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경계석에 '중국 조선족'으로 국적 바꿔 / 대표작 '서시'도 한자로 번역한 조형물 설치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시 명동촌에 위치한 민족저항시인 윤동주 생가가 중국 측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동북쪽 변경지역 역사의 중국 역사화 작업) 작업으로 본면목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생가 입구에는 엄청난 크기의 석조 간판이 세워져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중국인 글씨의 한글과 한자가 병기돼 있는가 하면, 마당에 설치된 수십개의 시 조형물들은 한자로 번역해 새겨진 시비(詩碑)로 난립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일 전주 기전대 방문단(연변 고교생 윤동주 시 낭송대회 심사단)과 함께 윤동주 생가를 방문한 결과 지난해와는 크게 달라진 생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허름한 대문안에 복원된 교회와 생가, 보조건물 등이 전부였다는 게 기전대 방문단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 결과 엄청난 크기의 석조 대문이 신축돼 있었으며,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대문 경계석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선명한 글씨를 새겨 놓았다.
이를 본 방문객들은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오인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아연실색하는 모습이었다.
또 지난해까지 흙바닥이었던 마당에는 새롭게 정원을 꾸며놨으나 잡초가 무성해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으며 국적불명의 조잡한 정자가 정원 한복판에 세워져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원마당에는 석재와 철구조물 등 수십개의 각종 시 조형물이 설치돼 있지만, 상당수가 한자로 새겨져 있었고, 한글로 된 조형물에도 어김없이 한자로 번역해 놓았다. 생가 옆에 자리했던 방명게시판은 문익환목사 등 방문객들의 친필 흔적이 지워지고 빈 칸으로 남아 있었다.
또 생가 맞은편에는 전시관이 신축되고 있는 등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윤동주 생가는 지난 81년 폭우로 무너진 것을 94년 연변대에서 5000여㎡의 부지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주기전대 여영규교수는 "이같은 변화는 최근에 이뤄진 듯하다"면서 "그러나 생가정비사업이 매우 조잡하고 중국측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실제 확인한 결과 생가관리를 맡고 있는 용정시 당국이 최근 대대적인 정비공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가입구 석조대문을 보고 통탄을 금치 못한 윤형주 기전대 이사(윤동주시인 육촌동생. 가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여기까지 미쳤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면서 "여기에 오면 윤동주시인이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분개해 했다.
윤 이사는 그러나 "중국땅에서 중국인이 생가를 관리하는 대목이라 난감하다"면서 "윤동주시인 기념사업회 등과 상의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유석춘 이사(연세대 교수)도 "윤동주는 한용운과 이육사 등과 더불어 일제시대 3대 민족 저항시인이며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승화시킨 우리민족의 시인임을 거부할 수 없다"면서 "어물쩍 중국인을 만들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하다"고 설명했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에 옥중에서 요절했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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