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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이야기 땅과 생명...그리고 江] ④대아리저수지와 농업

한국판 '나이아가라' 폭포

대아 신댐(위)과 지난 2001년 가뭄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아 구댐. (desk@jjan.kr)

대아리 저수지는 만경강 유역의 수원지(水源池)다. 이 유역에 있는 2.7만ha의 논과 밭은 대아리 저수지를 원류로 하여 물을 공급받는다. 수원을 확보한 대아리 저수지에서 월류된 물은 고산천으로 흐르고 다시 고산천변 어우리에서 자연 취수하여 간선 수로를 통해 논과 논으로 퍼져 나간다.

 

이 용수로가 만경강 중류∼하류∼하구연안에 이르는 광활한 평야에 물을 대주고 있다.

 

대간선 수로는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에서 군산시 옥구읍 어은리까지 약 65km이다. 논 사이에 있는 지선까지 전부 합하면 2200km. 전주에서 서울까지 다섯 번 왔다 갔다할만한 거리다.

 

지금 대아리 저수지를 막고 있는 대아댐은 전북농지개량조합이 만든 것이다. 1922년 익옥수리조합이 만든 구댐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간혹 저수율이 40%가 되면 모습을 드러낸다. 댐이 타원형으로 모양이 수려하고 댐을 넘어가는 물줄기가 하얀 포말로 부서지면 댐은 온통 옥양목을 펼쳐 놓은 듯한 장관을 이루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판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불렀다.

 

구 대아댐은 1920년 익옥수리조합이 설립되면서 1921년 10월에 착공한 농업용수 전용 저수지였다.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위치한 이 댐은 전주 일부와 익산, 옥구에 걸쳐 8000ha의 농지를 관개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아치댐으로 당시 그 규모나 축제 기술면에서 대표적인 댐으로 손꼽히는 것이었다.

 

만경강 유역은 원래 한발 상습지역이었다. 천수답이나 황무지를 매입했던 일본인지주 중심의 익옥수리조합은 일본의 수리조합 조직을 만경강 유역에 이식하고 수리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홍수 방지를 위해 대아리에 콘크리트 댐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고 풍부한 용수를 기반으로 관배수시설을 만들어 논에 물을 대었다.

 

대아리 저수지 건설과 함께 간척사업은 동시에 시행 되었다. 관개용수가 확보됨에 따라 군산 서쪽에 방조제 길이 14km, 매립면적 2,500ha를 간척하였다. 평평한 간척지 바닥에 둘러쌓아 만든 관개용 저수지인 옥구저수지도 만들었다. 이 곳에 대아리 저수지의 물을 대간선 수로를 통해 끌어와 양수기로 퍼 담았다.

 

이로써 만경강 상류의 대아리 저수지와 하류의 옥구저수지는 한 라인으로 단일 수리체계가 되었다. 만경평야의 농경지 대부분 일본인 지주의 것이었고, 옥구 저수지 북쪽에는 불이농촌(현재 군산시 미성동)이라는 일본인 농업이민 촌락도 생겨나게 되었다.

 

1988년 신 대아댐은 구댐으로 부터 300m 내려와서 만들어졌다. 제방이 노후화되고 영농의 상업농화와 통일계 신품종의 보급을 종래 저수량으로 감당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 대아댐은 연 인원 26만 7000명과 6만 1000대의 트럭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그 동안 대아댐은 식량수탈의 댐에서 식량자급의 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제는 농업용수 뿐만 아니라 공장용수, 생활용수도 공급하고 있다. 홍수조절, 수질 정화, 대기 정화, 경관 제공 같은 공익적 기능도 한다. 무역으로 해결 못하는 환경보전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1908년 12월 국내 최초 옥구 수리조합 건립

 

1908년 12월 8일 옥구 서부수리조합이 만들어졌다. 농민들이 주도하여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이다.

 

1906년(광무 10년) 수리조합 조례 제정 2년 뒤 미제마을 유지 김상희가 설립인가를 받았다. 김상희는 당시 전라북도 참사관를 하던 사람으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음과 동시에 이사로 취임했고 이후 20여년동안 조합장을 지냈다.

 

만경강 유역의 해안 말단부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 설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미 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지역은 수리조합 설치 이전에 미제(米堤)와 선제(船堤) 두 저수지를 농업용수로 삼아 농사를 지어 왔다고 한다.

 

수리계 같은 수리공동체 조직이 쌀밑 방죽이라고 불리우는 미제(현 군산시 나운동 은파유원지)를 관리해 왔기 때문이다.

 

설립당시 옥구서부수리조합은 옥구면과 미면 270ha에 물을 댈 수 있었다. 조합규모를 보더라도 후에 설립된 다른 수리조합에 비해 크지 않았다. 결국 조합은 1940년 다른 5개 수리조합과 함께 전북수리조합으로 합병되었다.

 

1970년 전북수리조합은 농지개량조합으로 바뀌었고, 2000년에 와서는 농어촌진흥공사와 농지개량조합연합회등 3개 기관이 농업기반공사로 합병됨에 따라 옥구서부조합 지역은 농업기반공사 전라북도 지역본부 전주·완주 지사외 2개 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2008년 12월 8일은 농업기반공사로서 옥구서부수리조합 창립일로 통산하면 창립 100주년이 된다.

 

/소순열 (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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