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 일정이 다가오면서 거리 곳곳에 정당과 정치인들이 내건 각종 현수막이 난립하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통행을 방해해 교통사고 위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제8조)에는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는 정책·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일반 시민이나 자영업자는 작은 현수막 하나를 내걸려고 해도 일일이 허가를 받도록 해놓고, 정치인은 거리낌 없이 정당명과 자신의 이름을 새긴 현수막으로 거리를 도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에 따라 정치 현수막은 사실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고, 지자체는 특정 현수막이 허용 범위에 해당하는지 일일이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하지만 정치 현수막이라고 해서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예외 조항을 두면서 수량과 장소·기간·규격·설치방법 등의 제한 규정을 함께 명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당연히 불법 현수막으로 단속 대상이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단속에 소극적이다. 전주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주시에서 불법 정치 현수막을 단속해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정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 자유가 시민의 안전과 생활환경을 침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런 현수막을 ‘시민 소통창구’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정당이나 정치인의 이름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저비용·고효율의 광고물이다. 지난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도 거리에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들의 응원 현수막이 줄줄이 내걸렸다. 수험생 응원을 빙자한 입지자들의 ‘존재감 알리기’, 정치권의 ‘수능 민심잡기’ 목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시 거리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광고판이 아니다. 그들의 무분별한 특혜성 홍보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 정당과 정치인의 현수막도 일반 현수막과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해야 한다. 아울러 지자체에서도 규정을 어긴 불법 정치 현수막에 대해서는 성역 없이 강력하게 단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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