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선왕조실록 복본화사업 추진배경과 방향
전주시가 조선왕조실록 복본사업을 시작했다. 실록의 복본화 사업은 여전히 쓰러져 가는 전통한지산업을 살려내고 나아가 돈이 될 수 있는 '부가가치'를 부여해 보자는 것이 1차적 목표다. 기록문화유산의 전통적 보존원칙(분산 이중보존)의 계승 이전에 전통한지의 생명을 영위하는 것이 주 목표인 셈이다. 복본사업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이 사업에 참여한 홍성덕박사의 기고를 통해 조선왕조실록 복본화사업의 추진배경과 방향을 살펴보았다.▲ 왜 실록인가전주가 실록을 지켜낸 고장이라는 것과 실록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록에 대한 자부심만큼의 지적 재산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실록 복본 사업이 전통한지산업을 다시 살려내고 부흥시키는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것은, 실록이 가지는 역사ㆍ문화적 폭발력과 지금까지 누구도 하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과 규모 때문이다. 전주사고에 보존되어 있던 태조실록에서 명종실록까지를 몽땅 복본화하겠다는 것과 실록에 사용된 전통한지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종이는 전통의 기술로 복원하고 인쇄에 현대 첨단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또한 국보를 훼손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도록 이미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해상도의 디지털화를 끝내 놓은 것도 복본화 사업의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복본할 것인가조선전기 전주에서 보존하고 있었던 전주사고본 실록은 필사본과 활자본이다. 원론적인 복원 복제 기술을 이용하려 한다면 활자를 다 제작하고 그것에 맞게 찍어 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업의 목적이 '전통한지'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우선시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사용된 전통한지의 복원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전주사고본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완료해 놓았기 때문에 실록에 사용된 한지가 어떤 정도의 품질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100%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였고, 두께와 무게, 밀도, 백색도 등 실록 복본에 사용될 한지의 품질 기준과 제작방법을 마련했다. 그리고 현대 인쇄기에 사용이 가능하도록 특수한 도포작업을 진행한다. 전통한지가 인쇄산업에 사용되지 못한 것은 한지의 섬유질이 인쇄기의 헤드를 망치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실록 복본 역시 그러한 기술을 채용한다. 인쇄는 금속활자를 제작하여 인출하는 것이 아닌 현대 기술로 개발된 전용 출력기를 사용한다. 비단이난 능화문 표지의 제작과 책을 제본하는 선장법 등 역시 전통적 방법에 의해 제작된다. 인쇄부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 기술'은 관통되어 있다.▲ 풀어야 할 과제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한지'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개념에 대한 혼란이 온다. 한지의 재료와 제작방법을 통털어서 '전통한지'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일까? 일제시대 이후 보편화된 가둬뜨기(쌍발뜨기)는 전통이 기술이 아니다. 흘림뜨기 방식의 제조법과 섬유질을 만드는 공정에서의 세세한 방법들 표백제의 사용, 고해 작업 등 '전통'의 개념화가 필요하다. 전주 전통한지의 개념 역시 이러한 방법들까지가 고려될 때 그 '전통성'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이번 사업에서 한지의 제조법까지를 규정해 놓은 것은 그런 힘든 과정을 통해서만 실록에 사용될 전통한지의 격이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전통적으로 장인의 역량에만 의존 했던 생산방식을 일정한 품질 기준을 두고 한지를 제작한다는 발상이다. 전통한지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품질 표준화가 요구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한지 품질 기준을 정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역시 전통한지를 사용해야 하는 다양한 수요처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만 산업화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잉크 문제는 해결해야 할 장기적 과제다. 종이는 천년을 가는데 잉크가 천년을 갈 수 없다면 그 또한 문제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되 또 다른 국가적 과제로 향상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선도사업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록에 대한 교육적 활용은 일차적인 활용에 지나지 않는다. 품질 기준에 맞는 전통한지의 제조기술은 표준화와 산업화에 연결되면서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업에 참여하는 전통한지 장인들의 긍지는 곧 연관된 사업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전통문화산업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가치를 생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통한지산업의 영역을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분야로 모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록 복본 사업은 바로 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고급 도서의 기준이 바로 실록 복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