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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문학의 고장에서 뭐?

이광재 소설가

채만식은 군산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단편에 비해 장편소설이 부족하던 일제 치하에 그는 『탁류』와 『태평천하』라는 장편을 남겼다. 신석정은 부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전라북도에서 살았다. 그는 일제 식민지배하에서도 변절하지 않고 조선의 시단을 지켜온 절개의 시인이다. 고창에서 태어난 서정주는 친일 이력이 있지만 북녘의 언어를 어루만지던 소월과 더불어 남녘 언어를 조탁한 시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고은이 있다.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현대 시단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이다. 동서와 고금을 넘나들며 충격적인 깨우침을 전하는 시인. 정읍에서 태어난 박정만 시인 또한 전북의 문인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군부독재정권의 고문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진 못했으나 그가 서정시에 획을 그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 가람 이병기다. 익산에서 태어난 그를 당대의 최고 시조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어학자이기도 한 그는 말년에 지역에서 후학을 기르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교과서에 실린 「고무신」이라는 시조를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시조를 쓴 장순하는 정읍에서 태어나 평생 지역에 살면서 후학들을 길러낸 사람이다. 김제 출신 정양은 오랜 기간 제자를 양성하며 시작 활동에 전념했고, 익산 출신의 이광웅 또한 후진을 양성하며 완성도 높은 시편을 남겼다. 임실에서 태어난 김용택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지금도 한국 시단을 이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유현종은 완주에서 출생해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들불』을 썼으며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낙양의 지가를 올린 소설가다. 최일남은 전주에서 태어나 작가로 일가를 이루고 언론인으로도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천이두는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날카로운 평론은 대한민국 평단을 뒤흔들 정도였다. 그는 지역의 정서에 밀착해 있었으며 판소리 연구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 윤흥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재명 현 대통령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양귀자 또한 전북 전주가 고향이다. 폭넓은 독자층을 지닌 그는 전주 홍지서림이 재정난으로 위기에 처하자 그를 인수해 명맥을 유지하게 한 장본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있다. 최명희는 남원 사람인데 대하소설 『혼불』은 소설로서뿐 아니라 박물지로도 가치를 지닌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근래에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은희경은 고창이 배출한 소설가로 여전히 활동 중이며, 이병천 역시 전북이 배출한 작가다.

전북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인을 배출했으며 이들이 한국 문단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들 문인을 따라 후학들은 오늘도 밤을 밝혀 글을 쓰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전북은 한층 높은 품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인을 기려 덕진공원에 세운 시비를 주민들과 상의도 없이 전주시청은 외진 곳에 치워버리더니 항의가 빗발치자 또 다른 어딘가에 가져다 놓겠다고 한다. 지역 주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문향이 행정 종사들에게는 악취로 느껴진단 말인가. 문학은 눈앞의 이익을 담보하지 않지만 내면의 품격과 향기를 보장한다. 문학이 곧 수준의 시금석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 주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 책임자들의 무지가 한심하다. 지자체 선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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