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4-17 00:47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아미나 루크먼 도슨 ‘프리워터’

최근 2023년 뉴베리상과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동시에 수상한 『프리워터』라는 책을 읽었다. 노예 서사를 다룬 것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흔히 흑인 노예에 대한 고전이라고 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차이가 있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 노예의 고통을 공론화하며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지폈지만,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혜의 대상이거나 인내만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프리워터』는 그 시선을 완전히 뒤집는다. 노예제라는 폭력 앞에서 ‘견디는 인간’이 아닌, 스스로 길을 내는 ‘투쟁하는 인간’의 서사를 보여준다. 소설은 노예 농장이라는 억압의 공간에서 시작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늪지 속 공동체 프리워터로 이동하며 인간 존엄의 근원을 파헤친다. 『프리워터』는 18세기 미국 남부의 습지와 깊은 숲속으로 도망간 탈주 노예 공동체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이야기로, 열두 살 소년 호머와 동생 에이다의 눈을 통해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즉, 소설은 억압의 공간인 농장과 해방의 공간인 늪지라는 두 공간을 대비시킨다. 프리워터는 뱀과 악어가 득실거리고 발이 푹푹 빠지는 위험한 늪지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자연은 노예 사냥꾼인 추격자들로부터 지켜주는 천혜의 성이다. 노예 농장은 흑인을 사람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한다. 호머에게 허락된 것은 주인의 명령을 듣는 귀와 노동하는 손과 발뿐이다. 생각이나 감정은 사치이며 가족과의 유대마저도 주인의 기분에 따라 끊어진다. 탈주를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 가족과의 단절이 요인이다. 팔려나간 어린 자식이나 남편을 바라보며 목숨을 걸고 농장을 벗어난다. 반면 깊은 늪지 속에 숨겨진 프리워터라는 공동체는 단순히 숨어 지내는 공간이 아니다. 호머가 프리워터에서 목격하는 것은 단순히 살아내는 생존만이 아니다. 프리워터에서는 지시하거나 채찍을 휘두르고 겁을 주는 사람이 없다. 오직 지시하는 것은 늪지였고, 비가 내려 땅이 젖으면 집에 가라는 뜻이고, 흙이 마르고 안개가 걷히면 일을 하라는 뜻이다. 호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해 선택하는 삶을 배운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웃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는 행동은 농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 프리워터에서 누리는 자유가 단순히 속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호머는 프리워터에서 서서히 노예로서의 사고와 행동을 지워간다. 그래서 농장에 애나라는 노예를 데리러 갔다가 붙잡힌 엄마를 구하러 공포스러운 농장으로 향한다. 프리워터에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자유를 알게 되면서 혼자만의 자유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즉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자유는 또 다른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호머가 어머니를 구출하러 가는 과정은 물리적 탈출을 넘어 정신적 해방처럼 보였다. 과거의 호머에게 농장은 도망쳐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이제 프리워터에서 얻은 용기를 품고 농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러 가는 전사인 셈이다. 이를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억압적 시스템에 대항할 힘은 결국 타자에 대한 연대와 사랑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2023년에 뉴베리상을 받은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물리적인 채찍은 마주하지 않지만 자본의 논리나 타인의 평가, 혹은 끊임없는 경쟁이라는 ‘현대판 농장’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프리워터 속에서 질문을 발견한다. 우리는 숨 가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우리만의 늪지’가 있는가? 호머가 늪지에서 발견한 것은 자유를 향한 의지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존 전략이라고 여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소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호머의 용기를 전해주고 싶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4.15 19:0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황숙 ‘보랏빛 예찬’

보랏빛을 유난히 애정하는 언니가 있다. 보라색 가방과 원피스는 물론, 머플러와 양산, 양말과 장갑까지 그녀의 일상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또한 제비꽃, 무스카리, 마편초, 라일락, 아스타, 붓꽃처럼 짙은 남보라 꽃들이나 등나무꽃, 오동꽃처럼 은은한 보라의 결을 지닌 꽃들을 즐겨 찾는다. 이제 보라색을 마주할 때마다 그 언니가 떠오르고, 자기 삶을 묵묵히 개척해 온 그녀의 묵직한 시간까지 함께 떠오르곤 한다. 얼마 전, 황숙 수필가의 《보랏빛 예찬》을 마주한 순간, 그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보랏빛의 세계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수필가 황숙은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을 ‘빨강과 파랑의 혼합으로 태어난 보라색’에 비유한다. ‘좋아서 하는 일과 책임으로 하는 일이 동아줄처럼 꼬여 이루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버거운 순간들을 참고 견디다 보면 그 끝에 쌉쏘롬하면서도 달큼한 보랏빛이 스며든다’고 말한다. 이 비유는 삶이 단순히 고통이나 기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정과 경험이 어우러져 깊어지는 과정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저자의 이러한 시선은 독자에게도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는 이유로 현재의 삶을 버겁게만 여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속에는 기꺼이 선택한 기쁨과 어쩔 수 없이 감당해 온 책임이 함께 얽혀 있다. 어쩌면 삶이란 어느 한쪽의 색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듯이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엮어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여러 대학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한글의 우수성과 한국문화의 깊이를 전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경험은 글 전반에서 단단한 사명감으로 드러난다. 특히 여러 실학자 가운데에서도 홍대용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각별하다. 홍대용의 중국 여행기인 《을병연행록》에 심취하고, 프라하의 천문시계를 마주할 때나, 슬로베니아를 여행하는 길에서도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의 흔적을 찾고 그의 업적을 기리며 이어가려는 모습에서 그 애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홍 선생의 혼천의와 나경적의 시계를 조합하고,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를 훈민정음으로 적어 첨성대 모양으로 세운다면…”이라는 저자의 상상에는, 세계적 유산인 한글에 대한 애정과 과학적 사유로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었던 실학자의 정신을 따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보랏빛 예찬》은 단순히 하나의 색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삶의 결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깊어질 수 있고, 빠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랏빛에 빗대어 조용히 일깨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보랏빛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지침서이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이며 201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했다. 최명희문학관에서 14년간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과 《나는 오늘도 괜찮다》 수필집을 발간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4.09 09:4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작가-최아현‘밍키’

『밍키』라는 책을 받아 든 순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보자기를 어깨에 두른 채 엄마의 로션 병을 들고 요술공주 ‘밍키’ 주제가를 부르며 온 집 안을 뛰어다니는 여자아이의 모습. 작가는 이야기라는 술법으로 독자를 홀려 그가 만든 세계로 초대한다. 언니의 유산으로 받게 된 돈가방에 ‘밍키’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인물의 이야기. 소유했다고 믿었으나 ‘내 것’일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표제작 「밍키」도 인상적이었지만, 유독 여운이 남았던 작품이 있다. 「대원의 소원」은 작가의 능청과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딸의 결혼식에 손잡고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해온 대원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콘서트에 처음 간 대원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공연장에 앉아 있기까지 꽤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동료 택시 기사의 딸에게 도움받아 어렵사리 팬카페에 가입하고, 공연 표도 구할 수 있게 된 대원. 내친김에 그에게 ‘예은님’의 팬으로서 주의할 점과 교양 있게 공연 관람하는 법도 전수받는다. 행복감에 젖어 콘서트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친다. 하필 딸의 결혼식과 공연 날짜가 겹친 것. 그는 딸의 결혼식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걸 모두 성공하기 위해 물샐틈없는 작전을 전개한다. 주례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주례를 맡고, 여분의 옷을 미리 챙겨놓고, 동료에게 기차 시간에 늦지 않도록 역까지 자기를 데려다줄 것을 미리 부탁해 두었다. 전주에서 용산역까지, 기차에서 내려 공연장까지 가는 방법을 시간대별로 모두 계획해 두었다. 오전 10시 결혼식과 저녁 8시 공연 사이 그는 무대 위 연주자처럼 분주하다. 대원의 투박함과 소란스러움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아내의 부재를 견디는 대원의 시간을 작가가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훼손.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의식처럼 통과해야 하는 환멸과 치욕.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의 위트로 반짝이는 소설집 같지만, 묵직하고 먹먹한 목소리가 스며있어 이야기는 힘을 갖는다. 작가는 일상의 균열과 관계의 변화에서 시작된 감정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지녔다. 『밍키』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평범하다.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우리의 이웃이거나 친구이거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일지 모를 인물들이 그의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얼핏 보면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핏줄처럼 얇고 가는 관계망 속에서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가 직조해 낸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자고 일어났더니 뿔이 생긴 「뿔 있으세요?」는 또 어떤가. 「뿔 있으세요?」에서 화자는 오빠의 결혼 상대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엉덩이, 정확하게 꼬리뼈 부근에 뿔이 난 것이다. 이 뿔 때문에 화자와 화자의 주변에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벌어진다.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었다. 종일 허리를 펴고 앉았다고 등에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당장 없앨 수도 없다면 일단 이 뿔과 사는 방법을 먼저 터득하면 될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_ 「뿔」 부분 최아현 작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에게 계속 ‘뿔’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드러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불편과 고통도 따르니 작가는 괴롭겠지만, 어쩐지 그 불편과 고통으로 인해 그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눈과 귀를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체급 차이가” 분명한 이 세계와 대적해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고 허리를 펴고 앉아 “그렇게 스스로 경험(글)을 쌓아나가면”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이 될 테니까. 요술봉을 가진 손으로, 이야기를 계속, 계속, 써주기를.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4.01 19:0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전은희‘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익산’

시골 작은 읍에서 자란 내가 처음 만난 도시는 익산이다. 한 사람만 거치면 뼛속까지 다 아는 작은 마을에서, 낯선 도시로 떠나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고등학생 시절 익산은 기대했던 만큼 다채롭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역에 내리면 파고들던 한기와 빽빽하게 짜인 일상에 도시의 풍경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니던 학교도 피해를 보았다던 익산은 거대한 폭발이 남긴 침묵의 도시처럼 보였다. 활기차다기보다는 정체되어있었고 깊이보다 건조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익산』은 내 기억과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전은희 작가는 익산을 아파트 숲 사이에 수천 년 전 청동기 시대의 집터가 있고, 쓰던 항아리로 무덤을 만든 마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익산이 인간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부드러움’과 ‘풍부함’이라는 키워드로 익산을 그리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부흥을 간절히 원했던 무왕의 꿈을 품고 있고,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낭만과 맞닿아있다. 발굴을 통해 그 웅장함을 드러낸 왕궁리 궁궐터는 비어있어 오히려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그러듯 도시 역시 아픔과 좌절의 시련을 겪는다. 만경강 변 배가 드나드는 나루였던 춘포는 일본인 지주의 농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장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둑을 막아 물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서 생산한 쌀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러한 일제의 수탈과 강압에 누구는 의병으로 또 누구는 독립운동과 만세운동으로 맞섰다. 그들의 숭고한 피와 목숨이 익산을 지켜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무심코 걷던 그 차가운 아스팔트 아래 백제의 섬세한 예술혼이 잠들어 있었고, 철길을 따라 흐르던 근현대의 아픔이 역동적인 성장의 동력이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내 기억 속에도 회색빛을 뚫고 나오던 찬란했던 순간이 있었다. 매년 봄이면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하얀 목련, 하숙집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과 나누던 따뜻한 밥 한 끼, 그리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앞두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쥐포 하나를 구워 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시간들. 그 소소하고 명랑한 순간들 덕분에 나는 외롭고 힘들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익산을 생각할 때 기차역의 차가운 공기보다 그 공기를 가르며 피어났던 하얀 목련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먼저 떠올린다. 도시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 땅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임을 이 책이 가르쳐 준 덕분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등이 있다. <책 깎는 소년>은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26 09: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이경옥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

사촌오빠가 일본에 살아 자주 여행을 갔었다. 예쁘게 빚은 과자나 인형에 눈이 현혹되었다. 고풍스러운 가게를 들어갔다가 부채에 꽂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경옥 작가의 글에 나온 ‘방구부채’였다. 모양이 둥근 단선이라는 부채를 말한다. 부채 손잡이 직경이 1cm가 조금 넘는데, 작은 곳에서 부챗살이 40개로 갈라져 있다. 한눈에도 섬세하고 정교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내 모습에 오빠가 말했다. “저 부채 마음에 들어?” “아이고, 얼마나 비싼데? 신기해서 보는 거예요. 부챗살을 어떻게 잘랐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오빠가 사줄게. 장인 만든 아주 좋은 부채니까.” 오빠는 만류하는 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줬다. 10년이 넘게 지니고 있는 부채는 비싼 가격 탓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책 속에 달래가 만들어주는 방구부채가 간절해진다. 이경옥 작가의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은 부채를 만드는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다. 마치 바람처럼 말이다. 달래는 아버지가 만드는 부채를 보고 자라난 아이다. ‘대나무는 무작정 자르면 부러지니 손목에 힘을 빼고 결을 따라가는 것’이란 가르침을 듣고 부채를 만들고자 열망한다. 서로 다른 사연과 마음을 갖은 아이들이 부채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인공 달래는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달래는 정련방장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선자장의 계략으로 달래가 공들여 만든 변죽은 타버리고 만다. 달래는 그때야 선자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했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느 결에 최고가 되려고 했던 것을 반성하고 진정한 ‘바람’을 나눠주려 결심한다. 달래의 마지막 말은 저마다 있어야 할 곳이 있음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요.”달래는 낮은 자리에서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각자 다른 곳에 있지만 함께 공동선을 이루자는 말이 묵직하게 와닿는다. 요즘 방송에 쟁점이 되는 뉴스는 최고 주목 받던 사람들이 줄줄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하나같이 겸손하지 않다. 하나같이 숨겨둔 것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난 별들의 제 평가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평생 조연을 하면서도,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최선을 다했던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에 등장인물들은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힘겨움, 꼭 해내겠다는 끈기, 남보다 낫겠다는 시기,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화해하고 함께 목표를 행해 가는 친구들을 격려해준다. 아이들은 부채를 통해 바람을 만들어 내듯 서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 함께 용기를 내고, 서로를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지금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18 19: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김신지 ‘제철행복’

좋은 음식을 한꺼번에 다 먹지 않는 것처럼 좋은 글을 만나면 서둘러 읽지 않는다. 이번에 만난 24절기를 다룬 『제철 행복』은 오래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음식과 같았다. 처음에는 봄 절기 중 곡우까지만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장 넘기다 보니 호기심이 일어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내친 김에 여름까지 읽어버렸다. 그동안 살면서 많은 글을 읽었지만 벚꽃을 이처럼 다룬 이는 처음 만났다. 대부분의 글이 벚꽃의 화사함과 눈부심을 다루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온 봄과는 다른 깊이의 봄을 보여준다. 벚꽃과 더불어 살지 않고서야 그 내밀한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하기 힘들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한 편의 장면들이 저절로 그려졌다. 어떤 이들은 꽃과 나무를 책으로 보고 머리로만 이해한다. 이런 이들과 만나면 지식은 늘지만 재미가 없다. 지식은 늘지만 자연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이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사람과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이 글을 쓴 저자는 그런 점에서 숨은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건네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그가 들려주는 생활 이야기들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문장마다 생명이 흐른다. 친구와 가벼운 농담을 하는 느낌이 들다가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자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에게 철마나 편지를 건네는 심정으로 썼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글에는 저자가 겪은 일을 독자가 함께 경험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진심이 느껴진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제목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제철’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글의 결이 고르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문장은 잔잔하지만 깊이가 있다. 다시 펼쳐보고 싶게 하고 오래 여운을 남긴다. 좋은 차를 마신 뒤 다른 것을 입에 대기 싫은 것처럼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그 여운 속에 머물고 싶게 만든다. 아직 가을과 겨울편은 읽지 않았지만 이미 내가 읽은 부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가 만났던 봄과 여름의 이야기는 내게 가을과 겨울편을 아껴 두게 만들었다. 나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기다리며 가을편을 읽을 것이고, 흰눈 펄펄 내리는 추위를 기다리며 겨울 편을 읽을 것이다. 그가 들려준 24절기의 이야기를 내 몸 구석구석 채워 넣으리라.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미루어 두었던 자연을 다시 찾아가야겠다. 자연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눈 밝은 이가 들려주는 절기 이야기처럼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계절도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11 18:4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박태건 ‘고려인 만두’

첫 작품집이 나온 지 5개월이 됐다. 막 책이 나오고 난 뒤에 무언가 한 가지 해냈다는 안도감에 숨을 고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별히 쫓는 이 없이 쫓겼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18년, 얼떨떨하게 시상식을 나오는 길에 나와 약속했다. 10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떤 벌을 받겠노라고. 다짐이 무색하게 모든 시간을 알차게 쓰지는 못했다. 때때로 방황했고, 때때로 쫓기며 애썼다. 다행히도 10년이 지나가기 전에 작품집을 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오랜만의 성취를 핑계 삼아 한참이나 마음과 정신을 놓고 시간을 보냈다. 결국, 머지않아 다시 길을 잃었다.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헷갈렸고,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잊었다. 그래서 최근에 나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일종의 5개년 계획 같은. 계획을 한창 세우던 차에 『고려인 만두』를 만났다. 긴 여행에서 만두를 실컷 먹고 돌아온 참이었다. 여행의 추억을 되짚을 수 있을까 싶어 열었던 시집에서 갖고 싶었고, 또 잊고 있던 것들을 찾았다. 박태건 시인의 시에는 지역이 있고,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다. 땅 위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다. 김제 금산사의 말사 귀신사가 있고, 흐린 날의 웅포가 있다. 우스또베에도 갔다가 군산 하제마을에도, 하동에도, 광주에도 간다. 그의 품에서 지역은 한정되지 않고 이곳저곳이 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찻잔에 전생 같은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담아 마시는 여승이 있고, 세상 누구보다 부지런한 용현 아재가 있고, 버스비 대신 시집을 내고 싶다는 시인이 있다. 여러 공간에 여러 사람의 얼굴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통에 끊임없이 이야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는 마침내 활기를 얻어서 마치 본 적 있는 상황인 양, 머릿속에서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버스비 대신 시집을 내고 싶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과 좋아하는 시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입이 근질근질한 운전사가 가로수 아래 버스를 세우고 어제의 날씨와 내일 만날 사랑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47쪽, 「첫, 시집」) “어떤 기억은 유적이 되고 어떤 울음은 닮는다 눈물로 수로를 내어 한 줌의 볍씨를 심는다 처음 보는 꽃에도 이름을 붙여 주는 휴일에는 광주 간다 나라도 집도 없는 사람들이 배회하는 거리 당신을 잃게 된다면 나는 헤엄쳐 사막을 건너야 하리 수메르 우크라 가나안 팔레스타인” (42쪽, 「당신을 잃게 된다면」) 시집을 덮고도 한참 동안 시인이 부른 땅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뉴스에는 새로 되짚어야 할 땅과 이름이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기억과 닮아 있는 울음은 반복되고, 부도덕한 침묵은 태도를 바꾸는 법이 없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시와 뉴스가 어지럽게 섞여 줄기에 매달린 알감자처럼 이야기가 딸려 나왔다. 내가 소설에 쓰려고 했던 것, 시작하려고 했던 곳이 그의 시에 있었다. 덕분에 당장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소설집<밍키>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05 09: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동화작가- 윤일호‘거의 다 왔어!

“아직 멀었어?” “거의 다 왔어!” 산에 오르면 으레 묻는 말과 이 물음에 답하는 말이다. 다 왔다고? 그러나 말과 다르게 정상은 요원하고 숨은 더 거칠어진다. 몸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 화가 치밀고 당장 포기하고 싶지만, “거의 다 왔어”라는 반복에 천근만근 발을 들어 올린다. 그렇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면 그토록 갈망했던 정상. 산꼭대기에 오르는 기적을 경험한다. 윤일호 작가의 동화 『거의 다 왔어』에도 하얀 거짓말에 속으며 지리산을 종주하는 용감무쌍한 아이들이 나온다. 행복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주인공 지호는 엄마의 막무가내 결정으로 수원에서 진안 행복초로 전학을 온다. 이 학교는 매년 고학년을 지리산 종주에 참여시키는 곳. 산악 학교도 아니고, 힘들게 지리산에 왜 오르나 싶어 지호는 불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편하게 자라서 등산을 시킨다.”라는 말에 뾰족한 마음이 솟는다. 왜 편하게 자라면 안 되고 고생을 해 봐야 하느냐, 하면서 말이다. 정말 고생해 봐야 성장하는 걸까? 고생을 모르고 자라야 나중에도 고생스럽게 살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다면 굳이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고 해서 인내심과 도전정신이 부족할까? 이런 질문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행복초 ‘킹콩샘’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고생은 자기 내면을 정면으로 바라볼 기회다. 자기 한계를 알고 그것에 부딪혔을 때 나오는 태도와 생각을 바라보며, 나란 사람을 더 잘 아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고생은 남과 다른 경험의 누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타인과 어울리는 법, 조율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그러니 고생은 단순히 힘듦이 아니라 자기를 이해하는 성장 포인트라고 말이다. 결국, 지호는 지리산 등반을 위한 준비 운동에 돌입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틈날 때마다 엄마와 걷기 연습을 하고, 킹콩샘에게 밥 짓는 법을 배운다. 연습 등반으로 운장산에 오르다가 큰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드디어 지리산에 가는 날. 지호의 걱정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작품의 시작부터 긴장이 느껴졌다. 동시에 지호가 무사히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어떤 사건이 지호를 가로막을까? 산에서 사고가 나면 어쩌지?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지호를 쫓았고, 지호와 함께 산에 올랐다. 힘에 벅찬 지호가 걸음을 멈출 때면 호흡도 함께 멈췄다. 친구들과 초콜릿바를 먹으며 쉴 때는 같이 배가 고프고 입에 침이 고였다. 너무 힘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욕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는 토닥이고 싶어졌다. 등산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호를 격려하고 위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동화는 진안 장승초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다. 작품 속 킹콩샘은 윤일호 작가 본인이다. 작가는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고생의 참 의미를 경험케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진짜 교육은 인생의 희로애락이라는 여러 경험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며 나를 둘러싼 사회를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2.25 19:5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완주, 중년 희곡’

좋은 예술 작품은 가까이에서 뜬금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완주군에 사는 중장년 열세 명이 쓴 열세 편의 희곡이 실린 『완주, 중년 희곡』(2025). 이 희곡집은 작년 9월과 10월 (재)완주문화재단 복합문화지구 누에가 진행한 중장년 인문프로그램 ‘2막학교: 인생은 아름다워’의 결과물이지만, 여느 창작집 못지않은 패기와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 창작에 나선 중장년들에게 희곡은 낯선 장르였고, 컴퓨터는 어려운 도구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23회의 정규 강의에서 희곡을 읽고 쓰며 지난 삶을 돌아보고 새 희망을 품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참가자는 구술과 수기로 이야기를 짜냈다. 멘토로 함께한 네 명의 작가와 전화와 메일, 모바일 메신저로 소통하며 작품 속 사건을 수정했고, 대사를 주고받았다. 동화·수필·시나리오로 먼저 쓴 뒤 각색하거나 다큐멘터리·라디오드라마 등을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 퇴고까지 마치고 최종 제출한 희곡은 열세 편. 대부분 20분∼30분 분량으로 짧지만, 일상에서 찾은 지혜와 성찰이 글쓴이만의 감각으로 표현돼 있다. 인생의 활력이 될 그리움과 무한한 상상도 담겼다. 이연옥의 「빨강 구두」에는 설렘을 찾아 추억을 더듬는 중년 여성들의 푸진 상념이 생생하고, 이용현의 「마라톤은 팀플레이」에는 대회에 참가한 마라토너들의 우정과 집념이 치열하다. 각각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정은아의 「나는 문제없어」와 안채령의 「담치기」는 감나무와 도마뱀을 매개로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를 펼쳐놓았다. 완주군의 역사·문화 자원도 풍성하다. 완주 출신 명창 권삼득(1771∼1841)과 완주에서 말년을 보낸 서예가 이삼만(1770∼1847)의 삶을 교차시킨 오영란의 「완주의 두 예인」과 이서면 앵곡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전을 지금의 정서에 맞게 각색한 유향덕의 「팥쥐 콩쥐」가 대표적인 예다. 김정연의 「완주 음식 유람」과 김송화의 「생강생강해」는 13개 읍면의 특산물로 걸판진 이야기 한 상을 차려놓았다. 중장년들이 제일 많이 쓴 글감은 가족이다. 박미희의 「창밖의 빛」은 중학생 아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 청소년상담센터 상담사와 대화하다 오히려 자신을 치유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주용식의 「핑계가 되지 않게」는 고등학생 아들과 갈등하다 자기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서툴렀던 부자(父子) 관계들을 깨닫는 서사가 중심을 이룬다. 이덕례의 「맞선」은 결혼에 관심 없는 딸을 두고 벌이는 부부의 티격태격과 화해를 맛깔난 대사로 들려주고, 이남례의 「울 엄마의 꽃날」은 60대 딸이 소개하는 정 많은 94세 엄마의 소소한 인생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선태백의 「10년 후에 우리는」은 크고 작은 역경을 이겨낸 후 중년에 찾아온 ‘두 번째 사랑’과의 소박하고 행복한 상상을 풀어냈다. 간질간질한 하루하루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진솔한 고백에 녹아 있다. 세상에 나온 희곡들은 ‘누구나 서툴다’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래도 도전한다’라는 명제를 실천한 패기의 결과물이다. 이 작품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여러 무대에 오르기를 바란다. 아쉬운 것은 판매용으로 제작되지 않았기에 완주·전주 지역 일부 도서관과 관공서에서만 찾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독특한 재미와 특별한 의미를 갖췄으니, 독자와 관객의 만족도는 최상일 것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2.18 18: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복영 시인-장선희 ‘조금조금 초록 벽지’

시는 왜 살아가면서 현실을 잊고 살 수는 없는가. 그것은 삶이 시적이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어쩌면 한 켠으로 대체되지 못하는 철학적 관념을 시가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과 생활을 불러들여 벌이는 시인의 사소하면서도 디테일한 소묘는 우리를 점점 시인의 삶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린 초면 입니까?”(여긴 초면입니다)처럼 당신과 나와 우리를 접목시키는 간결하고도 자연스러운 능청은 읽는 내내 지루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다. 여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벽 하나, 벽지 한 장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찾고 있는 시집이 있다.(조금조금 초록벽지. 달을 쏘다. 정선희) 어딘가 있을 벽의 구조물을 통과하면 아이들의 안쪽에 있을 꽃밭을 향해 간다. 벽은 벽과 벽지로 가로 막혀 있다. 가시적 전개로는 벽을 통과해 세상으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벽이라는 가로 막힌 상태를 오랫동안 지지 않는 들꽃으로 이미지를 변환시키며 피어있는 벽지를 사이에 두고 틈을 소환, 벌어지는 환상통을 노래한다. 벽지로 막아놓은 세상입니다 벽을 통과하면 하얀 꽃잎이 휘날립니다 웅성거림을 찾아 아이가 벽 속으로 들어가고 사람으로 매만진 저녁이 반질거립니다 아무도 아이를 찾지 못하네요 아이는 벽 밖으로 나오려다 넘어집니다 초록벽지는 또 한번 답장일까요 초록과 같이 자란 벽이 안을 밖으로 바꿉니다 반쯤 빠져나온, 벽지에서 바라본 옆모습이 들꽃 같습니다 이름을 불러 보지만 입술 밖으로 떨어지는 건 빨간 꽃잎이네요 초록벽지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숨바꼭질이 너무 재밌던 나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느라 배가 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벽지가 바래도록 자란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입니다 천장과 벽 사이 어딘가 있는 세상 찢어진 벽지를 꽃잎인 양 날려 봅니다 벽을 넘을 땐,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조금조금 초록벽지 전문」 벽이라는 경계에서 걸려 넘어지고 바깥세상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벽은 꽃잎을 끌어들여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다. 통과할 수 없는 구조물의 탈출을 감수한다. 초록 벽지의 기억을 꽃잎인 양 날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시적 주체를 이미지로 변환하여 우리에게 삶을 설득하고 불가능한 벽의 탈출을 통해 사라진 아이를 뜯어진 벽지에서 발견할 때 비로소 오래된 벽지가 아닌 우리 생이 소환되는 이유다. 벽은 더 이상 벽이 될 수 없음을 제시하며 우리의 선입견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 기억을 꺼낸다.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에서 우리는 풍성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렇게 벽지를 통해 기억을 연결하여 미래를 찾아간다. 벽이라는 일방적 가로막힘의 현실을 타파해가는 시적 이미지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살아가면서 “벽을 넘을 때”처럼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 미래를 향한 삶을 부축해 주는 이유다. 무의식적 의지가 내보이는 시어의 복귀. 아름다운 시어보다 이미지의 긍정성으로 의미로 틈입해 써 내려간 이미지는 빛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페룰라 꽃”을 불씨로 이미지를 전환시키듯 오래볼수록 꽃은 불이 붙는다는 표현은 지중해에 있는 “에게 식당”에 있고 그 꺼지지 않는 불씨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불씨가 내는 불빛은 “신전이 아니라 폐허”를 찾는 빛이다. 그럼에도 “아직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다가와 우리를 덥혀준다. 이처럼 시인이 현실 속 가득한 삶의 여정을 재밌고 유쾌하게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은 아직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제시하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복영 시인은 1997년 월간문학 등단해,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됐다. 그는 작가의 눈 시 작품상과 여순10.19평화문학상 등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아무도 없는 바깥> 외 5권과 시조집<그늘의 혼잣말을 들었다>외1권이 있다. 현재 그는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2.11 18: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황석영 ‘할매’

소설 쓰기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소설을 쓰다 보면 분명한 문장까지는 아니지만 첫 장면과 끝 장면을 정해놓고 글을 쓰게 된다. 물론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개 마음에 품었던 결말로 매듭을 짓는다. 그러므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 작가의 『할매』를 읽었다. 첫 문장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마지막 문장은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다. 긴 서사를 걷어내고 두 문장만 남겼을 때 ‘새가 날아오자 어디 갔다 인제 오냐’고 묻는 정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새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날아왔기에 인제 오냐고 묻는 것일까. 양팔 벌려 새를 반기는 화자는 다름 아닌 할매 나무다.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두 문장을 잇기 위해 육백 년의 시간을 장대하게 풀어놓는다. 짐작하듯 새에게서 나무가 태어났다. 팽나무 열매를 먹은 새가 갯벌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몸에서 싹이 돋았다. 어린 팽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점점 둥치가 굵어진다. 새와 나무는 역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하루가 백 년이거나 육백 년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작가는 새가 겨울철마다 날아들고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는 자연의 시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 세월의 주변인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승 몽각은 나무 옆에 움막집을 짓고 살다가 바다로 들어가 스스로 칠게의 먹이가 된다. 몽각이 떠난 자리에 당골네가 들어와 자식을 낳고 산다.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다. 새의 번식이나 매한가지다. 그렇게 한 집안의 가계가 몇 대를 거치는 동안 세상은 생명을 해치고 빼앗는 역사를 거듭한다. 병인박해와 동학혁명과 일제 징병으로 아까운 목숨 들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서해안 간척사업에 의해 수많은 갯벌 생물이 폐사하고, 미군 전투기의 폭음이 할매 나무를 괴롭힌다. 작품의 후반부는 그래서 주먹을 쥐고 읽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작가가 조국 러시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 장면이 있다. 로스토프 가족이 사냥에 나서는 장이었는데 자연과 러시아인의 정서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압권이었다.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할매』를 읽으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와 나무, 개똥지빠귀와 갯벌, 조개와 바다, 풀과 바람과 비와 눈과 금강과 만경강과 동진강 … 새가 팽나무와 해후하고자 수없이 명멸하며 생명을 잇는 동안에 조선의 풍광이 세밀화로 펼쳐진다. 덕분에 독자는 멀리서 망원 렌즈를 통해 탐조하듯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직관한다. 놀라운 독서의 경험이다. 사랑이 깊으면 자신이 살아가는 땅의 모든 것, 아픔과 고통마저 품어 안게 된다. 오래된 나무처럼, 작가 황석영처럼. 독서란 작가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수수께끼 같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의 퍼즐 맞추기 또한 독자의 몫이다. 유방지거 신부가 마침내 나무를 안았을 때 할매 나무는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가슴에 돌 하나가 얹어진다. 나무람과 안도가 뒤섞인 할매의 탄식은 유신부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방백이기 때문이다. 황석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군산에 이사 오자마자 팽나무를 지켜드릴 것을 서원했다고 밝혔다. 그 약속으로 『할매』가 탄생했다. 방대한 자료를 응축하여 조선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장한 역사를 아리랑 고개로 엮어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운율에 맞춰 노래하듯 읽는다. 할 일이 하나 남았다. 새만금 생태계 복원 미사가 매주 월요일에 전북도청에서 거행된다. 염두에 두어야겠다. 황보윤 소설가는 부여에서 태어나 우석대 경영행정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광암 이벽>·<신유년에 핀 꽃>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2.04 18:5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김헌수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

김헌수 시인은 한마디로 아티스트다. 창의적인 표현력이 시와 그림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첫 동시집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은 제목 하나로 매우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왠지 동시를 읽으면 비밀을 지켜야만 할 것 같다. ‘다정한 동심 곁에 기쁨 한 그루’라고 써준 시인의 사인처럼 동심의 나무 한 그루가 드디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온 아들은 볼이 붉게 물들어 무언가 한껏 들뜬 얼굴로 말했다. “엄마, 진우랑 두 손을 맞잡고 영원한 친구를 맹세하고 왔어.” 아들은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다이애나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함께 설렜었다. 어느덧 진우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결혼사진을 보여주는 아들은 어린 시절 홍조 띤 추억이 그대로 스며 나왔다. 김헌수 시인 안에는 BTS와 클리프 리차드를 넘나드는 애늙은이 같은 소녀가 있는 듯하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창적이다. 대학원 수업을 함께 받을 때 일이다. 사물을 낯설게 보는 시간이었는데 ‘곤포 사이러지’가 제시어로 나왔다. 잠깐의 주저도 없이 ‘공룡알’이라고 말했던 그녀다. 기껏 해 ‘두루마리 화장지, 마시멜로’가 나오는 마당에 공룡알은 단연코 돋보였다. ‘알바트로스’의 오랜 비행이 ‘삼십 년 노동자인 아버지’의 든든한 등으로 색칠되었다. ‘흰긴수염고래의 귀지’는 일기처럼 귓속에서 굴러 나온 말, 말, 말은 또 다른 서사를 궁금케 한다. 아이의 생각이나 성찰이 점점 커지고 넓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흰긴수염만큼이나 이력을 담은 귀지만큼이나 성장하는 것이다. ‘풍선덩굴 속 씨앗 세 알’은 세탁소 간판을 둘러 빈 곳을 채워주며 따뜻함을 전해준다. ‘세탁 있어, 세탁 있어!’ 외치는 아버지의 말이 허공에 공허한 소리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외침과 함께 구르는 것이다. ‘돌돌돌, 쏘로롱, 쿠르릅’ 소리는 오르골의 감은 태엽이 풀어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쏟아낸다. 산딸나무 꽃이 가득 피어 하얀 바람개비 같은 웃음을 뿜어주는 호숫가로 이끌어주는 동시, 호수를 닦느라 물 맥질을 하는 오리는 활기차다. 물 밖을 잠망경 끼고 보는 붕어를 떠올리며 가느다랗고 긴 다리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유리창을 닦는 소금쟁이도 함께 보인다. 사물이 보여주는 풍경이 환해진다. 반짝이는 푸른 별을 장미 넝쿨에 걸어두고 쉼 없이 세상을 궁금해하는 동심이다. 돋보기처럼 세상을 작은 것도 크게 보려고 시야를 넓혀가는 아이의 마음에서 희망을 전해준다. 이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이의 마음으로 성찰하고 무안히 낯설게 보려는 시인의 힘이 분명하다. 바로 동시의 힘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시인이 동시에 대한 열망과 애정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기에 소중한 마음이 든다. 빛나는 언어에 담긴 시인의 번뜩이는 동심의 나무가 또 심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28 18:0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이라야‘파이트’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와의 관계라는 굴레에 갇힌다. 그중에서도 부모의 사랑은 사람이 성장하는데, 필수 조건이자 심리적 요새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라야’ 작가의 청소년 소설 <파이트> 속 주인공 하람이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안식처가 아닌, 결코 정복할 수 없는 거대한 절벽과 같다. 열일곱 살 하람은 오빠가 왜 죽었는지, 엄마가 왜 자신을 외면하는지 모른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선교사인 아빠는 늘 다른 사람들을 챙기느라 바쁘고, 엄마는 딸의 존재 자체를 지운 듯 살아간다. 캄보디아의 낯선 땅에서 하람은 철저히 혼자였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작가 이라야는 그 답을 격투기에서 찾는다. 하람이에게 격투기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 순간마다 하람이를 붙들어주는 언어이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링 위에서 주먹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것, 흔들리면서도 스텝을 멈추지 않는 것. 이 행위들이 하람이의 삶 자체와 겹쳐진다. 격투기 장면들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절박한 내면의 리듬으로 읽히는 건 그 때문이다. 맞아도 버틴다는 것, 그것이 하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하람이는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거부당한 아이였다. 사랑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하람이의 발걸음은, 마치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부조리한 형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결핍의 치유가 그 결핍의 근원(가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하람이의 여정을 통해 이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마주친 이름 모를 타자들의 ‘작은 선의’다. 한국의 계절을 의식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에서 입고 왔던 얇은 옷을 입고 겨울의 차가운 기온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때 낯선 이들이 다가와 옷을 건네는 소소하지만 낯선 다정함, 그 찰나의 눈빛, 그리고 예기치 못한 손길들. 하람이는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 밖에서 비로소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지프스의 굴레’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끝없는 형벌의 과정을 견디게 하는 힘은 반드시 특별하고 거창한 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가 주지 못한 온기를, 생면부지의 타자가 내민 떨리는 손길이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상치 않은 위안을 준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흐르고 있으며, 그 통로는 때로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열린다. 결국 하람이의 ‘파이트(Fight)’가 단순히 링 위에서의 치열한 싸움만이 아니라 자신을 거부한 세계에 맞서, 타인의 선의를 동력 삼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는 생존의 몸짓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나를 구원할 사랑이 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신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타자의 눈빛과 손길을 느껴보라고. 누군가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함께 받쳐줄 소중한 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21 19:0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이희단 ‘청나일 쪽으로’

2023년 가을에 출간된 이희단의 첫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는 2025년 10월 17일부터 11월 11일까지 그림 전시로 확장되어 독자를 다시 만났다. 전시는 작가가 공동 대표로 있는 인천 남동구의 ‘인문예술공간 점’에서 열렸다. 노란버스로 알려진 ‘길 위의 화가’ 한생곤이 소설 속 이미지를 회화로 옮겼다. 이런 작업은 텍스트 예술이 소비되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하고 회화의 감각을 빌어 텍스트를 재생산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문학이 텍스트를 벗어나 문화적인 실험을 이어가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인 듯하다. 텍스트로 읽은 저자의 여러 작품 중 「페트라의 돌」은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서사가 압권이었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당시, 나는 기출문제를 풀 듯 신춘 문예나 문예지의 당선작과 기성 작가들의 단편을 분석하며 읽던 시절이었다. 낯선 타국 생활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 중에서 유독 「페트라의 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서사 공간을 완전히 고대도시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작가는 3D프린터를 이용한 돌 제작으로 능청스럽게, 문명 이전이나 이후나 인간의 감정을 돌에 새기기는 매한가지라 말했다. 작가는 인류의 손때가 묻은 돌을, 부조리의 감내를 요구하는 시지프스의 바위에 비견될 만한 고원한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작업의 시작에 소년이 있었다. 정확히는, 고대 유적지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소년이 돌기둥을 쳐서 떨어트린 돌멩이에 있었다. 인류가 경험한 오랜 기억과 감정이 바스라져 모래가 될지도 모를 원 달러짜리 돌에 축적되었다. 그 돌에서 오늘날 화자의 구원 서사가 움텄고 독자는 한없는 위안을 받았다. 표제작 「청나일 쪽으로」는 상실의 시간을 푸른빛 원두라는 이미지로 응축했다. 소설 속 나는 암과 싸우는 그녀를 뒤로하고 남편과 함께 청나일로 향한다. 그녀는 친정엄마가 사는 빌라 아래층 여자로 J라는 딸과 산다. 나는 친정아빠가 죽은 뒤 홀로 남은 엄마를 돌봐준 그녀와 가깝게 지내고 J는 나를 이모라 부르며 의지한다. 청나일에서 푸른 커피콩을 보고 싶은 것은 마음뿐 용기가 나지 않는 나에게 힘을 준 것도 그녀다.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그녀의 죽음을 듣게 된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녀의 영혼과 함께 청나일에서 만나는 정서적 경험을 한다. 그녀의 죽음이 원초적 생명력으로 대변되는 나의 욕망이 슬픔 안에 교차되면서 나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푸른빛 원두를 본다. 이국적인 풍경 안에 감정의 신파를 감추고 담담히, 그녀에 대한 애도를 인류의 기원인 나일강에 담근다. 개인의 욕망이 타자의 실존 앞에 무너지는 가슴 아픈 경험은 때로 고귀하다. 이렇듯, 형언할 수 없는 체험을 낳기 때문이다. 개인적 슬픔을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시켜 애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작가의 서술 방식이 품격 있게 진솔했다. 저자는 감정의 비약 없이 쓱싹쓱싹 읽기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 서사의 추동으로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기억이나 객관적 상관물이 빚어낸 이미지가 서사를 이끄는 방식으로 말이다. 더불어,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의 회화적 확장은 현대소설이 이미지의 예술임을 재확인시켰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랜 관조를 요구하며, 문학이 시각예술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오은숙 소설가 2020년 ‘납탄의 무게’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15 10:3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지연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언어 수로를 따라가면 지연 시인이 통과했던 시공간이자 시의 원천인 ‘소룡골’이 나타난다. 흘려보내며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빛을 마신 나비”거나 부석작에서 콩대를 태우며 “몇백 년 전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을 데우고 있”는 것으로 현존한다. 정합적이지 않은 불가역의 세계라고 의심하지만 시인의 감각이 예민하고 구체적이어서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경이와 떨림이 강력하다고 해서 현재를 부정하거나 멈출 필요가 없다. 다만 급박하게 살아가는 나를 돌려세워 시인이 정성을 다해 모셔 온 ‘사라진 것’들을 반추하면 되는 것이다. 익히 그들은 벼랑 끝이든 환대와 도약이든 우리 삶 속에 잠복해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과 죽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수평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러한 관습적 사고를 깨뜨리는 지연 시인의 사유(思惟)라고 해도 좋겠고 유한 존재의 열패감을 상쇄,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그것을 가능케 한 지연 시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무(巫) 일종의 샤먼이다. 전라(남)북도 방언과 토속적 시어들을 매개로 시인과 맺어진 인물들 ‘삶의 무늬와 서사’가 입증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코 실패 하지 않고 전진하는 시(詩), 아름답고 따뜻한 곳에 대한 회억(回憶)을 시 독서법과 이질적일듯한 ‘연역적 사고’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전반은 단순 과거지향이나 추억의 함몰이 아니다. 시인의 고향이자 ‘설화적 무대’인 임실군 청웅면 소룡골 농촌공동체가 빚은 ‘풍습과 생활 감각’은 압권이다. 그곳에서 대지와 인간, 산 자와 죽은 자는 평면의 범주를 벗어나 신화적 환상과 은유를 방편으로 멸실을 거쳐 순환하고 재탄생한다. 시간의 이격에서 오는 상실을 극복하고 지연 시인 아이덴티티에 도달하는 과정은 눈부시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풍경’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원초적 풍경이 탈각되고 육화된 현재에 이르러서 그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함을 품고 있다면 이 시집으로 달래볼 일이다. 필자 또한 지연 시인 덕분에 잊고 있었던 ‘소박하고 가난했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삶과 죽음이 이항 대립이 아닌 것처럼 혈육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미움과 원망, 사랑과 그리움이 범벅이 돼 핏속을 떠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웅숭깊은 미덕과 사랑은 복원되었으며 AI 세상을 능가하는 삶의 방식을 일깨운 소룡골, 그곳이 골육상잔의 무대였거나 약육강식 사슬에서 어쩌지 못할지라도 기꺼이 바쳐지고 동화되고 연대하는 방식의 아름다움이라니! 극에 달한 그리움을 내면화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감각으로 발산하는 시적 형상화의 유려함은 덤. 긴장과 밀도 높은 경쟁 속, 고립된 존재로서의 외로움에 휩싸여 살고 있다면 서로 연결되고 섞인, 기꺼이 나를 바칠 수 있는 ‘소룡골’로 가 보시라. 소룡골을 찾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면 “돌에 스미는 빗물”을 아주 천천히 바라보면 된다.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들이 배격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친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지연 시인이 죽은 자와 기대고 얽혔기에 죽음은 단절이나 멸망이 아니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들”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7 18:5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하기정 ‘건너가는 마음’

한 문장, 하나의 어휘에서조차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전을 통해 낯선 단어를 확인하고 작가의 생각을 탐색하느라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책을 덮는 것이 아쉬워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작가의 섬세함과 진지함이 고스란히 담긴 책은, 저자의 마음이 나에게 건너오고 다시 누군가에게 이어 달려가려는 충분조건을 지닌 것이다. 하기정 시인의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단번에 읽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멈추게 되고, 그 멈춤 속에서 독자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린다. 『건너가는 마음』의 문장들은 일상의 작은 틈에서 태어난다. 귀가 예민해지는 시간에 걷는 산책에서 얻은 삶의 단상들, 빗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사유,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망자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 시간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낯선 감각들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저자의 시선을 거치면서 삶의 본질로 확장되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결들이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중심임을 이 산문집은 잔잔하게 일깨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다. 현실과 실현, 이별과 별리, 삼삼한 삶,반절과 절반처럼 닮은 말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살피게 하고, ‘불현듯’을 ‘불 켠 듯’으로 감각하는 방식은 의미 이전에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숙성과 성숙의 차이를 조심스레 구분해 내는 문장들에서, 언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얼마나 섬세하고 정직한지 알 수 있다. 독자는 그 세심함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작가의 철학을 공유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너감’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다른 마음을 향해 가닿는 과정이며, 상처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일이고,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깊이가 있으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의 밀도를 지녔다. 작가는 주변 사물과 자연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집 앞 소나무에 집을 짓는 까치 부부를 응원하면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물난리를 피해 나무 둥지로 열을 지어 오르는 개미군단을 보면서 그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처럼 이 글에는 이해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마음,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마음, 조용히 곁을 지키는 마음이 문장 사이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글 속에서 만난 온기가 독자의 마음으로 옮겨 오기 때문이다. 『건너가는 마음』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책이다. 그 다리를 건너며 독자는 내면과 마주하고, 삶의 방향을 조용히 점검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따뜻함을 지닌 이 책은, 마음에 그늘이 내려앉을 때 다시 펼치고 싶은 산문집이다. 책을 덮은 지금도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괜찮아, 천천히 건너가도 돼.”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14년간 진행.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

  • 문학·출판
  • 기고
  • 2025.12.17 18:5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윤일호 ‘거의 다 왔어!’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는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맞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회오리처럼 갑작스럽게 몰아닥치는 운명 앞에서 허둥대며 살기 마련이다. 되돌아보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부끄러웠던 때가 떠오르고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아픈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힘을 주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내게도 힘겹고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똑바로 서게 하고 견딜 힘을 주는 추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어린 내게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은 선택의 순간에 설 때마다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딸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낸 엄마는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받침도 틀린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많이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불효했다는 자책으로 잠 못 이룬 날이 많았다. 그런데 내 꿈에 오신 아버지는 ‘괜찮다’라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내 일에 집중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윤일호 작가가 쓴 동화 『거의 다 왔어!』 는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는 행복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지호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전학 제안에 어이가 없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고 전교생이 고작 80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엄마, 아빠가 죽고 못 사는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것이다. 행복초등학교는 산악학교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산을 많이 갔다. 지호는 꼰대 어른들이 자신들이 힘들게 자랐으니 너희도 고생을 좀 하라는 것 같아 불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낄 만큼 변해간다. 지리산에 오니 평범한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논어 맹자도 아니고 뜬금없이 저절로 가르침이 생각나는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힘들게 걷다 보면 저절로 깨달음이 온다. 인간에게 경험만큼 좋은 학교는 없다. 매일 매 순간 맞닥뜨리는 위기와 절망 앞에서 직접 몸과 마음으로 깨우친 지혜는 어떤 교과서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스승이다. 요즘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겠다는 일념으로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막아서는 부모들이 있다. 실패와 좌절의 고통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정글 같은 현실에서 쉽게 넘어진다. 킹콩샘과 같은 스승이 있고, 손잡아주는 선배와 한걸음 뒤에서 바라봐주는 부모님이 함께하는 지리산 길에서, 아이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한 번 쉬면 자꾸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인사를 하게 하고 먹을거리도 나누게 하는 산이 주는 상냥함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12.10 19: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황유원 시집 ‘하얀 사슴 연못’

많은 날을 올라왔습니다. 굳은 의지는 보슬보슬 날아갔습니다. 통제사 벼슬이라도 할 것 같았던 통제력도 바닥을 쳤고요. 황유원의 『하얀 사슴 연못』을 듣고 싶습니다.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하다”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래서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켜보는 길과 최대한 잠재워보는 길을 모두 가보기로” 했다고. 잠재워본 게 이 시집이라고. 음악은 소음을 줄여 적막을 늘리는 방식이겠죠. 말이 끝나는 곳에 음악이 있겠죠. 맑은 날, 땀을 벽력같이 흘려 하루에도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지요. 이런 날은 「명동대성당」에 나오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습니다. “나는 거기 없었고/ 나는 거기 있었지만/ 내 숨소리는 아무래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음악입니다. “칸나가 잔뜩 피어나 노란 꽃머리로 통 통/ 드럼을 연주”(「리틀 드러머 보이」 부분)하면 음파는 어디로 갈까요. 언어와 리듬을 타고 뇌파로 올라오겠죠. 잔잔하게 물결치겠죠. 콩나무 잡고 거인의 구름성까지 가겠죠. 하프의 말이 들릴 때까지 잠에 들겠죠. “가슴속에 사슴 뛰는 소리 들려온다면/ 삶의 푸른 풀을 마구 뜯어내고 싶다는 뜻인데// 그렇게 사슴 다 뛰쳐나가버리고 나면// 마침내 홀로 남겨진/ 텅 빈 가슴속/ 고요”(「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부분). 풀을 들입다 먹은 사슴은 자러 갔습니다. 풀들이 오래전에 예약한 고요만 남았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네요. 잠잠히 살 뿐. “고요를 위해 굳이 입 닫을 필요 없음/ 고요가 숨 쉴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해두면/ 고요는 그냥 찾아옴/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모아/ 서로 붙여주기만 해도”(「불광동성당」 부분). 잘 말린 야생 고요의 똥으로 벽을 쌓습니다. 빈 방에 햇살이 들어오듯 고요가 오겠지요. 편히 쉬라는 말까지 아낄 필요는 없겠지요.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별들은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늘 무언가를 들려줍니다. 우주가 진공 상태라 들리지 않을 뿐이죠. 그런데 그 귓속말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있죠. 이어폰으로 추위를 나눈다면, 별들의 귀엣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세요. 서로의 슬픔에 등을 기대 보세요. 함께 눈을 맞으며 호숫가를 걸어 보세요. 그러면 별들이 큰고니 날아오는 호수에 큰 고요를 뿌려 줄 겁니다. “잠시 서로의 말이 드러낸 단단한/ 등뼈를 쓰다듬으며/ 우리가 헛것임을 잊을 수 있다”(「언중유골」 부분). 뼈가 있는 말은 쉼표와 같습니다. 그걸 가볍게 쓸어보며 우리가 이 땅에 온 작은 이유를 어루만질 수 있을 테니까요. 느렸지만 역마다 서고 정차 시간도 길었던 기차가 비둘기호였어요. 내려서 가락국수를 후후 불며 먹었어요. 속이 든든하게 차고 쉼표가 찍혔죠. 긴 4형식 문장을 끌고 온 기차에 올라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12.03 18:4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 징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가끔 아프리카 기아 문제나 우리나라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자는 광고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 마음 한편에는 문제 해결을 강요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묵시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대신하며 살아왔다. 가난의 책임을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개인사로 치부하면서 그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외면해 왔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는 오늘날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실제 통계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편안하게 서술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보고서나 통계자료의 딱딱함을 넘어서 사실에 기초하여 냉혹한 현실을 느긋하게 직시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서 다룬 저자의 시각과 문제 인식은 오늘날에도 명확하다. 여전히 가난과 질병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며 우리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기아’라는 사건을 둘러싸고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따라 나오는 사회, 정치, 인간의 욕망까지 한꺼번에 조망하는 것이다. 현장 전문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기에 더 신뢰가 가는 책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하나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문제가 발생하기까지는 여러 종류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대개의 경우 이 과정에서 이권 개입과 힘의 논리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힘을 앞세운 가진 자들의 논리 앞에 인권과 정의는 유린되고 설 자리를 잃는다. 이런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희망을 만들어 낸 사례가 있다. 영화 <바람을 길들인 소년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이 그 대표적 예다. 당장 한 끼도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집안 상황에서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은 사치였다. 당연히 아이는 수업료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도서관 책을 마중물 삼아 메마른 대지를 적실 수 있는 수차를 개발한다.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늘도 지구편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넘쳐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누군가는 최고급 식당을 순회하면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에 취하고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허기진 배를 채워줄 음식 한 조각과 깨끗한 물이 없어 질병에 신음해야 한다. 가을 단풍이 머지않았다. 이제 헐벗고 주린 이들에게는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눈앞의 문제도 처리하기 버거운 형편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지구 반절의 인구를 책임질 여력은 없다. 지금 당장 세계를 바꾼다거나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지만 아마도 얼마쯤은 할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11.26 18: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정양 ‘헛디디며 헛짚으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귀싸대기 올려붙일 줄 아는 시인의 눈 부라림이 생생한 시집이다. 시인은 헛딛고 헛짚으며 살아온 한국 사회의 맹점을 예전 교육 현장에서 꺼낸다.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지만,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시집에는 “머리통에 어깻죽지에/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 그런 종이 띠를 두르고/ 양팔간격으로 늘어선” 1940년대 국민(초등)학생들이 있고, 양팔간격 사이로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깨뜨리자 삼팔선」)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수업 시간에 “출입문 드드륵 밀고 들이닥쳐/ 머리 긴 아이들 머리통에 한 줄씩/ 드르륵 드르륵 신작로를 내놓고” 나가는 1950년대 바리깡 훈육부 선생님이 있고, “그렇게 길들기가 죽어라 싫어/ 일주일 넘게 신작로를 그대로 이고 다닌”(「신작로」) 학생도 있다. 시인은 이 시절을 “황량했다”라고 표현한다. 바르지 못한 시대의 바르지 못한 일들. 철썩철썩, 학생들의 뺨을 갈기는 선생은 1990년대까지 꽤 많았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진저리 쳐지는 그 순간순간은 애잔한 그리움이자 씁쓸함이며, 여전한 통증이자 참담함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두 선생님이 있다. 정작 이름 석 자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의 귀를 번쩍 열리게 했고, 지그시 입술까지 깨물게 했다. “원래 건달이었는데 이사장 친척이라서/ 자격증도 없이 체육선생이 되었다고들’ 했던 ‘별명이 무식이었던 체육선생님”은 농구공·배구공·축구공을 던져주고 알아서 편 짜고 놀다가 끝나면 공만 체육실로 가져오라 시키고 당당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들이닥친 훈육부 선생들에게 “왜정 때 배운 대로만 풀어먹을라고 저 지랄들을 해댄다.”(「잃어버린 이름」) 라고 쌍욕 하며 막아서기도 했다. 분필 하나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오는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화학선생님”은 출석도 안 부르고 차렷 경례 끝나면 곧바로 노트도 책도 없이 고개를 한 번씩 좌우로 저으며 수업 내용을 칠판에 빼곡하게 적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말거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시험 답안지에 모두 ‘×’를 친 시인에게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화학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선생님이었다.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시인을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정양(1942∼2025)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달리 “발표한 작품이라도 고칠 데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대도 사람도 변하니 지나간 것을 보면 당연히 고칠 게 많다는 것이며,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는 믿음이다. 시집에 실린 시도 다시 고쳐 내듯 시인은 묵히고 삭힌 기억을 또렷하게 살려냈다. 그 아득한 기억은 어둡고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 소소한 것을 위대하게 하고, 비루한 것을 장엄하게 했다. 후배들 곁에서 시대와 ‘맞짱 뜨는 법’을 조금 더 알려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오늘도 우리는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2016)를 읽으며 귀싸대기 때릴 순간을 기어이 기다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11.19 18:58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