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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교수의 고구려이야기](3)북한의 고구려유적

 

평양 순안공항은 인천에서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고려항공 비행기에 탑승한지 꼭 1시간만에 도착했다. 북한의 관계자들의 환영속에 평양시내로의 진입은 의외로 금방 이루어졌다. 우리를 위해 배려된 북한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건물군들의 파노라마를 버스를 통해 지켜보며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날부터 진행된 북한에서의 일제약탈문화재 반환을 위한 남북학술토론회, 동해표기의 부당성에 대한 남북학술토론회, 그리고 남북역사학자 협의회 결성등과 같은 굵직하면서도 숨가쁜 행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면서 짙은 회색도시 평양의 이미지는 필자의 갑갑증을 자아내고 있었다.

 

특히, 사이 사이에 동승한 낯선 얼굴은 긴장감을 지속시켰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단 하루의 희열로 사라지고 그 다음부터는 훨씬 여유로운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평양에서 남포시와 서해갑문으로 뚫린 고난의 시기에 만들어진 왕복 10차선의 청년도로를 달리다 대안시 무학산자락의 평야지대를 지나 접어든 비포장도로. 덕흥리 9반이란 표지판이 길옆에서 보이자 필자는 잠시 당황하였다. 오전 일정은 분명 강서대묘만 있었는데 길옆 표지판은 모두 덕흥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 약간은 황량한 벌판앞에 좀 높아보이는 구릉정상의 봉분이 나타났다. 덕흥리 고분이었다. 주변 평야지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능선정상은 1976년 수로공사도중 발견되었다.

 

고대사 전공학자들이라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대상이었다. 더구나 무덤으로 들어가 북한이 세계유산신청을 위해 유리벽을 설치해 보호하고 있는 덕흥리벽화를 직접 보게되었을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담한 크기의 두 개방으로 구성된 고분내부는 돌로 봉분을 쌓고 석회로 벽을 바른 후 벽화를 그린 무덤이다. 전실에서 13군 태수들의 조회를 받는 주인공(유주자사 진)이 먼저 왼쪽에서 우리를 맞이했고 하늘에는 도교적인 천상의 세계가 화려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견우와 직녀도 보이고 부귀·길리·만세라는 동물도 보이고, 또 안방에는 다른 고분과는 달리 외로이 주인공 혼자만 그려진 모습과 평소에 즐겼던 말타고 활쏘는 모습, 시녀들의 생활도, 마굿간, 불교행사등 408년 광개토왕대의 고구려사회의 생활상이 아주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특히, 말타고 과녁을 맞추는 마사희(馬射) 장면은 현재 일본에서 말타고 3개소의 마름모꼴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야부사메(流鏑馬)"라는 전통의식으로 남아있는 고구려사회의 대표적 유희였다. 1600년전 그 실상이 그대로 필자 앞에 너무나 앙증맞게 그려져 있는 모습은 짜릿한 전율로 전해졌다.

 

흥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덕흥리고분에서 약 3Km 떨어진 강서삼묘가 있는 삼묘리로 옮겼다. 이곳은 강서대묘, 중묘, 소묘 등 세 무덤이 드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곳이다. 특히 최고의 걸작 사신도로 잘 알려진 곳이다. 무덤입구 안내실에서 전문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강서대묘로 들어갔다. 거대한 화강암을 쌓고 천장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말각조정식천장(우물 정자 형태로 사각형 모서리에 돌을 덧 쌓아 천장을 올린 형태)구조에 무덤 벽면 돌 표면에 그대로 사신도와 천상의 세계를 그려낸 강서대묘 현실은 그 규모와 청칭한 분위기속에 살아 움직일 듯한 현무,청룡의 색감에 압도되어 살아있는 고구려와의 만남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특히, 전주의 사신개념에 대응하는 후백제시대의 사령신앙(거북바위,기린봉,용어리고개,봉황암)흔적을 찾았던 필자에게는 그 원형을 만났다는 역사적 교감으로 남다른 흥분에 빠지기도 했다. 이 고분군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된 대표적인 고분이다.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이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신도문화로 정착한 유적이란 점에서 우리민족의 독특한 문화발전의 대표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구려와의 만남은 다음날 동명왕릉과 왕릉을 지키는 정릉사 그리고 진파리고분군을 만나면서 더욱 친근감있게 다가왔다. 평양시 역포구역(力浦區域) 무진리(戊辰里)에 있는 진파리 고분군(眞坡里古墳群) 중에서 가장 큰 고분인 동명왕릉은 고구려가 수도를 만주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시조무덤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다. 그 규모와 주변의 정릉사와의 관계를 볼 때 왕릉으로서 적절하지만 주인공이 동명왕인가에 대해서는 일부 논란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기록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분이다.

 

 

내부는 봉쇄되었지만 주변에 관련 시설이 추가되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주변 진파리 고분군이 이를 중심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온달과 평강공주의 무덤등 주인공의 이름이 표시된 표석앞에서 사람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은 유적과 이야기의 결합이 주는 효과를 실감하게 하였다. 고분군을 걷다보니 마치 부여 능산리고분군이 조금 커진 듯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고분군밑에는 1980년대 복원된 정릉사가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대산의 8각 9층탑 분위기의 고구려식 석탑을 중심으로 보광전과 용화전, 극락전건물이 품(品)자 형태로 배치되어 전형적인 고구려식 가람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라북도에 유일하게 남은 남원 만복사지의 가람배치와 연결되어 고구려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전라북도와의 문화적 유대감을 찾게 해주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3월3일 사냥을 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낙랑언덕과 , 온달이 그 사냥대회에서 발탁되어 용맹을 털쳤던 낙랑들녘을 달리며 바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평양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동강을 굽어보면서 을밀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평양성벽을 거닐며 창광정과 대동문을 지나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두 그릇씩 비웠다. 왠지 서글퍼지고 허전한 마음을 호방한 고구려의 기상으로 채워보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약간은 무심한 듯 그러나 호기심과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빛을 서로 교환하며 비감한 마음으로 평양의 주민들과 헤어졌다. 평양지하철에서, 만경대 소년궁전의 관람석에서, 그리고 낙랑구역 단고기집앞에서 스쳤던 눈길을 떠 올리며 꼭 다시와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고픈 심정으로 짐을 꾸렸다. 평양을 떠나는 날 비가 부슬 부슬 내렸다.

 

 

덕흥리벽화고분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1976년 8월에 발견, 조사된 고분이다. 전실과 후실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무덤길이 있는 데 돌로 쌓고 회로 벽을 마감한 전형적인 고구려고분이다.이 벽화고분에는 풍부한 내용의 벽화와 600여자에 달하는 묵서(墨書)가 있다.묘지명에 의하면,묘 주인의 이름은 진이며,신도현에서 나서 전위장군.국소대형.좌장군.용양장군. 요동태수.사지절.동이교위.유주자사를 지냈고,나이 77세에 죽었으며, 광개토왕이 다스리던 영락 18년12월 25일 (음력:408년,양력 409년 1월 26일)에 고분을 만들어 장례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고분에는 벽화고분이 90여기

 

되지만 이같이 무덤주인을 알 수 있는 명문이 있는 고분은 안악3호분, 모두루묘등 3기 뿐이어서 덕흥리벽화무덤은 모든 고구려 벽화무덤의 기준작이 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고분 벽화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사들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 여인들의 나들이를 그린 모습, 특히, 주름치마와 햇볕가리개까지 묘사된 상류층 부인들의 호사스런 생활도 보이며 연꽃그림은 망자에 대한 불교의 내세관을 나타내고 있다. 또 견우와 직녀의 설화가 벽화로 확인되는 최초 고분이며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모습을 그린 내용은 장생불사하는 류숭배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 내용은 고구려의 독자적인 생활문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주인공인 고구려사람은 현재의 북경지역까지 포괄하는 유주지역을 다스렸고 13군의 태수들이 하례드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덕흥리 고분은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측 의도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귀중한 자료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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