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물건들은 저마다 ‘가격표’를 달고 있다. 편의점에서 사는 생수 한병, 서점의 베스트셀러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단순히 가격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 낡은 고택, 명창의 판소리 공연, 혹은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가 그렇다.세계적인 문화경제학자 데이비드 트로스비는 문화가 가진 이 특별한 비밀을 두 개의 가치라는 틀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바로 가격표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가치를 설명한 것이다. 트로스비는 문화상품에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가치’가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이는 크게 다섯가지 요소로 나뉜다. 미적가치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며, 영적 가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신적인 풍요를 주는 힘이다. 사회적 가치는 공동체에 소속감을 주고 서로를 연결한다. 역사적 가치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체성의 뿌리 역할을 한다. 상징적 가치는 특정 시대나 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트로스비 이론의 또 다른 핵심은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다. 보통 자본은 은행의 예금, 공장의 기계를 떠올리지만, 문화 역시 자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문화적 가치가 꾸준히 쌓이면 하나의 커다란 ’자산‘이 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유산이 오늘날 K-콘텐츠의 뿌리가 되어 거대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지금 우리가 문화를 보존하고 향유하는 행위는 단순히 돈을 쓰는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투자인 셈이다.
전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뛰어난 지역이지만, 정작, 지역을 대표할 만한 ’문화 유니콘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지역 내 문화 자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경제적 자본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게 해줄 통합적 지원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가치는 아카이빙과 진정성을 통해 서서히 문화자본이 되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경제적 가치는 즉각적인 매출과 지표로 증명되어야 한다.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는 시간차가 있다. 이 시간의 간극을 견디지 못할 때, 잠재력 있는 문화기업들은 스케일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
전주에서 무형문화재의 서사를 현대적 콘텐츠로 기록하면서 창업과 초기 투자유치도 성공했던 한 문화기업은 이후 매출 등의 지표를 중요하게 여기는 후기 투자로 넘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기업은 브랜드의 깊이를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반적인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들은 단기적 회수율을 더 요구한다. 결국, 문화적 자본이 경제적 자산으로 완전히 만개하기 전, 투자의 시계가 멈춰버리는 셈이다.
전북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단순히 창업지원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며, 경제적 가치가 궤도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문화 특화 액셀러레이터‘와 ’인내자본‘인 것이다. 진정한 문화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기업이 가진 이중적 가치를 품어주는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인내하는 파트너‘가 많아질 때 전북의 문화는 비로소 지역의 부(富)로 피어 날 것이다.
이수영 본부장은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미래전략본부장,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육성팀장, 전주 동문예술거리추진단 기획팀장, 삼천문화의집 관장, 이수영 음치클리닉 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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