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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아버지는 없다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집에는 늘 우편물이 쌓이고, 매달 부쳐오는 정기간행물도 적지 않다. 바쁘다보니 다 읽는 것도 쉽지 않아서 시간 날 때마다 한번씩 훑어보는데, 어쩌다 우연히 펼쳐든 잡지 내용이 미혼모들에 대한 기사였다. 읽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고, 여성단체협의회장을 십 여 년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소외빈곤 계층에 눈을 돌려 열심히 사회봉사를 해왔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도 부끄러움이 앞섰다. 인권의 사각에 놓여진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가 안타까운 것은 물론이고, 미혼모의 열악한 처지와 법적 문제에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사실이 더 그렇다.

 

젖병을 엄마 손인 양 꼭 붙잡고 우유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이쁘고 해맑던지 가슴이 아팠다. 그 깨끗한 눈빛을 바라보며 감히 '너는 버려진 아이이며, 네가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할지 아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의 신체는 일찍 발육하고 성은 어디에서나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성교육과 책임의식의 부재로 해마다 10대 미혼모가 5000명 가까이에 이른다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다 임신을 한 경우에 모든 책임을 여자 혼자 떠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다. 미혼모는 엄마 혼자 아이의 양육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야하며, 친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해도 거부하면 받아낼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뒤에라도 친부가 자기자식이라고 주장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과 호적이 바뀌는 게 현재의 법 제도이다.

 

또한 어린 엄마가 가장 먼저 겪어야하는 불행은 학습권 박탈이다. 남학생의 경우는 생리적으로 임신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필요도 없지만 여학생의 경우는 아무리 본인의 잘못이 아닌 불행한 사고였더라도 임신사실이 알려지면, 낙태하지 않는 한 학교측에서 거부당한다. 퇴학을 당한 어린 엄마는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진학을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배움의 기회도 놓쳤는데 취직인들 쉽겠는가. 결국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없는 시절의 실수지만 그래도 생명을 지키려고 결심한 어린 엄마들의 용기를 이 사회는 거부한다. 낡은 법과 제도는 미혼모들에게 낙태를 종용하는 셈이다. 이는 앞으로 생명경시 풍조와 도덕성 파괴라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니 더 큰 문제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펼쳐야한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책임이 따르는 중요한 문제라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면서 가정에서조차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미혼모의 문제는 그동안 음지에 버려두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 음습한 곳에 햇볕을 들게 하고 바람을 쏘여서 양지를 만들어야한다. 미혼모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하다보면 좀더 성에대한 책임있는 자각도 이루어질 것이고 사회빈곤층 여자들이 겪는 아픔을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리라 믿는다.

 

/이화왕(한국부인회 익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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