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120년전 들불처럼 번졌던 동학농민혁명때 농민군은 호남지방의 각 군·현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했다.
고을의 치안 유지와 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집강소는 한시적이기는 했지만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폐정개혁의 실시를 지향한 지방 자치기구로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동학혁명의 중심지였던 김제 원평에는 당시 민간에 설치된 집강소 자리로는 유일한 원평집강소가 남아 있다. 이 원평집강소는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혁명군의 수뇌부가 머물면서 호령했던 곳으로 인간평등과 반외세·주권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동민혁명의 정신과 가치면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동학혁명의 유적지인 원평집강소는 소홀한 관리로 장마철 큰 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동학혁명 2주갑을 맞아 그 역사와 정신을 일깨우는 기념사업과 재조명 작업을 퇴색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보 동학혁명 기획취재팀은 지난 3월 중순 심하게 훼손된 원평집강소의 관리소홀 문제를 짚었다. 그 뒤 전북도는 원평집강소를 비롯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12건과 유물 3건 등 모두 15건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 또는 국가나 도 문화재로 신규지정해 보존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획취재팀이 최근 원평집강소를 다시 점검한 결과 대청 처마 부분 절반 가량이 흙의 무게를 이지기 못하고 무너져 있고 처마 위에 있던 기와도 무너진 틈 사이로 끼어 살짝만 건드려도 쏟아져 내리는등 붕괴직전의 폐가나 다름없었다.
시급히 보호대책이 취해졌어야 마땅함에도 계속 방치해 이 꼴을 초래한 것이다. 보다 못해 민간이 나서 응급 보존 조치 의사를 밝히고 있는 형국이다. 붕괴 위험성을 인지했으면서도 “등록문화재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예산집행에 소극적인 모습을 드러내다 민간에서 보수 의사를 표명하자 턱없이 부족한 보수예산을 책정한 김제시의 처사는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문화재 원형이 훼손되고 사라진뒤 보호조치에 나서는 것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붕괴속도를 고려하면 큰 비가 오거나 강우가 지속될 경우 원평집강소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자치단체에서 문화재 등록전이라도 당장 적정한 예산을 집행해 근본적 보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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