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2-20 23:33 (수)
유료화된 경기전
유료화된 경기전
  • 조상진
  • 승인 2012.06.04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조경묘와 경기전, 오목대·이목대 등이 그곳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은 태종 때인 1410년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졌다. 이 어진은 서울을 비롯 경주 평양 개경 영흥 등 6곳에 봉안되었으나 전주본만 유일하게 남았다.

처음 명칭은 어용전(御容殿)이었으며 경기전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세종 때인 1442년이었다. 경기전에는 어진 말고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신만고 끝에 유일하게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이 두 문화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동학혁명, 일제 등 숱한 고난을 딛고 600년의 세월을 건넜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 유림 등 지역민들이 이들을 지키기 위한 수고가 무척 컸다. 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고, 태조 어진은 보물 제931호(1872년 모사본)에서 국보로 승격돼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재 모습의 경기전은 정유재란때 불에 타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인 1614년 중건한 것이다.

이같은 역사를 지닌 경기전이 6월 1일부터 유료화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적 명소인 이곳이 입장료를 받게 된 것이다. 유료화 문제는 그 동안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 찬성측은 경기전이 가진 문화재적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고 보다 나은 관람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유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료 개방을 계속할 경우 무분별한 출입으로 질서 유지가 곤란하고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다는 점도 들었다. 반면 반대측은 경기전이 오랫동안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했고 별달리 볼만한 것도 없다는 주장을 폈다. 한 해 400만 명이 찾는 한옥마을 관람객들의 필수 방문코스인데 자칫 부정적 이미지를 낳는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전주시는 여론조사와 공청회, 조례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입장료 징수에 들어갔다. 이제 꽁짜로 드나들던 옛 경기전이 아니다. 그런 만큼 그에 걸맞는 안전한 보전관리와 쾌적한 환경,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 보여야 할 것이다. 전통문화중심도시의 상징적 문화자산인 경기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