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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街人) 정신
가인(街人) 정신
  • 이경재
  • 승인 2014.09.3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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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는 절제와 청빈의 표상이었다. 유명한 일화가 많다.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을 참다 못한 한 판사가 사표를 들고 대법원장을 찾았다. 그에게 돌아온 대법원장의 말. “나도 죽을 먹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 그 판사는 부끄러워 사표를 집어 넣어야 했다. 다른 관청은 외제차를 쓰는데 우리만 나쁜 국산을 쓰니 누가 알아주느냐는 불만에는 “나라 찾은지 얼마나 됐다고…국록을 먹는 우리 아니면 누가 우리산업을 키워주느냐”는 호통이 떨어졌다. 비싼 양복 대신 두루마기를 입었고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손잡이가 부러져 반 토막이 난 도장을 대법원장 재임 9년3개월 동안이나 사용했다.

가인은 또 불의에 대항하는 상징이었다. 이승만 정부의 사사오입 개헌을 비판했고 눈엣가시로 여긴 이 대통령이 사표를 요구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대차게 응수했다. 독립운동과 무료변론, 서슬 퍼런 독재권력에 맞서 사법부 기틀을 세운 이가 바로 순창 출신의 가인 김병로다.

전북은 가인 김병로와 ‘검찰의 양심’ 최대교(익산) 전 서울고검장, ‘사도 법관’ 김홍섭(김제) 전 서울고법원장 등 ‘법조 3성’을 배출했다. YS-고건 총리 시절, 전주지방법원장에 부임한 경북 봉화출신의 강철구 법원장이 “전북은 법조 성지로 알려져 있는데 비석 하나 없더라”고 가시돋힌 지적을 했다. 그러자 고건 총리한테 편지를 보내 3억 지원을 요청했고 고 총리는 내무부에 지시해 당시 이승우 교부세 과장(군장대 총장)이 지역개발비 명목으로 이 돈을 전주시에 보냈다. 각 분야 인사로 동상건립추진위가 구성되고, 언론인 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이 공동 상임대표를 맡아 추진했다.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진 ‘법조 3성’의 동상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마침내 ‘가인 기념관’이 건립된다. 전북 법조인들이 ‘법조 3성’을 기리기 위해 전주 만성지구 법조타운에 세우기로 했다. 한데 더 중요한 건 법조인들의 ‘가인 정신’ 실천이다. 벤츠 검사, 막말 판사, 정권 눈치보기 등으로 국민신뢰가 떨어져 있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1957년 12월 퇴임사). 가인의 꾸짖는 소리는 쩌렁쩌렁한데 현실은 화답할 줄을 모른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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