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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반갑다, 꽃뱀 - 김유석

김유석(시인)

유월은 소리의 천지이다. 새벽마당을 쪼아대는 참새에서부터 늦은 밤의 개구리 울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연의 화음이 귀를 씻는다. 이따금 시꺼멓게 하늘을 몰아세우는 우레와 양철지붕을 박음질 하는 소낙비소리, 하루를 들놓고 돌아오는 주인을 맞는 초저녁의 누렁이 소리조차 그윽하게 들판을 적신다. 게다가 새참을 내놓고 “어이!” 하며 지나치는 발씨들을 붙잡는 컬컬한 목소리는 또 얼마나 가슴에 감치던가.

 

투박하고도 무심하게 몸에 익은 소리들을 모름지기 따르다보면 결코 무심할 수만은 없는 세월의 잔해들이 묻어난다. 참새들의 지저귐 속에는 홀어미 혼자 사는 마당귀의 적막이 감나무 그늘 밑 청태처럼 끼어 있다. 공명하듯 서로의 가슴을 맞받아 흥얼거리다가도 일순간 툭 끊기는 개구리 울음 사이엔 일말의 긴장감 같은 것이 서려있고 “어이”라는 말의 다정함 속에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외로움이 숨겨져 있다. 그나마도 아직은 그것들에 위로받을 수 있는 순간이 남아있기에 망정이지 그것들마저 사라진다면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어디에 감추겠는가.

 

실은 이 밤 온 들판을 끓이는 저 개구리울음이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서글프게 들리는 까닭이 있다. 보리쌀 씻는 소리처럼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을 대신해서 칭얼대던 토종들의 울음이 점점 끊기게 된 사연은 참으로 씁쓸하다. 농기계소음에 묻혔거나 오염된 환경 탓쯤으로 모두가 무심했던 그것들의 종적은 홀연 들려오던 정체불명의 괴성 속에 있었다. 황소개구리, 커다란 덩치에 겁나고 징하게 고함질을 질러대던 이 외래종들에게 무참히 희생당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심지어는 무자치들까지 잡아먹으며 마구잡이로 생태계를 교란하던 무법자들이 먹이가 줄자 필경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도태될 때까지 어디론가 내몰렸던 토종들. 다행히 멸종만은 면한 그것들이 다시 제 터전에 돌아와 저렇듯 뒤섞는 기쁨과 슬픔을 듣는 마음이 여간 착잡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개구리들만의 애환이 아니라 배스, 블루길 등에 의해 전철을 되밟고 있는 물고기들을 생각하면 반성보다 분노가 앞서기도 하지만.

 

<개구리를 먼저 보면 부지런해지고 배암을 만나면 게을러진다> 는 어릴 적 우스개를 떠올리며 올 봄 뱀 한 마리와 마주친 적이 있다. 꽃뱀이었다. 뱀에 대한 달갑지 않은 선입견과 토끼풀 무덤에 묻혔다 스르르 풀리는 소리가 여전히 기억을 섬뜩하게 하였지만 한편으론 여간 반갑지 않은 우연이었다. 한 마장 학교 길을 줄창 끌고 다니며 징그러운 모습을 공연히 들볶기도 하고 때론 음산한 눈초리를 피해 다니기도 했던 족속들. 그땐 서너 걸음마다 똬리를 틀만큼 흔했던 녀석을 수 삼년 만에 들길에서 만난 것이다. 서로 경계하고 서로 마주보다가 숙연한 생각을 끌고 아스라한 기억 속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감추는 녀석이 얼마나 미덥고 또, 얼마나 고맙던지.

 

다시 돌아오고 있다. 도롱뇽, 자라, 너구리, 참게 등등 이 땅의 들과 물가에 살던 얼굴들이 하나 둘씩 제 터전을 되찾고 있다. 떠나게 된 사연을 묻지도 말고 돌아온 생각을 앞질러 따지지도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자연> 이란 말 그대로 상관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모습으로든 지금보다야 훨씬 무성해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고질라> 와 같은 돌연변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반갑다, 꽃뱀!

 

/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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