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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안 돼도 괜찮아
'용' 안 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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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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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독식의 시스템보다 노력·능력통해 성공하는 사회 구조 만드는게 우선
▲ 공현 청소년 인권운동가
요즘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말 중에 “개천에서 용이 못 난다.”라는 얘기가 있다. “용 난다는 개천은 시궁창 돼”라고 제목을 단 신문기사도 본 적이 있다. 거기 담긴 문제의식은 요컨대 더 이상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계급상승을 이룰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소위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 교육과 입시에서부터 잘 사는 가정이 더 유리하고, 소득은 양극화되며, 부동산 등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더 쉽게 이득을 보는 현실을 볼 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과연 어땠을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좀 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가고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분명 ‘용이 못 된’ 많은 이들이 있었으리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은 괜찮았던 것일까. 모두에게 원치 않아도 경쟁에 뛰어들라고 등 떠밀고 ‘등용문’을 노리는 법만 가르친 시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노력하면 개천을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정작 개천의 부조리나 열악한 상황은 고쳐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는 그 밑바탕에 일종의 능력주의를 깔고 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차별의 정당화가 자리한다. 몇몇 성공의 사례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겪을 불이익과 차별을 그들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잠자코 받아들이게 하는 근거가 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혹한 경쟁체제와 그 결과에 순응하게 한다. 경쟁교육, 학벌주의 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먼저 성적과 학벌을 물으며 자격을 따지는 것은 그 한 단면이다. 용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피해를 입는 이들이야말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과거에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다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은 것 자체가, 어쩌면 차별을 누적시켜 양극화를 만들어내고 지금 ‘개천’을 ‘시궁창’으로 만든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의 신화 자체가 현재의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개천에서의 삶 전반을 보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애초에 개천과 바다를 나누고 용이 된 자만 박수와 보상을 받는 차별과 승자독식의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출신에 상관없이 노력과 능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용’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꾸라지, 송사리, 개구리, 붕어, 메기 등 다양한 삶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 속에서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부활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도 의심스럽지만, 그건 애초에 잘못된 해결 방향이기도 하다. 복지제도이든 입시폐지이든, ‘용 안 돼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갈 방법, 그것이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일 것이다.

△공현 청소년 인권운동가는 월간지〈오늘의 교육〉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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