침내 승리하는 순간을 꿈꾼다. 이 땅의 많은 일은 휴전선, 분단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자본 체제에 근원적인 전원 스위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뿌리를 더듬어야 할 일들이다. 

평범한 이들의 나날의 작은 삶이야말로 이 곡절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이 아닐까 싶다. 식민지, 전쟁, 분단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총칼 아래에서 죽고 넘어지며 여기까지 밀려온 삶.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우리 등 뒤에 서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나는 일기장에 써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 저녁 노을, 어느 날의 비와 흰 눈들, 수많은 걱정과 희망들. 사람다움의 순간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 이름을 낮게 불러본다. 

 

△이재규 교수는 시민사회단체, 방송진행자, 국회 보좌관, 민간 남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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