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미국의 한 유명 잡지 표지에 우리 여대생들의 사진이 게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표지에 실린 사진은 한국 여대생들의 화려한 옷차림새로 과소비를 꼬집는 글이 곁들여졌다. 표지 모델이 된 해당 학생과 대학 학생회 등에서 이에 반발해 결국 잡지사측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지만 많은 국민들이 지금껏 씁쓸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 사건이었다.
대형백화점이나 고급 의상실 등에서 판매하는 수백만원대의 옷들이 날개돋치듯 팔린다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 조차 안된다. 옷 뿐아니다. 냉장고·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의 경우도 고가일수록 잘 팔린다. 판매점들이 몇몇 ‘졸부’들의 행태를 영업 전략 차원에서 다소 과장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또 정당한 과정을 통해 부를 쌓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고급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분수에 많지 않은 과소비가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0∼60년대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 최대 선(善)이었던 ‘근면·검소’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쓸 만한 물건들이 곧잘 버려지고, 백원 짜리 동전을 돈 취급 조차 안하는 현실이 눈에 보이는 단적인 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유럽 선진국민들의 경우 풍족하게 돈을 쓰며 마음껏 누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 유럽인들의 생활은 검소함이 몸에 배어있다. 특히 국민소득 4만5천불대를 자랑하는 스위스 국민들의 검소함은 유럽사회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경우 보다 싼 휘발유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 위해 보통 5∼6개의 주유소를 거친다. 우리 돈으로 주유소에 따라 기껏 ℓ당 10∼20원 정도 밖에 차이가 안나지만 그중에서도 싼 곳을 찾으려한다.
스위스 화폐는 보통 ‘스위스 프랑’이며, 우리 돈의 ‘전’ 단위에 해당하는 ‘라펜’이 있다. 몇 라펜을 아끼기 위해 가까이 있는 슈퍼마킷 대신 몇 블럭을 걸어서라도 보다 싼 가게를 찾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다.
교통 수단의 이용에서도 이들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다. 버스와 전철이 대중 교통수단인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지만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우리 처럼 길거리에서 빈 택시를 기다리는 일이 없다. 택시를 이용하려면 전화로 불러야 한다.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정류장 마다 설치된 티켓 판매기에서 표를 사 버스·전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고, 바꿔 탈 때도 그 표를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스위스 뿐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택시를 이용하려면 전화로 불러야 하는 번거로움에다 요금 또한 비싸 대중교통이 일반적으로 발달했다.
스위스인들의 검소성은 자녀 교육에도 예외가 없다. 이곳에서도 대학이 선망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리와 같은 과외를 시키지 않는다. 자녀가 능력이 안될 경우 직업학교에 보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직업학교가 발달한 것도 이같은 스위스인들의 검소함과 맞물려 있어 보였다. 호텔경영 과정에서부터 자동차 도색·유리공·정원사·악세사리·인쇄·사진·빵제조·보모·꽃·경리·도색·재단사·실내장식 등 각종 직종에 따른 직업학교가 크게 발달했다. 4∼5천종에 이르는 시계가 생산되는 등 세계 제일의 정밀 기계공업 국가가 된 것도 이같이 발달된 직업학교가 배경이 됐다.
대학생의 경우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학비와 용돈을 조달한다. 쮜리히대학 경제학과 2년생인 다니엘 홀렌스타인 역시 고등학교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았으며, 대학 입학과 더불어 극장에서 표를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과 학비를 조달한다고 했다.’
스위스 뿐아니라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우리 만큼 옷을 잘 입는 경우도 흔치 않다.유럽에서도 가장 옷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이탈리아 밀라노 시민들 조차 옷차림새는 수수하다. 구찌·루비똥·프라자 등 세계적인 의류 회사 본사가 밀라노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적인 패션 도시지만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세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밀라노 시민들에게 밍크코트가 사치품이 아니란다. 값이 싸다거나 대다수 사람들이 비싼 옷을 입는 보편적 풍토에서가 결코 아니다. 닳고 헐 때까지 입기 때문에 한 번 산 밍크 코트를 평생 입기 때문이란다. 작은 가방 하나도 보통 20∼30년씩 사용한단다.
친지간에 음식점을 찾았을 때에도 별도의 말이 없을 경우 각자 요금을 계산한다는 말(더취 페이)을 유래시킨 네덜란드인들의 검소성은 알뜰시장에서 잘 드러난다. 수도 암스텔담 중심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알뜰시장에는 헌 옷 가지에서부터 중고 가방·가구 등 수천 가지의 물건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지금은 다소 변질돼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는 이곳은 지금도 1주일에 2번씩 장이 열리고 있다.
이같은 벼룩시장은 유럽 전역 곳곳에 열려 유럽인들의 검소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핸드폰 보급율이 세계 상위권에 들 만큼 핸드폰 사용인구가 많은 우리의 경우 단말기 교체가 빈번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우 멀쩡한 단말기를 단지 조금 불편하다거나 유행에 뒤졌다는 이유로 1년도 안돼 교체하는 이용자들이 많지만 유럽에서는 우리가 ‘무기’로 표현하는 무전기만한 크기의 단말기도 곧잘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같은 검소한 소비문화가 정착된 것은 물론 사회환경적·제도적인 이유도 있다. ‘장사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철저한 조세 체계가 정착된 유럽에서 어렵게 번 돈을 헤프게 쓸 수가 없을 것이다. 이같은 체제에서 자신의 번 돈을 설사 사치하는 곳에 사용하더라도 그리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쓰지 않아 눈총을 산다.
여기에 대부분 사람들이 주변 소비를 무작정 따라가는 식의 소비 행태를 지양하고 연간 혹은 평생의 수입과 지출을 따지는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소비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