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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귀가(歸家) - 황지호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귀가(歸家) - 황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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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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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성 기자
삽화=정윤성 기자

집이 죽어가고 있었다. 평고대 안쪽으로 쏟아진 기와는 기단과 마루에서 파편이 되었다. 기와가 밀린 곳은 보토와 진새, 앙토가 드러났고 그 흙에 의지해 민들레가 자라고 있었다. 뿌리가 암세포처럼 서까래 골수에 파고들었을 것만 같았다. 상한 서까래 마구리는 아귀의 이빨처럼 날카로웠고 추녀는 갓이 상한 버섯처럼 추레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덧문과 덧문에 남아 있는 삭은 보온 비닐들이 집의 음습함을 더했다. 황토미장을 한 벽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미장한 흙이 떨어지며 드러난 중깃과 눌외, 설외가 핏줄처럼 보였다. 황토와 범벅 돼 흘러내린 빗물이 피고름 같았다.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 그것을 주춧돌이 농반처럼 받았다. 밤이 되면 무서운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집이 흐느껴 울 것만 같았다.

드레싱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피부암 전이를 막기 위해 절단한 그녀 다리는 치료되지 않았다. 피부암이 전이된 것인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직검사를 하자는 요청에 담당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내려놓은 듯했다. 깨끗한 임종을 위해 절단한 부위의 상처라도 낫길 바랐지만 수습되지 않았다. 소독할 때마다 핏줄과 살들이 너덜거렸고 상처와 상관없는 근육이 바들거렸다. 그녀의 긴 비명이 병동을 오래 침묵하게 했다. 몇 번의 드레싱 이후 이식한 살이 떨어져 나갔다. 소독 접시로 그것이 떨어지자 담당의가 질끈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와 근육 사이가 벌어졌다. 이격을 봉합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회진을 할 때마다 새살이 돋았냐고 순하게 묻던 그녀가 퇴원을 하라는 의사의 말에 사납게 변했다. 처음에는 비명을 참아 보겠노라고 했다. 암이 전이된 것이면 위쪽을 한 번 더 절단하자고 했다. 퇴원이 임종을 준비하라는 말인 것을 안 그녀는 분노와 원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노와 원망 사이에 의사는 희망을 심어 주지 않았다. 담담히 남은 생을 정리하라고 했다. 의사의 담담함이 죽음을 더 바투 다가오게 했다.

 

부엌문 하방과 둔테를 바라보았다. 하방은 반달처럼 굽었고 둔테는 우물처럼 깊었다. 옛 목수는 하방을 자귀로 다듬고 끌질을 더해 둔테를 만들었다. 곡률이 큰 월방문턱이었으나 턱이 닳았고, 세월과 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둔테는 깨져 있었다. 비스듬히 걸린 부엌 판문을 당겼다. 부엌이 깊숙한 곳까지 햇살을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천장 상부 구조를 바라봤다. 좌측 대들보와 우측 평주를 휘어진 충량으로 연결하고 전후면 도리를 연결하는 멍에를 충량 위에 가로질러 걸었다. 그 위 외기 도리에 추녀와 서까래를 걸었다. 충량과 멍에의 곡선이 은은했고 모를 접어 순해 보였다. 손대패로 다듬은 서까래의 살결이 매끄러울 듯 했다. 겉은,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었지만 속은 아직도 여리고 순한 집이었다.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눈꼽재기창은 그대로였으나, 그 아래 부뚜막에 걸려 있던 암수 솥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래 비어 있던 집이니 고물상들이 남겨 놓을 리 없었다. 솥을 잃은 부뚜막은 무너졌고, 쌀뒤주는 사라져 빈자리에 먼지가 앉았다. 솔가리는 숨이 죽었고, 섶은 삭아 땔감답지 못했다. 석유곤로와 사기그릇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놓인 한쪽 술날이 닳은 놋숟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유리를 만진 듯 차가웠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들어 술잎을 천천히 쓸었다. 파란 녹이 더 진하게 드러났다. 놋숟가락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부엌방 홑겹 대살문 너머로 작은 항아리 몇 개가 보였다. 항아리에 소분된 간장과 된장을 고물상도 차마 내쏟지 못한 듯했다. 간장과 된장은 이미 오래전 발효의 끝에 다다랐을 것이다.

정맥주사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감나무 새순이 돋았냐고 물었다. 그즈음이라고 답했다. 정월에 담은 간장을 갈라야 하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감나무 새순이 돋기 전에 간장을 가르고 새순이 피면 못자리를 준비하자고 했다. 논두렁이 미끄러울 텐데 한쪽 다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오디새가 울기 전 밭갈이를 마치고 접동새가 울면 외를 심자고 했다. 감꽃이 피면 논두렁에 서리태를 심고, 감꽃이 질 때쯤 메주콩을 심자고 했다. 뻐꾸기가 울면 참깨를 심고, 고추잠자리가 날면 김장 배추를 심자고 했다. 눈 오기 전에 모은 솔가리가 불땀이 좋은데 산비탈에서 갈퀴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가 첫눈이 내린 날 아침, 햇빛이 문고리에 걸릴 무렵 그를 낳았다고 말했다. 생일날 국수를 삶아 주고 싶으니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회진을 도는 담당의에게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몇 올 남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부엌에서 나와 툇마루를 바라보았다. 여모귀틀 하단 곡선은 초봄의 들판을 닮았고 마루청판 상부 풍화된 나이테는 밭이랑을 닮았다. 밭이랑은 소를 부려 골을 탄 듯 굽었고 새 보습을 끼운 듯 고랑이 깊었다. 이랑과 고랑에 먼지가 쌓여 마루의 봄 흙 같던 검은 윤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마루청판 하부에 옛 목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무 연질을 부드럽게 떠낸 자귀 자국이 완연했다. 마루청판과 귀틀, 부엌 월방과 둔테를 다듬은 자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스승은 목수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오면 자귀질만 반년 넘게 시켰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무의 성질을 깨닫게 하려는 뜻인 줄 알겠으나 견디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스승은 죽기 직전, 남은 목수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묵은 집을 고치거나 이축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일을 물리지 말라 했다. 목수에게는 묵은 집보다 좋은 스승이 없다고 했다. 묵은 집을 열어 보면 옛 장부법, 직재와 곡재를 다루는 정석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집을 감싸는 바람 길과 집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물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성정이 다른 재료를 버무려 공간을 짓는 방법과 그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외기를 어떻게 이어 주는지, 혹은 피해가게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집이 늙어 가는 흐름과, 어디부터 상하고 아프기 시작하는지, 집과 사람이 어떻게 의지하고 서로를 품어 주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이 사람으로 보일 때에야 비로소 도편수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오래된 옛집은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반듯하고 고졸한 집은 선비로, 산속 암자는 초연한 노승으로 보여야 한다. 양반인 것 같지만 격 없이 화려하게 지어 기생인 집이 있고, 비루한 객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준엄한 어사의 품위를 갖춘 집이 있다. 같은 촌부라 하더라도 사임당 같은 집이, 용부의 부족한 심성이 드러나는 집이 있다. 폐가가 되었을 때도 무관의 기품 드러나는 집이 있고, 인색하고 옹졸한 성품이 드러나며 볼품없어지는 상인의 집이 있다. 본채는 번듯하지만 아래채는 남루한 집이 있고, 부족한 본채지만 아래채와 의지하며 조화로운 집터를 만들어 가는 집이 있다. 말은 없지만 속정이 깊어 기대고 싶은 집이 있고, 치장은 화려하나 내용이 없어 오래 머물 수 없는 집이 있다고 했다. 도편수는 산파와 같아 새로운 집의 탄생을 돕기도 하지만, 의사와 같아 아픈 집을 낫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게는 지팡이를 깎아 주고, 격 없는 기생집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주고, 비루한 객에게는 밥 한 끼 대접해야 한다. 인색한 상인 집에는 마루를 만들어 주며, 남루한 집은 미장보다 지붕을 고쳐 주고, 조화가 깨진 집은 담을 쌓아 주어야 한다. 자식을 가르쳐 용부를 돕고, 올곧은 뼈대를 갖춘 집은 좋은 터를 잡아 이축해 주라고 했다. 혹여 그럴 수 없는 집이라면, 주인이 이미 속굉을 확인한 집이거든 정성을 다해 염습을 해주라 했다. 염장이가 되어 시충이 나오더라도 진맥하듯 시신을 닦고, 가죽같은 빈 몸, 피고름 담긴 육신이라 생각하지 말고 성심을 다해 염을 하라고 했다. 시신이 허리를 세우듯 집이 목수를 섬뜩하게 하더라도 시취에서 살아 있을 때의 사연을 맡겠다는 마음으로 습을 하라고 했다. 조각난 수장재, 부러진 보머리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화장을 하되 그 마지막 육신으로 어느 집 행랑채 한 번 따뜻하게 데울 기회를 만들어 주라고 했다. 화장이 끝나면 재는 부추 밭에 뿌리고 좋은 날을 골라 부추를 거둬 막걸리 한 잔 하되 첫 잔은 반드시 고수레를 하라 했다. 그리고 잊으라 했다. 은하수 같은 부추 꽃이 발목을 잡아도 집과의 인연은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등을 보이라 했다. 배 목수가 집을 철거할 일꾼들과 함께 마당에 들어서며 그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등에 업혀 마당을 지날 때 지붕 용마루 복문이 쓰러졌으니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툇마루에 내려놓자 비닐 덧문을 걷지 그랬냐며 나직하게 나무랐다. 마루에 앉은 그녀가 툇보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곱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집 치울 일이 걱정이라 했다. 그녀는 때가 되면 참나무 껍질을 벗겨 굴피담을 보수했고, 그 곁에 인동과 나팔꽃을 심었다. 마루는 마른걸레만으로 검은 윤을 냈고 아침마다 마당 비질을 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는 흙을 이겨 마당들이기를 했다. 좋은 흙을 따로 선별해 바람벽 틈을 메웠고 남은 흙으로 부뚜막과 한데부엌을 보수했다. 그녀가 집이었고 집이 곧 그녀였다. 개숫물도 마당에 함부로 쏟는 일이 없었다. 윗물은 다시 썼고 아랫물은 거름에 더했다. 바람이 불면 처마 끝에 매단 시래기를 뒤집었고, 구름이 들면 수채를 확인했다. 겨울이 오기 전 마루에 덧문을 달았고, 봄이 되면 걷었다. 같은 날 세살문에 창호지를 발랐다.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포개 넣었다. 외양간 옆에는 손수 막을 짓고 토끼를 키웠다. 토끼가 새끼를 보면 동물도 사람도 주변 왕래를 금했다. 개가 해산을 하면 왼새끼로 꼰 금줄을 대문에 치고 돌아와 어미 개 곁에 앉아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다. 곧 미역국을 끓여 오래 쓴 해산 바가지에 담아 어미 개에게 먹였다. 삼칠일이 지나면 금줄을 걷었고 그때서야 강아지를 안았다. 마당은 암탉과 그 새끼들의 터전이었는데 평화롭게 노니는 병아리를 좋아해 고양이만은 키우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사는 것들을 죽여 양식으로 삼는 일이 없었다. 가축은 그저 키우는 것이었을 뿐 그 숨과 몸을 거두어 먹이로 삼지 않았다. 마당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장날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 오겠다고 하자, 그녀가 이제……괜찮다……고 답했다.

기단에 서서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 창호지가 드문드문 삭았으나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툇마루에 올라 안방 문 앞에 서자 무너진 외양간을 살펴보던 배 목수가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으나 힘이 맥없이 풀렸다. 추레하게 서 있으니 배 목수가 다가왔다. 배 목수가 안방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을 슬며시 놓게 헸다. 대목수가 집과 나무 기세에 눌리거나 장척이 부러지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배웠다. 집 기세에 눌린 목수는 드잡이를 멈추고, 나무 기세를 이기지 못한 먹잡이는 먹통을 잠시 놓아야 하며, 장척이 부러진 도편수는 현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배웠다. 오늘은 목수로 온 것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배 목수가 안방 옆 마루방 문을 열고는 그를 살짝 끌어 안방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마루방은 연등천장이라 서까래와 대들보가 곧바로 보였다. 필요한 곳만 적당하게 다듬은 대들보였다. 옛 목수가 남겨 놓은 치장먹줄이 선명했다. 도리와 도리, 인방과 인방 사이에 많은 시렁이 걸려 있었다. 채반을 걸어 누에를 키우고 꽃 열매와 뿌리를 말리던 시렁이었다. 칸 전체 바닥에 깔린 마루청판은 틈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마루 막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냄새가 났다. 집도 사람도 육신의 허물을 벗을 때는 냄새가 나는 법.

 

상처에서 진물과 피고름, 냄새가 계속 흘렀다. 거즈를 떼면 살점이 묻어 나왔다. 죽은 살이 죽어 가는 살을 부여잡았다. 붕대를 동여맬 수 없었다. 이팝나무 꽃잎 같은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여간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욕창이 위험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니, 이 방 바닥에 어떻게 냄새와 얼룩을 남기겠냐고 했다. 때가 되면 그녀는 껍질이 연한 솔방울을 구해왔다. 그것들을 방바닥에 촘촘히 깔고 오래 불을 때 바닥에 송진을 먹였다. 송진 위에 은행잎을 곱게 갈아 뿌리고 굳기를 기다렸다. 그 과정을 몇 번쯤 반복했고 마지막엔 바닥을 사발로 밀고 마른걸레로 문질러 윤을 냈다. 송진 향은 방 안에 오래 머물렀고, 은행잎은 벌레를 막았다. 그 온화하고 담박한 방에서 그녀는 그를 팔베개로 재웠다. 그녀를 위해 의료용 중고 침대를 사 왔다. 침대 시트를 갈 때마다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감싸 안았다. 그는 그를 위해 시트를 자주 갈았다.

배 목수가 일을 시작하자며 일꾼들에게 마당의 잡목이며 풀부터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마루방 문을 열어 놓고 기단으로 내려와 집 왼편을 돌아 뒤뜰로 갔다. 풀과 잡목으로 뒤덮인 뒤뜰은 버덩과 다름없었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낫을 받아와 길을 냈다. 장독대의 항아리, 뒤뜰 툇마루, 작두샘 손잡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버선본을 뒤집어 햇빛을 되쏘아 노래기와 지네를 쫓았던 장독대엔 개망초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새벽녘 잠이 깨 소쩍새 소리를 들었을 뒤안 툇마루에는 동바리만 남아 있었고, 손잡이는 사라지고 몸만 남은 작두샘은 이제 그만 쓰러지고 싶은 듯했다. 사라진 것들은 고물상을 통해 도시 어딘가로 팔려 나갔을 것이다. 초봄엔 머위를, 늦봄엔 죽순을 거두었던 대숲은 어지러웠고, 대숲과 채전 사이 굴뚝은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었다. 굴뚝에 올라 담쟁이넝쿨을 걷어내는 배 목수를 향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배 목수는 비록 무너뜨리더라도 굴뚝을 이렇게 놔 둘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아궁이가 입이고 구들이 자궁이라면 굴뚝은 여근이나 유두쯤 된다. 아이를 낳는 여근인 탓에 묵은 집이라 하더라도 산월에는 구들이나 굴뚝을 수리하지 않았다. 난산일 때 지아비는 굴뚝 덮개를 열고 키로 부치고 시어머니는 치성을 드리라 조언했다. 온 집안사람이 산모를 위해 굴뚝에 모여 마음을 쏟으라 말해 주곤 했다. 넝쿨을 제거한 배 목수가 조심스럽게 굴뚝을 내려왔다.

삽화=정윤성 기자
삽화=정윤성 기자

목욕이 어려워 그녀의 몸을 자주 닦아 주었다. 손가락에 눌렸던 살이 다시 회복되는데 오래 걸렸다. 핏기 없는 피부라 저승꽃이 선명했고 겨드랑이를 닦아도 간지러워하지 않았다. 쪼그라진 젖을 닦을 때면 고개를 돌렸고 사타구니를 닦을 때면 몸을 비틀었다. 그럴 때면 계모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여기에서 내가 태어났고 이 젖으로 나를 키우지 않았냐고 말했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그를 낳고 며칠 후 먹은 매운 김치 탓에 갓난애 입이 불켰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젖을 땔 때까지 그녀는 김치뿐만 아니라 생선이나 맵고 짠 것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무얼 먹고 살았느냐 하니 조용하던 그녀가 봄 산엔 찔레도 있고, 진달래도 있고……. 꽃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꽃으로 그를 키웠고 그녀가 살았다고 했다. 산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에게 젖을 먹이기 전 매번 몸을 씻었다. 꽃을 만진 손으로 아이 입에 젖을 물리기 싫었다. 늘 작두샘에서 냉수를 퍼 올려 몸에 쏟고 뒤뜰 툇마루에 앉아 젖을 먹였다. 배가 고파도, 한기가 들어도 냉수 쏟는 일이 먼저였다. 그는 물수건을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 그녀의 몸을 닦았다.

집 주변을 정리한 일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배 목수가 주변 정리가 끝났으니 고유제와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안방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곧 트럭에서 음식을 가져와 기단 위에 펼쳤다. 배 목수 아내가 준비해 준 음식들은 풍성하고 정갈했다. 준비를 마친 배 목수가 안방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집에 손을 댈 수는 없으니 더 늦기 전에 들여다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툇마루에 올라가 안방 문고리를 잡았다. 배목수와 일꾼들도 툇마루에 올라섰다. 배 목수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꾼들과 함께 기단 아래 마당으로 내려갔다. 담배를 물고 먼 산을 보고 있었지만 배 목수 마음은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 묶여 있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문에 매달린 그의 모습을 배 목수가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를 도우려 걸음을 옮기는 일꾼을 배 목수가 잡았다. 곧 문이 열리고 그가 안방을 들여다보다가 문설주에 손을 기댔다. 일꾼들이 기단에 올라 안방은 바라보았다.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 구들 고래를 구덩이 삼아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굄돌과 구들장을 쌓은 뒤 재와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묵은 무덤이 드러났다. 일꾼들이 수런거렸다. 누군가가 집이 상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헐거워진 고막이벽으로 바람이 들어와 봉분의 흙이 개자리로 쓸렸다. 쌓은 구들장과 굄돌이 언뜻언뜻 보였다. 집의 자궁인 고래와 구들이 무덤 노릇을 했지만 따뜻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았다. 산 자의 죽어 가는 집이 죽은 자의 살아 있는 집을 덮고 있었다. 어둡고 답답했을 것만 같았다. 안방의 온기를 기억하는 무덤 주인에게 그늘진 무덤은 형벌과 같았을 것이다. 배 목수가 마루로 올라와 배목걸쇠를 풀고 안방을 훤히 열었다. 습기와 냉기가 한숨처럼 마루로 쏟아졌다.

그녀를 위해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그녀의 감각이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억은 뒤섞였고 시간은 토막 났다. 상처가 간지러우니 새살이 돋는가보다고 말했다. 바람에서 비 냄새가 난다고 했다. 먼 곳에서 오래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을 먹이게 교복을 벗으라 했다. 새 운동화를 사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작설 같은 손톱을 깎아 주었던 아침을 그리워했고, 품앗이에서 남겨 온 사탕이 늘 녹아 서운했다고 했다. 남편이 죽었던 새벽에 함박눈이 내렸다고 했다. 그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는지 들이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다녀오는 시간은 멀었고 공간은 넓어 불분명했다. 진통제 양을 줄이자 그녀의 감각이 살아났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헛구역질을 했다. 감정과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동공이 확대되었다. 동짓달 홑적삼만 입은 듯 몸을 떨었다. 매순간 모진 고통이 그녀 몸속에 머물렀다. 다시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진통제가 빠르게 소모되었다.

 

배 목수가 고유제를 지내며 성주신을 시작으로 가신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배웅했다. 따로 상을 차려 무덤 주인을 위한 제를 지냈다. 주춧돌과 무덤에 술을 뿌렸고 음식을 땅에 묻었다. 종이를 태워 토지신에게 매지권을 환매하며 고유제를 마쳤다. 남은 음식을 일꾼들과 나눠 먹고 일을 시작했다. 배 목수가 집을 짓는 역순대로 하부 벽을 해체하고 수장재부터 분리하자고 했다. 지붕이 위태로워 상부 구조 먼저 해체하고 하부 구조로 내려오자고 했다. 배 목수가 수긍하며 일꾼 먼저 지붕에 올라 복문으로 사용된 수키와 두 장을 들고 내려왔다. 수키와 표면에 무명천 자국이 선명했다. 일꾼들이 기와를 해체해 마당으로 내리면 배 목수가 집 주변 경계에 쌓았다. 그는 목재에 주기를 먹였다. 정면을 기준으로 기둥에 번호를 썼고, 기둥 번호를 기준으로 부재와 수장재에 이름과 번호를 기록했다. 배 목수가 옮길 집이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물었다. 그가 목재들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 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기와를 모두 내리니 보토와 앙토 등 집의 속살이 온전히 드러났다. 모난 괭이로 살을 걷어내는 세골을 시작했다. 홍진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일꾼들이 세골한 흙을 아래로 떨구었다. 안방 상부 고미반자가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흙과 함께 밝은 빛이 무덤으로 쏟아졌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그에게 먼 곳의 소리처럼 들렸다. 뼈를 드러낸 서까래에는 철물이 귀했던 시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침과 연침 구멍이었다. 서까래에 구멍을 뚫고 싸리나무 연침으로 꿸대를 꽂아 모든 서까래를 한 몸으로 연결했다. 그가 연침을 낫으로 잘랐다. 집을 이루던 음양의 첫 고리가 풀렸다. 집을 이루던 목재들의 교감은 단절되었고, 나무의 교접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급히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진통제 때문이냐고 묻고는 이제 그만 서방님 곁으로 떠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손등을 덮었고, 곧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들이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들어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잠시 후 그녀가 그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손을 거두어 갔다. 두 손끝이 떨어지는 찰나는 길고 느렸다. 그녀가 거둔 손으로 안방 벽장을 가리켰다. 벽장 안쪽 오른쪽 끝 벽지를 걷어내면 고미반자 위 고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물 구석에 짚으로 덮어놓은 도자기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도자기에는 아편이 들어 있었다. 홀로되어 유복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 이 아편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집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 이 꽃, 앵속 때문이라고 했다. 늦봄이 되면 그녀는 그를 포대기로 엎고 산으로 향했다. 노을을 등지고 몰래 심어 놓은 꽃을 찾아다녔다. 뒤뜰 대나무를 잘라 죽침을 만들어 양귀비 열매에 침을 놓으면 침선을 따라 하얀 진이 베어 나왔다. 양귀비 유두에서 배어 나오는 그 젖으로 그녀와 그가 살았다. 그 젖을 엿처럼 고아 도자기에 보관했다. 날품을 팔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끼니를 그것을 팔아 해결했다. 복통과 하리를 앓는 사람에게는 열매를, 해열제를 찾는 사람에게 뿌리를 주었다. 양지가 아닌 방안 그늘에서 말린 것이라 사름들은 제값을 치르지 않았다. 해수를 다스리고 염폐에 쓰려는 사람은 적은 양의 아편을 사갔지만, 눈이 이미 초점을 잃은 사람들은 많은 양을 사 갔다. 그녀는 양귀비를 심고 아편을 거두는 것보다 그것을 사러 오는 사람이 더 두려웠다. 두 목숨을 연명할 논과 밭을 마련한 후로 그녀는 더 이상 꽃을 키우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를 위해 얼마의 아편을 남겨 놓았다. 그녀가 그 남은 아편을 뜨거운 물에 개어 달라고 했다.

강다리로 연결된 추녀를 내리고 종도리를 분리했다. 동자주를 내리고 대들보 위에 올라섰다. 바람벽을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목재와 이격된 벽을 진흙으로 발랐다. 흙을 바른 자리에 손가락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리를 타고 그곳으로 건너갔다. 엉겅퀴 같은 손가락이 지나간 길을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따라갔다. 두 손끝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잠시 겹쳤다. 기둥이 사개맞춤으로 똬리를 틀어 수평 부재를 떠받쳤다. 도리는 주먹장으로 결구되었고, 툇보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목돼 대들보 밑에서 부재들과 결합돼 있었다. 충량도 마찬가지였다. 충량과 툇보 뒤는 대들보 무게로 눌렀고, 앞은 처마도리와 서까래로 눌러 움직일 수 없었다. 단단히 맞춤된 집이었다. 목재들을 분리하기가, 인연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힘들게 연장을 넣어 부재들의 오래된 맞춤과 이음을 풀었다. 연장을 움직일 때마다 집에서 슬픈 소리가 났다. 집이 아파하는 듯 했다. 받을장과 덮을장을 구분해 도리를 기둥으로부터 분리했다. 드러난 대들보 목이 얇았다. 대들보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배 목수가 상량문이 있는 것 같다며 그를 불렀다. 마룻대 상부 종도리와 맞닿은 부분에 홈을 파고 상량문을 넣은 뒤 정교하게 조각한 덮개로 덮었다. 덮개를 열고 상량문을 꺼냈다. 숭정으로 시작하는 상량문에는 초석을 놓은 안초일, 기둥을 세운 입주일, 마룻대를 올린 상량일을 기록했고 끝에는 상량 사주를 부기했다. 안초일은 집이 잉태된 날이고, 입주일은 뼈가 생긴 날이며 상량일은 집이 생명을 얻은 날이다. 그가 상량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의 영혼을 그가 거두었다.

그녀가 방이 싸늘하니 군불을 때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솔가리와 마른 섶을 불쏘시게 삼아 아궁이를 말리고 장작을 밀어 넣어 방을 따뜻하게 했다. 솥을 씻어 물을 앉히고 돌아오니 그녀가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다리가 없어 북망산에 오르기 힘드니 아무래도 서방님이 마중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가 좋겠다고 했다. 보자기에 싸인 색이 바랜 한복을 꺼내 그녀에게 입혔다.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두 팔이 그의 목을 오래 감싸 안았다. 그녀가 침대를 치우고 방바닥에 눕혀 달라고 했다. 누운 그녀가 방바닥을 손으로 쓸며 아편이 담긴 도자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럴 수 없다고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픔을 덜어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단단하게 굳은 아편에 물을 조금 붓고 솥 안에서 중탕을 했다. 잘 녹지 않았다. 놋숟가락을 집어 천천히 아편을 저었다.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자기를 꺼내 마당에 던져 깨뜨리고 싶었지만, 아편을 녹이는 손이 멈춰지지 않았다. 안방과 부엌 사이 눈꼽재기창 너머에서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러 말들이 오고갔으나 남은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아편 물을 마셨다. 말끔히 마시고 고개를 숙여 목젖을 막았다. 편안하고 간결한 죽음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그녀는 마디 없는 소리로 아픔을 표현했다. 몸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소리를 그는 마루에 앉아 들었다. 밤새 소쩍새가 울며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갔다.

보머리를 들어 올려 결구를 헐겁게 했다. 한쪽은 배 목수가, 한쪽은 그가 주축이 되어 대들보를 들어 올렸다. 기둥으로부터 대들보를 분리하고 상인방 위에 올린 뒤 한쪽씩 바닥으로 내렸다. 대들보가 내려오자 집 내부 공간과 하늘이 하나가 되었다. 공간이 사라지며 망자의 무덤을 억눌렀던 질곡의 사슬이 풀렸다. 도리와 보아지 장여를 수거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 인방재를 분리했다. 상부 인방재를 들어 올리고 벽체와 인방재를 이격시킨 후 벽을 밀었다. 벽이, 집의 살들이 먼지와 함께 땅으로 되돌아갔다. 마지막 기둥을 수거했다. 집을 지탱했던 기둥을 주춧돌로부터 분리했다. 십반먹이 드러나며 주춧돌도 더 이상 생명의 씨앗이 되지 못했다. 기둥이 사라지자 집이 소멸되었다. 삶의 행복과 고통, 열망과 분노, 희열과 애증, 희망과 좌절을 담았던 집이 사라졌다. 집과 관련된 인연도 사연도 삶도 멸각되었다. 아니 더 넓은 곳으로 연하게 퍼져 나갔다. 해체된 집의 모든 뼈들을 마당 가운데에 얼기설기 쌓아 놓고 일꾼들을 보냈다. 배 목수와 그가 마지막 집, 무덤 개장을 시작했다.

 

그가 세한의 나무처럼 떨던 몸을 멈추고 마루에서 일어나 안방 문을 열었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길게 뻗은 오른 손에 얼굴을 얹고 그녀가 죽어 있었다. 안방도 그녀의 몸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가 그녀의 웅크린 몸을 반듯이 펴고 팔을 구부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두둑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녀를 안아 마루방에 옮기고 안방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녀가 송진을 먹이고 윤을 낸 방바닥을 모난 괭이로 파냈다. 방통미장을 걷어내고 구장들 위의 모래와 자갈, 새침한 흙을 걷어냈다. 구들장을 들어내 한쪽에 쌓았다. 고래에 쌓인 재를 긁어내고 고래둑 일부를 무너뜨려 그녀가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를 마루방에서 안아 올렸다. 굳은 그녀의 몸은 더 이상 그를 감싸 안아주지 않았다. 그녀를 구들바닥에 눕히고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쓸어 주었다. 고래둑 위에 이맛돌과 구들장을 올려 그녀의 관을 만들었다. 염습도 보공도 없었다. 구들장과 굄돌을 가져와 쌓고 흙을 덮어 집의 자궁에 그녀의 유택을 만들었다. 그는 그 길로 집을 떠났다. 목수가 되어 자귀질을 배우고 먹통을 잡았다. 대나무 칼로 먹줄을 긋고 끌질을 했다. 산파와 의사, 염장이 노릇을 하며 멀리로 멀리로 맴돌았다.

삽화=정윤성 기자
삽화=정윤성 기자

고미반자 잔해를 걷어내고 무덤을 개장했다. 봉분을 이루었던 흙과 구들장, 굄돌을 걷어내고 배 목수가 관 덮개로 쓰인 이맛돌과 구들장을 들어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는 삭아 없어지고 그녀의 웅크린 유골만 남아 있었다. 길게 뻗은 팔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유골의 어두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배 목수가 말없이 유골을 수습했다. 유골은 여전히 한쪽 다리가 없었고 살이 잘 삭아 세골이 필요 없었다. 그녀를 하얀 종이에 싸서 함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가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마당으로 갔다. 쌓아 놓은 집의 유골들 사이에 그녀의 유골함을 앉혔다. 유골함 위에 상량문을 올리고 주머니에서 놋숟가락을 꺼내 눌렀다. 배 목수가 바닥에 깔린 솔가리와 마른 섶에 불을 붙였다. 집과 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을에 닿을 듯 집들은 무섭게 타올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가 불꽃 끝 먼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하얀 재가 그의 어깨 위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황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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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1-01-08 05:45:50
올해 신춘 최고의 단편이었습니다.

이해욱 2021-01-01 05:40:23
글이 눈에서 떼어지질 않네요...글 속에 내가되어 감명깊게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하고 축하드립니다.

김성미 2020-12-31 20:51:47
좋은글입니다~~^^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