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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떳떳한 아버지…" 간첩 누명벗은 개야도 납북어민 서창덕씨

41년간 가슴에 맺힌 한 풀어..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 납북어민 서창덕씨(오른쪽)가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법정에서 열린 재심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간첩혐의로 재심을 준비중인 김철씨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균진(moscow14@daum.net)

속보= 지난 10월31일 오후 4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201호 형사법정. 전북일보가 '간첩 아버지 한 풀고 싶다'고 보도(7월24일자 17면)했던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 출신의 납북어민이었던 서창덕씨(62·군산시 중동)가 이날 재심 선고 공판에서 드디어 간첩 혐의를 벗고 41년만에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고문 후유증으로 막일조차 어려운 서씨는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뒤 "'간첩 아버지를 둔 적이 없다'며 20여년 전부터 연락을 끊은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재차 꺼내며 기쁨과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이날 이른바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의혹 사건'에 대해 "서씨가 동료 선원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귀환해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했다는 공소사실은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씨의 한 많은 인생은 1967년 5월 다른 어부 6명과 함께 조기를 잡기위해 연평도로 갔다가 북쪽 경비정에 납치되면서 시작됐다. 124일만에 풀려나 남쪽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불행한 나날이었다.

 

그는 귀환 직후 반공법(1968년)과 국가보안법(1969년)위반 등으로 두 차례 처벌을 받았으나 보안대는 17년이 지난 1984년 다시 간첩 누명을 씌워 서씨를 구속했다. 당시 수사관들은 이름 석자를 겨우 그릴 정도인 그에게 "간첩질을 인정하라"며 몽둥이 찜질, 옷 벗기기, 잠 안 재우기, 기둥에 매달기 등 온갖 고문을 가했다.

 

구속영장도 없이 33일 동안 감금 및 가혹행위를 당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84년 11월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7년이 넘게 감옥에 갇혔다가 91년 5월 석방됐다. 그러나 이미 옥중에서 이혼을 당했고, 보안관찰법의 굴레는 지난해까지 그를 압박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11일 "국가권력이 서씨를 불법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가해 중형을 받도록 했다"며 이 사건을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무죄 취지의 재심 및 서씨와 가족에게 사과를 권고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서씨는 "자식과 형제(4남3녀)의 천륜을 억지로 끊게 만든 국가가 원망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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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오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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