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시민들이 촛불을 든 배경에는 정권의 적폐가 컸기 때문이었다. 동학농민혁명 역시 관료들의 적폐가 도화선이 됐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 ‘폐정개혁’에 나선 것과, 새 정부가 촛불의 민심을 받들어 적폐 청산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봉준투쟁단은 촛불집회 당시 폐정개혁안을 재구성한 ‘2016 새나라 건설 폐정개혁안’을 선포하기도 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추구했던 민중들의 가치가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서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올 한 해 개헌이 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개헌 시기나 권력구조 등을 놓고 여야간 대립하고 있으나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지방분권의 강화에 대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본다. 전국적으로 ‘지방분권 개헌 천만인서명운동’이 힘 있게 추진되고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약화될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지방분권 강화의 시대적 흐름은 거스르지 못할 것으로 본다.
지방분권과 맞닿아 있는 것이 동학농민혁명이기도 하다. 전주화약을 통해 설치된 집강소를 두고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동학농민군 대표가 집강이 되어 지방행정을 꾸려갔다는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인 지방자치의 출발로 평가받는다.
헌법 전문에 이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담기 위한 노력이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헌법 전문의 손질 여부조차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치와 현대사의 중요한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역사적 사실의 선정에서 불필요한 국론분열의 우려 등을 고려해서 개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맞서면서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 역시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 항쟁, 부마민주항쟁 정도가 거론됐을 뿐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새로운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인 현대사와 구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건 자체가 전국에 걸쳐 있어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일으킬 소지도 적다. 현행 헌법 전문에 수록된 3.1운동에 큰 영향을 줬고, 혁명이 추구한 정신 역시 인류가 추구하는 생명존중·복지·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헌법에 담긴다면 누가 감히 촛불정신을 끌어내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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