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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1) 장마에 그 마을은 안녕한가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1) 장마에 그 마을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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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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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우리 당산나무와 가묘.
물우리 당산나무와 가묘.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란 윤흥길 소설 「장마」의 구절과도 같은 나날을 지나고 있다. 장마는 여러 날 오랫동안 내리는 비로 ‘오란비’라 하였고, ‘오랜’의 한자어인 ‘장(長)’과 ‘맑다’에서 유래한 물의 옛말인 ‘마ㅎ’과 합해져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 ‘ㅤㄷㅑㅇ마ㅎ’로 표현되다가 ‘쟝마’에서 ‘장마’로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맛비를 보니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 장마에 논둑 터지듯 한다.”란 근심을 담은 속담과 더불어 임실군 덕치면 ‘물우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섬진강 상류에 자리한 물우리(勿憂里)는 물이 주변에 많다는 의미로 불린 ‘물골 혹은 물구리’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강에 인접한 탓에 물로 인한 근심이 끊이지 않은 곳이어서 ‘물우리’라 알려졌다. 물우리는 섬진강이 아름답게 굽이치는 물가의 마을이지만, 항상 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다 보니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장소를 만들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는 곳에 특별한 당산나무와 두 기의 가묘가 있는데 그 유래가 깊다. 마을의 수호나무인 당산나무는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 도둑이 마을에서 재물을 훔치고는 당산나무 근처에서 뱅뱅 돌다가 결국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게 한다는 이야기와 정성껏 제를 모시면 아들은 얻는다고 전해지는 나무이다. 신비로운 힘을 지닌 당산나무 옆에는 당산 할머니의 형상을 만들어 묻고 봉분을 올려 만든 할매묘가 있고 길 위쪽에는 할아버지 형상을 만들어 묻어 동네에서 할아씨묘라 불리는 할배묘가 있다.

당산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아온 물우리의 양승래(1940년생)에 의하면, 매년 정월 보름날에 지냈던 당산제는 마을의 큰 행사였다. 마을 사람들은 각각의 역할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으며 제물을 장만하는 사람은 일주일 전부터 몸가짐을 조심하며 근신했고, 제사 5일 전부터는 당산나무에 새끼줄로 만든 금줄을 치고는 제를 준비했다. 마을에서 채취한 붉은 황토를 봉분에 더했고 할배묘에 먼저 제를 지낸 후 할매묘에 내려와 제를 지냈다. 제물로 바친 돼지머리를 가묘에 묻고 모정 쪽에 있는 넓은 바위를 가져다 그 위를 덮은 듯 눌러 놓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한다.
 

임실 물우리 전경과 고지도(1872년 지방지도).
임실 물우리 전경과 고지도(1872년 지방지도).

농업을 중요하게 여겼던 선조들에게 가뭄과 장마는 큰 문제였다. 큰비나 장맛비가 내리면 나라에서도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으니 물우리 같은 물가에 자리한 마을에서는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곡창지대가 있는 우리 고장은 나라의 주요 관심지로 『조선왕조실록』에 “김제에 많은 비가 퍼붓듯이 내려 물가의 전답이 모두 침수되어 곡식들이 썩거나 손상되었고, 김제의 넓은 들은 넘실거리는 물결이 바다와 같다는 것과 남원에 홍수가 나 인명피해가 나고 전답이 묻혔다”는 등의 내용이 수해 보고와 상의한 기록 속에 상세히 등장한다.

조선 시기 비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 저자를 여는 등의 여러 대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도성의 숭례문과 숙정문을 닫거나 여는 것이었다. 장마 때는 숭례문을 열고 숙정문을 폐쇄했고 가뭄 때는 정반대로 했다. 남쪽의 숭례문에서 양의 기운이 들어오고 북쪽의 숙정문에서 음의 기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양을 조절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음의 기운이 넘치는 장마 때는, 양의 기운을 늘리고 음의 기운을 줄이고자 숭례문을 열고 숙정문을 닫으며 음양의 기운을 맞추었다.
 

김제의 수해와 장마 대책으로 결혼시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김제의 수해와 장마 대책으로 결혼시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그뿐만이 아니라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에 장마가 지고 백성들이 피해를 받는다고 여겨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독특한 장마 대처법으로 가난해 결혼 시기를 놓친 원한들이 화기(和氣)를 범했다 여겨 혼수를 넉넉히 주어서 결혼을 시키기도 하였고 피해받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제원을 마련하고 구황을 하며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홍수로 인한 산사태와 하천의 범람은 산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 토사가 유출된 것이 원인이라며 산림을 보호하고 천변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으며 정비에 만전을 기했다. 천변에 버드나무와 푸조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을 식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관이 만든 제방 숲’을 뜻하는 ‘관방제림’도 조성하며 적극적으로 치수에 힘을 썼다.

물우리에서 성대하게 지내던 당산제도 새마을운동이 번져나갈 무렵 동네의 무관심 속에 어느 순간 맥락이 끊어졌고 돼지머리를 누를 때 사용했던 모정 옆 바위도 행방이 묘연하다. 하지만, 당산나무와 가묘는 제자리에서 모두의 안녕을 기리는 마음을 품고 마을을 지켜주고 섬진강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마을을 잇는 튼튼한 다리가 잘 정비된 섬진강 위에 놓여 졌으니 큰 근심은 덜은 셈이다.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억수장마 끝물의 참외같이 밍밍하고 답답한 일상을 지나고 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란 말을 굳게 믿는다. 소설 「장마」에서 할머니가 “이제 나가 놀아도 좋다”라고 말하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끝맺은 것처럼 유달리 긴 장마 끝에 얼굴을 내미는 쨍한 햇살로 장마를 끝내고는 길을 나서고 싶다. 섬진강이 아름답게 휘도는 물우리에 들러 당산나무에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고 섬진강 자전거길을 기분 좋게 내 달릴 생각에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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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07-24 10:17:51
장마로 인한 안타까운 피해소식이 들리네요. 어려서는 천수답에 가뭄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도심에 밀집된 인위적인 시설로 인해 장마 피해가 더 심각한 것 같네요. 물이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