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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명] '지렁이 박사' 전북대 홍용 연구원

 

"자연의 쟁기 지렁이는 땅심의 비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지렁이를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생물로 여긴데서 생겨난 속담이다. 그러나 지렁이는 결코 하찮은 동물이 아니다.

 

지렁이가 많은 땅은 기름지고 건강하다.

 

예전 밭이랑을 조금만 파도 나오던 이 토양동물을 만나는 일이 요즘은 쉽지 않다. 낚시미끼나 약재용으로 공급하기 위해 농가에서 대량 사육하고 있는 실정. 그만큼 토양이 오염됐다는 증거다.

 

징그러운 낚시미끼 정도로만 여겨지는 이 작은 동물이 생태계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환형동물에 속하는 지렁이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역할외에도 흙속에 공기를 공급하고 빗물이 땅에 잘 스며들도록 돕는다. 또 지렁이 몸속을 거쳐나온 배설물 '분변토'는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마법의 알갱이다.

 

'자연의 쟁기'로 불리며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지렁이가 바로 땅심의 비밀인 셈이다.

 

 

 

생명의 원천인 땅을 살아 숨쉬게하는 토양동물 지렁이.

 

지렁이가 토양내 환경 지표생물로 최근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데는 전북대 횽용(洪龍·39) 박사의 역할이 컸다.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렁이 박사로 불린다.

 

지난해 12월중순 그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지원으로 개설한 '지렁이 데이터베이스(http://earthworm.chonbuk.ac.kr)'는 일반인들에게 지렁이의 참모습을 알리는 통로다. 지렁이에 대한 정보를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소개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국내 최초.

 

"생명의 근원인 토양 생태계를 보존, 친환경적 자연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렁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렁이는 다른 토양동물에 비해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활발한 움직임으로 장마때 물이 잘빠지도록 하고 유기물을 분해, 땅심을 높여준다는 게 홍박사의 설명이다.

 

또 작은 알갱이 모양의 지렁이 배설물인 분변토는 인위적으로 만든 부엽토보다 식물생장에 더 효과적인 자연의 거름이다.

 

"텃밭 두엄자리에 서식하는 줄지렁이는 종종 발견되지만 논·밭에서 활동하는 지렁이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밝힌 홍박사는 "화학비료와 농약때문에 토양에서 지렁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렁이는 전세계적으로 3천5백여종이 기록돼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기록된 종류는 1백여종. 이중 40종은 홍박사가 계룡산·지리산등지에서 발견, 학계에 보고한 신종이다.

 

완도에서 채집한 장보고지렁이와 덕유산 지렁이, 장수 와룡산서 발견된 와룡지렁이등이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지렁이 연구가 빈약했다는 반증이다.

 

홍박사가 전국을 돌며 지렁이 채집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5년부터. 원래 곤충학을 전공했던 그는 전북대 박사과정 논문을 준비하면서 토양 생태계에 막대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지렁이에 관심을 갖게됐다. 그리고 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지렁이 채집과 연구에 몰입했다.

 

분류학 분야에서 지렁이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현재 홍박사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한반도 지렁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초까지 활동한 일본인 학자 고바야시에 의해서였다. 이후 1960년대 중엽 경북대 송민자 박사가 한국 지렁이에 대한 연구를 재개했으나 1970년대 중엽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홍박사가 국내 토착 지렁이들을 새롭게 학계에 보고하면서 지렁이 연구의 맥을 잇고 있다.

 

국내 연구자가 없어 고심하던 그는 1998년 미국 아이오와주에 위치한 마하리쉬(Maharishi)대학에 유학, 지렁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샘 제임스(Sam James)교수와 함께 조사·연구활동을 펼쳤다.

 

"지렁이 종류를 보면 해당지역 토양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지렁이의 생태학적 위상을 설명한 그는 유전자원 확보 측면에서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실시되지 않은 전국단위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곳에서 지렁이가 7∼10종은 발견돼야 건강한 토양. 그러나 홍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유기농법을 실시하는 농지에서는 기껏해야 1∼2종의 지렁이가 발견되고 마이산과 모악산·대둔산등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산에서도 3∼5종 정도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덕유산과 지리산등 심산유곡에서도 5∼7종밖에 나오지 않아 종다양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박사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는 지렁이의 생태학적 특성과 역할·모습·생활등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아직 외국에서는 보고돼있지 않은 한국 고유종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있다.

 

또 농업생산성과 관련된 지렁이의 역할과 종류, 필리핀과 중국·미국등 외국에서의 사육및 활용사례를 사진과 함께 올려놓았다.

 

특히 홍박사는 거제지렁이와 성판지렁이·소백산지렁이등 3종을 멸종위기종으로, 내장산지렁이와 덕유산지렁이등 8종을 보호종으로 분류, 그 특징과 분포지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동물은 포유류와 조류·양서류·파충류·곤충류등에 한정돼 있고 환형동물은 포함돼 있지 않다.

 

"전국적인 채집과 문헌조사를 토대로 지렁이에 대해서도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을 선별했다”고 밝힌 그는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지표종들을 보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토양생태계 파괴를 막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홍박사의 조사활동은 국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분류학적 측면에서 인접국가와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

 

중국에서 국내종과의 유사성을 연구했고 올해로 3년째 미국 과학재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필리핀 지렁이 연구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 현지를 오가고 있다.

 

또 지난해말에는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현지 대학교수와 함께 2주일동안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처음 지렁이를 채집할때만해도 근처에도 오지 못했던 딸아이가 요즘은 맨손으로 만지고 따스한 눈길까지 보내줍니다”

 

지렁이가 인간에게 베푸는 막대한 혜택에도 불구, 아직까지도 쓸모없고 징그러운 동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시각이 홍박사를 안타깝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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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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