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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재경 전북경제인] 오현규 ㈜코릴 대표 "해외 수출 주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시키겠다"
[뛰는 재경 전북경제인] 오현규 ㈜코릴 대표 "해외 수출 주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시키겠다"
  • 김준호
  • 승인 2020.07.05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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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용 릴(reel)의 선두주자
1991년 시작, 국내 릴 시장 개척
직원 2명으로 시작...96명 직원에 연 240여억 매출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개발, 철저한 품질 관리와 정확한 납품
오현규 ㈜코릴 대표
오현규 ㈜코릴 대표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30년 간 한 우물을 팠다.

국내 산업용 릴(reel)의 선두주자인 ㈜코릴의 오현규 대표(60·남원).

‘릴’은 전선이나 호스 등을 감은 몸체와 여기에 감긴 제품을 일컫는 것으로, 릴을 통해 공기와 유류, 전원 등이 공급된다. 전기청소기나 카센터의 천장에 달려 있는 공기 및 엔진오일 주입기 등이 일반적이다.

오 대표가 릴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일본에서 수입 판매하는 부산의 한 기업에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 산쿄 사장으로부터 ‘릴’에 대해 전해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만 해도 ‘릴’에 대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1991년, 그는 과감하게 릴 제조 회사(당시 ‘3국산업’)를 세웠다.

무모할 것 같은 도전에 대해 그는 젊은 시절 배웠던 기술과 그에 대한 자신감이 배경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계와 제도 등을 배운 터라 ‘릴’을 보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 시장성도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남원고를 졸업한 후 대입에 실패하자, 이리공고 병설 공업기술원에서 후배들과 기계·제도·전기·용접을 배웠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그의 남다른 안목이다.

앞서 군 제대 후 대학(광주 경상전문대)에 입학했던 그는 졸업 후인 1982년, 일본에 농업기술원 연수를 다녀왔다. 그 시절, 그는 다양한 미래의 먹거리를 봤다고 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 보다 앞서 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죠. 그 중 눈에 띈 것은 셀프서비스와 회전초밥·노래방·폐차장 등이었는데, 이들은 앞으로 국내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같은 일에 대한 자신감과 사업에 대한 안목은 국내 릴 시장을 개척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원동력이 됐다.

자본금 1200만 원에 직원 2명과 함께 인천 계양구의 용접기 제조업체의 한 켠을 월세로 얻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국내외 제조사들로부터 구입한 호스를 조립해 납품하는 방식이었는데, 시장 수요가 없다보니 월세 내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1990년 중반에부터 각 공장에서 정리정돈 운동이 불기 시작하면서 주문이 크게 늘었다.

“특히, 1998년 IMF때는 자동차 회사에서 다니다 퇴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카센터를 차렸죠. 이들은 이미 릴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죠.”

이후 현대차를 비롯해 삼성자동차의 서비스센터에서도 코릴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기반을 구축했다. 2002년엔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자신의 공장을 마련했다.

이 시절 릴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기술력이었다.

“항상 ‘반전’을 생각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잘 하는게 무엇인가를 고민해 왔죠.”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장점 중의 하나인 끼를 발휘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이었다. 릴로 대체가 가능한 틈새시장을 본 것이었다.

90년 대만 해도 릴 제품은 대부분 공장 내부 정리정돈용이었다. 그러던 것을 산업용(구동용)으로 확장시켰다. 기존의 제품에 자신만의 응용력을 가미해 새로운 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소개된 릴 제품이 호스릴과 전기릴, 유압릴, 크레인릴 등으로 다양화된 게 이 시기다.

현재 릴은 소형 가전부터 소방차, 공연 무대, 선박, 항공, 광산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특히, 표준화된 제품 외의 주문 제작에 눈을 돌렸다.

주문 제작은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릴은 주문형 제품 거래처를 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7000여 곳으로 확장했다. 미주와 유럽 등 43개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특수분야인 전기 충전차 및 전기굴착용 릴을 국내에서 처음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엔 선박 접안 시 선내 전기공급을 위해 디젤엔진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AMP SYSTEM’ 릴을 개발했다. 그 공로로 지난달 19일 한국표준협회가 주최한 ‘2020 대한민국 혁신대상’에서 신기술혁신상을 수상했다. 대기업에선 삼성전자가 수상했다.

이외에 대형 크레인 등에 필수적인 컨트롤러를 비롯해 릴 제작에 필수적인 부품은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2012년 자체 연구소를 개설한 것을 비롯해 매년 매출액의 5~8%를 R&D에 투자할 정도로 연구개발에 힘쓴 결과다.

그 결과, 코릴은 지난해 매출이 243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직원도 사업 초창기 2명에서 현재는 96명으로 늘었다. 2010년에는 군산 오식도동에 2000평 규모의 제2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고객과의 신뢰를 첫 손에 꼽았다.

30년 동안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함께 철저한 품질관리 및 정확한 납품을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믿음을 갖고 우리 제품을 찾은 고객들에게는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꺼이 손해도 감수한다”고 했다.

그는 코릴 제품이 중국 제품보다 비싸다며 단가 인하를 요구했던 업체가 몇년 후 다시 돌아왔던 사례를 소개했다.

“가격을 낮추면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 거절했죠. 그런데 4년 후 다시 찾아 왔죠. 품질 불량 때문에 중국 제품을 더는 못쓰겠다는 것이예요.”

특히 그는 “‘전라도 사람’이란 비야냥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배 이상을 노력했다”고 했다. 전북출신으로서 겪었던 고충의 일단이다.

그는 “현재 미주 시장에서도 우리 제품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해외 수출에도 주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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