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들은 대개 ‘독립기념일’이나 ‘통일의 날’ ‘정부수립일’을 국경일로 정하지만 프랑스는 ‘혁명의 날’을 공식 국경일로 삼고 있다. 바스티유 요새를 탈취한 1789년 7월14일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된 최초의 혁명의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프랑스는 전국이 축제의 물결로 뒤덮인다.
하지만 7월14일을 국가적인 기념일로 정하기까지 정치세력들 사이에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바스티유 함락’과 ‘봉건제 폐지 선언’, ‘대연맹제’ ‘파리 민중봉기’ ‘공화국 선포’ ‘루이 16세 처형’ 등 각각의 상징일을 놓고 대립이 지속됐다. 그러던 끝에 국민화합 마당인 ‘대연맹제’ 개최일이 바스티유 함락과 겹쳐 7월14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갑오년인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발생 1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그러나 우리는 기념일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단체와 학계, 자치단체 간 이해가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놓고 논의했지만 오히려 간극만 확인했다. 이젠 기념일 제정 문제를 아예 뒷방에 처박아 둘 셈이다. 올해 기념행사 추진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 이유다. 김대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은 “기념일 제정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혁명의 정신과 실천력 계승, 세계화 등이 숙제다. 프랑스 시민혁명, 독일 농민혁명, 중국태평천국의 난과 함께 세계 근대 4대 시민혁명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할 때 비로소 혁명 120주년을 맞는 의미도 확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다. 혁명 120주년 기념행사 예산이 고작 2억 원이다. 처음엔 1억 원 계상됐던 것이 국회 심의때 7억 원으로 늘어났다가 기획재정부가 싹둑 잘라낸 뒤 1억 원만 추가 증액시켜 2억 원이 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데 예산을 많이 줄 수 없다”는 기재부의 언성이 생생하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있다면 이런 하대는 받지 않을 것이다. VIP초청도 언감생심이다. 가을 기념행사도 전북이 아닌 서울에서 연다고 한다.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자 탄생지이고 전승지이며 선양지이다. 전국적인 축제는 고사하고 자꾸 쪼그라드는 것 같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 혁명 120주년인 올해 기념일을 제정해야 옳다. 올해는 넘기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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