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21:50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미원탑의 추억

무진장 촌놈인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상전(上全)’해서 맨 먼저 배운 단어는 아마도 ‘빈대극장’(지금의 명화극장 자리에 있던 제일극장)하고 ‘미원탑’이지 싶다. 언필칭 ‘제일(第一)’극장이 졸지에 ‘빈대’로 전락해버린 까닭을 나는 임예진 나오는 “진짜 진짜 잊지마”를 보러 갔다가 단번에 알아챘다.

 

말로만 듣던 미원탑은 지금의 홍지서림 입구 네거리 한가운데에 드넓은 팔달로를 굽어보며 거대한 동상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바로 그 70년대 후반, 나는 도청 소재지 입성을 자축하듯 기민하게도 ‘미원탑’을 입에 달았다.

 

‘미원탑’은 다분히 상업적 전략에 따라 조형된 것일 텐데도, 그 어감이 주는 친근함과 네온등의 심미적 이미지, 혹은 당시까지만 해도 식탁 한 켠을 점유하고 입맛을 돋우던 조미료와 관련되어 있다는 복합적 이유로 많이들 친근해했던 건 아닌지.

 

사실 나는 그 미원탑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그 미원탑 아래에는 담배꽁초를 구두 뒤축으로 비벼끄며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던 이들이 참으로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 미원탑이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동안 ‘관통로 객사 앞’이 익숙해질 때까지 ‘미원탑 사거리’를 버리지 못했다. 1980년 가을의 전국체전을 앞두고 조성된 ‘동서관통로’를 우리는 그냥 ‘관통로’라고 불렀다.

 

80년대에 20대 청춘을 이 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관통로 객사 앞’이 하나의 보통명사였음을 안다. 아, 그런데 ‘관통’이라니. 도대체 어느 누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섬뜩하게도 ‘관통로’라고 이름하였던가. 더구나 객사(客舍)는 가끔 ‘객사(客死)’를 연상시키기도 했으니 조합(組合)치고는 참 얄궂기도 했다.

 

물론 정겨운 이름 하나는 있었다. 바로 ‘시집가는 날’이다. 그 ‘시집가는 날’ 앞을 서성거리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 시절을 보낸 청춘들이 있었을까. 웨딩드레스 맞춤 혹은 대여점이었던 그 ‘시집가는 날 앞’이야말로 그 시절 우리의 또 다른 보통 명사였고, 명소(名所)였다.

 

전통문화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우리 도시 도처의 이름짓기 패러다임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지 싶어서 하는 말이다. 돌아보자. 관통로는 언제부턴가 ‘충경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충경로는 그 어감이 주는 작위성은 차치하고라도 20년 넘게 머리와 가슴을 ‘관통’당해 버린 이들에게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둘러보자. 동부우회도로, 서부우회도로, 진북터널, 어은터널은 얼마나 밋밋하고 멋대가리 없는 이름인가. 동부시장·남부시장·중앙시장·서부시장도 그 위치와 방향성을 그대로 따왔을 터이니, 나온 순서에 따라 김일순·김이순·김삼순으로 명명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하긴 뉴 밀레니엄 시대 전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택지 개발지구 이름도 ‘서부’신시가지다.

 

그에 비하면 전통문화의 거리 ‘태조로’는 무겁기는 해도 멋스러운 구석이 있다. ‘청사초롱길’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훗날, 우리 지역 어느 곳에 새로 만들 터널이 있다면 국악기 이름 하나 빌려와서 ‘아쟁터널’ 쯤으로 명명하는 건 어떨까.

 

서부우회도로와 동부우회도로는 ‘서편제로(西便制露)’와 ‘동편제로(東便制露)’로 바꿔 부르는 건 또 어떨까. 어감도 그럴싸하거니와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판소리의 갈래 정도는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는 축구선수 이름을 딴 ‘박지성로’도 있다는데, 그 옛날 미원탑이 있던 곳에서 다가파출소 방향으로 금은·시계점이 아직도 즐비한 그 거리를 ‘이창호길’ 쯤으로 명명할 수 있는 여유나 멋도 이제는 부려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런 일을 추진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아마도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