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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간 전봉준
서울로 간 전봉준
  • 김원용
  • 승인 2018.05.01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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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최고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1855∼1895)의 동상이 수도 서울에 세워진 의미는 크다.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된 고부봉기를 앞두고 작성된 사발통문의 4가지 내용 중에 ‘전주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직향할사’라는 대목이 들어 있다. 동학농민군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서울 진입은 관군과 일본군이 지킨 공주 우금치 전선에 막혀 끝내 무산됐다.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된 후 혁명군 지도자가 아닌 죄인 신분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된 전봉준 장군의 심정인들 오죽했으랴 싶다. 전봉준 장군이 사형 전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몰래 죽이느냐”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봉준 장군의 서울 동상은 이런 동학농민군의 변혁에 대한 갈망을 뒤늦게나마 평가하고 채워주는 상징적 조형물이다. 여기에 전북의 일개 사건 정도로 여겨온 동학농민혁명의 지평을 전국으로 넓히고, 혁명의 정신을 한층 더 높이 치켜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서울 동상의 설립까지 과정은 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주를 방문했을 당시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업부장의 제안을 받고 곧바로 부지 물색을 벌였다고 한다. 마침 전옥서 터 중에 서울시 땅이 있어 동상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동상건립위가 꾸려지고, 2억7000만원의 국민 모금이 이뤄졌다. 국민 모금에 200여명이 참여했다.

건립 부지와 사업비가 마련된 후 어떤 모습의 동상이 만들어질지 관심사였다.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전봉준 선생상’이나 정읍 황토현과 정읍공설운동장에 세워진 기존 동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탓이다. 고창 출신의 원로 조각가인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가 만든 서울 동상은 화강암 좌대 위에 전봉준 장군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가마 위에 앉아 서울로 압송되던 전봉준 장군의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문병학 부장은 “동학농민혁명 후 우리의 근현대사는 불구였다”며, “부상당한 전봉준 장군의 좌상이 그 역사를 잘 대변한다”고 했다. 좌대 때문에 동상 주변의 군중들이 장군을 떠받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형상도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이란다.

전봉준 장군 동상의 화룡점정은 ‘눈빛’이다. 누군가는 동상의 눈빛을 형형하다고 했다. 전봉준 장군의 사진을 보면 흑백사진임에도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이 쏜 ‘레이저 눈빛’을 능가한다. 안도현 시인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시에서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 오늘 나는 알겠네”라고 전봉준 장군의 눈빛에 주목했다. 전봉준 장군의 형형한 눈빛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라고 서울 한복판에서 불침번을 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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