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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이 사회악인가
저출산이 사회악인가
  • 기고
  • 승인 2020.07.05 19: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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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변호사
박지원 변호사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50대 공무원 지인으로부터 ‘나중에 연금 떨어지지 않게 아이 좀 많이 낳아줘’라는 말을 들었다. 농담 반, 덕담 반 섞어 웃음을 건네는 그였기에 차마 개그를 다큐로 받지 못하고 나 역시 웃음으로 답했을 뿐 아쉽게도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한 마디는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당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지면으로 전하고자 한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심사가 뒤틀리는 성격이다보니 후배의 출산을 축하하는 자리에 연금 걱정 운운하게 만든 사회 분위기에 아니꼬운 의문이 들었다. 왜 저출산을 근절 대상인 사회악으로만 보는가?

정부와 언론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저출산으로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나라가 통째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소식이었을 터. 인터뷰가 첨부된다면 단칸방에서 시작하던 옛 시절을 전하며 철부지들의 근성을 아쉬워하는 기성세대와,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시대에 희망 없는 삶을 물려주기 싫다며 ‘욜로’를 외치는 청년세대의 모습이 함께 그려졌으리라.

10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소위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던 시대다. 물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유일한 노동력의 원천이자 노후대비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다산했으며, 피임기술이 보급되지 않아 흥부는 뺨을 맞으면서도 굽신거리며 살았다.

시곗바늘을 50년만 뒤로 돌린다. 우리는 맹수, 질병, 전쟁, 기아 등 수 천년간 인류를 괴롭힌 문명사의 파고를 정복해나갔다. 산업화로 자본이 축적되면서 연금 등 복지제도가 싹을 틔우고, 도시화로 대가족의 효용은 줄어든다.

50년이 더 흐른 현재. 개인의 인권과 행복은 최우선 가치이고,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독립할 수 있다. 사회와 복지시스템이 일정 수준의 안전과 부양을 보장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 운운하지 않더라도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서 자아실현 욕구에 집중하게 되고, 가족 제도나 자녀의 효용이 감소하면서 출산율은 자연스레 낮아진다.

이처럼 돌이켜보면 저출산은 공포와 척결 대상이기 전에 인류 번영, 발전의 징표이자 자랑이다. 정히 저출산이 싫고 고출산을 원한다면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본받아 과거로 돌아가면 된다. 가부장제를 강화하여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고 피임을 금지하며, 사회보장을 없애고 부정부패를 만연케 하며, 군사력과 경찰력을 무력화시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여성은 전쟁, 강도, 겁탈을 피해 혼인제도에 의탁하고, 무능한 국가에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생존과 노후를 위해 아이를 낳으며, 유력한 가문과 권력자의 보호를 받고자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니면서 혈맥과 혼맥에 의지하려 애쓸테니 저출산은 그야말로 발본색원이다.

그런 사회로 회귀를 원하는가? 아니라면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 데까지 온 우리 문명 발전사의 도도한 흐름을 자축하며, 그 노정에 작금의 저출산 현상이 있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나.

물론 저출산 우려 담론이 의미를 가질 수는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것이 본론이었는데 하도 연금 걱정으로 불안해하는 통에 등 한번 토닥이고 시작한다는 것이 서론이 길어졌다. 다음 글에서 뵙겠다.

 

△ 박지원 변호사는 김제시 고문변호사, 서해대학교 이사, 전주MBC 시사프로그램 ‘이슈옥타곤’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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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등 2020-07-07 16:08:21
명쾌합니다.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