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 번의 말썽도 부리지 않았던 노트북이 갑자기 무한 부팅 상태에 들어갔다. 2년간의 작업물들이 날아갈 뻔한 아찔한 상황 속에서 3일 밤낮을 매달려 가까스로 자료의 손실 없이 노트북을 살려냈다. 진정할 새도 없이 바로 해야 할 밀린 일들을 다 마치고 나서 느낀 감정은 오묘한 허무감이었다.
그동안 작업한 서류, 증빙용 자료 사진, 글 등 모든 자료는 데이터 형태로 웹에만 있었고, 자주 확인하는 공고 사이트나 언론사들의 리스트는 기기에만 저장되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이는 매일 만나는 지인의 번호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음악, 쇼핑 등 많은 어플들은 구독제로 전환되며 단 하나도 ‘내 것’ 인 것이 없었다. 그동안 나와 연결되어져 있던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내에서 소환될 때만 잠시 존재할 뿐, 실제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령들과 같았다.
돌아보면 나는 꽤 많이 ‘유령’의 상태로 있었다. 빠르게 잠에 드는 법으로 미 공군에서 사용한다는 ‘해파리 수면법’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얼굴 근육부터 발끝까지 이완하라는 지시를 읽고 “얼굴에도 근육이 있나?” 라고 생각했다. 숨을 쉰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비로소 호흡이 느껴지듯, 그동안은 그것이 지금 있는지, 긴장한 상태인지도 모르고 당연스레 내 몸에 붙어있는 근육을 이완시키는 감각을, 여섯 번째 손가락이나 꼬리를 찾듯 낯선 감각처럼 탐색했다. 온몸에 긴장을 풀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몸에 힘을 많이 주고 있었나?” 싶었다. 나는 ‘내 몸’ 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꽤 자주 ‘지금’에 있지 못한다. 미루고 있는 논문, 올해에는 꼭 해야지 하는 작가 페이지 만들기나, 언젠가 쓰겠지 하고 모으는 메모들, 나중에 읽으면 좋겠지 싶어 미리 사두는 책들. 이미 다 지나갔지만 괜히 이불을 발로 차며, 놓쳐버린 어제들의 실수 되새기기나,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지레 겁먹어두기 같이, 끝나지 않은 과거들과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들을 쌓아가며 ‘현재’를 납작하게 짓누른다.
그 어디에도 자리하고 있지 않은 경험들을 되새기다 보면 ‘사람’으로 연속된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 ‘살아’진다는 것은 결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희끄무리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붙잡아 판단하고 행동해 낼 때에만 비로소 현상으로서 세계에 확정되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의무감이나 책임감에 현재를 축내거나, 타자들의 관성에 휩쓸려가거나, 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확정한다는 것은 늘 무겁다. 무언가 일을 미루며 주저하는 이유는, 이 선택들이 삶에 가져올 무게감을 감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난 뒤, 혹은 너무 부담을 갖다 보면, 역으로 아주 개인적이고 모난, 어긋난 감각들만이 남게 된다. 의무나 책임, 보편, 승인이나 허가의 여부가 아닌 설명되지 않는 판단일 때만이, 휘발되는 유령들을 세계라는 좌표에 박아 넣는 작은 못으로 남았다. 또다시 무겁고 모날 선택들을 찾아가며, 스쳐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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