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오느라고 애썼소. 와 본 게 산골이지라우”
방산마을 회관에서 만난 유지열이장(43). 그에서 풍기는 인상은 농사꾼은 아닌듯 보였다.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같은 인상에 자상함이 그대로 몸에 배어있는 모습이 왠지 세상 고생에 찌든 제자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스승과 같은 인상이랄까.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쌍치면내에서는 유 이장은 박사로 통한다고 이웃 주민들은 귀띔해 준다.
농사일·농기계수리·공사 감독 등 뭐든지 잘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유 이장을 박사로 부르고 있다.
유 이장은 한때 고향을 떠나 군산에서 형님들과 함께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 3년의 타향살이를 미련없이 접고 지난 86년도에 다시 고향을 찾아 줄곧 홀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에서 농촌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87년 새마을 지도자를 시작으로 마을 일을 시작한 유 이장은 92년도부터는 이장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마을 회관건립·안길포장·소하천 정비·간이상수도 등 지역 주민과 밀접한 각종 사업 추진시 회의를 개최해 의견을 철저히 수렴한다.
가장 최선의 방안을 선택, 공사의 선정 및 공사감독을 철저히 하여 하자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아왔다.
방산리는 개운리·사기점 등 여러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는 탓에 지역 주민들과의 상호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97년부터 방산친목회를 조직, 백중날(음 7월15일) 마을 친목단합대회를 열어 걸판진 잔치을 벌여오고 있단다.
한편 친목단합대회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매년 체험행사을 가지며 주민들간에 이웃 사랑의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노령인구로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면소재지에 나가 일을 봐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유이장은 마을회관에 민원접수함을 만들어 각종 공과금대리 납부·우편물 발송 또는 객지의 자녀들에게 보낼 택배도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우체국이나 화물취급점에 직접 처리하는 등 선행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관심이 많은 유 이장은 한우·복분자·단호박 작목반을 조직해 이끌어오고 있다.
농촌의 정보화를 앞당기는 ’마을 정보화 지도자’로도 선정돼 사이버 공간에서도 박사로 활동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게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노인들에게 신기함과 편리함을 전달할 수 있다는데 기쁨이 크다는 유이장은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된다면 마을내에 정보화 교육장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가지고 있다.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그는 현재 청소년 선도위원과 순창군 시민안전봉사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는 전주소리축제 홍보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마을유래
방산리는 방매라 불러졌으며 이 주변 마을이 개운리·사기점·새터뜸·여시목동 등 5개 마을로 구성돼 상치등면에 속했다.
그러나 1914년 행정분리 당시 쌍치면 방산리로 바뀌었다.
이들 마을 중 여시목은 모두 옮겨가고 마을 터만 남아있다.
마을들은 모두 망대봉 밑에 위치하며 개운리는 정읍시 내장동으로 넘어가는 개운치 정상에 위치하여 정읍시 내장동 운흥리와 한 마을권을 이루고 있다.
원방산(방매)은 가장 큰 마을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우측날이 호두등이라 하며 뒤 용이 방산이며 앞산이 개산이라 한다.
새터뜸 청용날은 사자 형상이요, 백호날은 쥐의 형상을 하고 있어 호랑이 개(삽삽개)·사자·쥐가 모여 있는 사수부동지격이 이 마을 주변의 형국이다.
방산은 여기에 연유된 삽살개 ’방(尨)’자가 방산이 아닌가도 여겨지고 있다.
순창군정사지에는 매화나무가 마을주변에 많아서 방매(芳梅)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마을 뒤 망대봉에는 통신중개탑 설치로 등대가 세워져 꽃다운 산이라 해서 방산이 된 듯싶다는 해석도 있다.
방산에서 백호날을 안고 돌아 사기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사이 골짜기 두늘재(두들재)를 넘으면 정읍시 내장동이 연결된다.
마을의 연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이마을에서 10대 이상을 살고 있는 해주오씨는 정읍 고부 다래목에서 전염병 피병차 3형제가 개운치 밑말 둥글제를 넘게 되었다.
이때 쉬면서 각각 흩어져야 하나라도 살아 종족보존이 될 것 아니겠냐고 생각한 끝에 바위 밑에 심표를 해놓았다고 한다.
각자 헤어지며 3년 말미로 살아 있으면 이곳에 와서 심표를 해놓기로 했는데 모두 피병에 성공, 큰형은 김제 원평에 ·둘째는 고창 인촌에·셋째는 쌍치면 만수동에 정착 했다 이곳에 옮겨왔다고 전한다.
방산과 새터 사이의 개운재는 옛부터 서해안 소금과 해산물의 운반 통로인데다 평야부의 미곡과 내륙 산간부의 잡곡을 상호 유통판매 연결하는 통행대로였다고 한다.
현재는 포장도로로 정읍과 순창 쌍치를 연결하는 버스가 통행하고 있다.
◇‥‥ 마을회관
방산마을회관은 지난해 10월에 준공되었다.
애초에 이곳은 허름한 창고였으나 부수고 산뜻하게 단장해 마을회관으로 거듭났다.
마을회관은 24평으로 군비 3천만원·자부담 5백만여만원이 투입돼 완공됐으며 주방시설과 방 2칸·거실·세면장·방송실 등을 갖추고 있다.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대소사를 치른 장소인데다 농번기때는 주민들의 쉼터로, 노인들을 위한 공간인 경로당으로 복합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 마을회관은 노인 30여명이 매일같이 찾고 있다.
사랑방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마을의 애경사를 의논하는 회의장소는 물론 집안이 비좁은 주민들의 각종 애경사를 치르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명절때는 귀성객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등 방산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취사시설이 구비돼 있어 겨울철에는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어 나누며 담소도 나누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유 이장은 “현재는 마을회관을 각종 회의장소나 애경사시에 주로 이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마을 회관을 청소년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예절의 집으로 그리고 주민들에게 컴퓨터을 배울수 있는 정보화의 산실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고향 사람들
청정 지역의 자연조건을 잘 이용해 한봉과 복분자 재배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는 방산리 주민들과 출향인사들의 고향사랑 및 우리것 지키기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서울 신사동에서 요식업을 하는 김종필·김종인씨 형제.
이들 형제는 고향마을에서 생산된 쌀과 고추·콩은 물론 채소류까지 전량을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형 김일남씨를 통해 공급받아 청정순창을 알리며 고향사랑을 실천하는 고향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신영수씨의 아들 의호씨도 서울 용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금호씨도 정읍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준호씨를 비롯한 김태성·최기복·최영일·오재근·이윤근·김삼수씨 등은 고향을 지키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5월 한우작목반을 조직, 한우소 육성사업에 열성이다.
검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도춘성씨·보험감독원에 근무하고 있는 도종택씨·순창군청 재무과에 근무하는 도광택씨 등도 이 마을 출신들이다.
도정순씨의 아들 최현일씨는 서울경찰청에 근무하고 있다.
이성근·인근·상근씨 등 3형제는 울산 현대자동차에 근무하고있으며 이 마을에 사는 김경순씨의 아들들이다.
SBS방송국에서 분장을 담당했던 최옥이씨는 현재 태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 김승길씨의 아들 김완성군은 공군사관학교에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다.
김용문씨는 정읍 오봉초등학교사로 후학양성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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